김영안의 생각장난-28-

유기면(遺棄面)

by 생각소년 김영안

장흥면은 지명이 뒤죽박죽이다.

일영역은 삼상리에 있는데 일영역이고

정작 일영리에 있는 역이 장흥역이다.

일영유원지는 삼상유원지라 불렀어야 옳고

장흥유원지가 일영유원지로 불렀어야 옳다.

고속도로 IC도 행정지명인 장흥이 아니고

교현도 아니고

송추다.


지명이 이렇게 어지럽게 된 건 최기준 때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면장이었고 임기를 마친 뒤에도 면을 쥐락펴락하던 친일 유지였다.

교외선이 놓인 건 일제 말이었는데 이미 역의 위치와 이름까지 정해진 것을 그가 뒤집은 거다

당초의 안엔 일영리에 역이 있었는데 지역권력의 정점에 있던 그가 자기 사는 삼상리로 가져간 것이다.

역명도 삼상역으로 바꿨어야 했는데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는지 그리하지 못했다.

장흥면의 영호남 뺨치는 지역감정도 송추 느티나무 앞에 있던 면사무소를

최기준이 자기 사는 지역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장흥면의 지역주의는 깊다.

해방 이후 여러 선거에서

이쪽 사람은 이쪽 후보 찍고

저쪽 사람은 저쪽 후보 찍었다.


정당도 필요 없었고

공약도 필요 없었다.

돈 공세도 안 먹혔고

악수 공세도 안 먹혔다.

오로지 이쪽저쪽만 있었다.


딱 한 번 사건이 있었다.

1998년 6.4 지방선거에서

장흥지역 출신 김 아무개 후보(무소속)가

송추지역 출신 최아무개 후보(무소속)를

상대지역 투표구에서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사건일 뿐 해소는 아니었다.

장흥면엔 최기준 말고 지역유지 둘이 더 있었다.

이희정과 김만욱이다.

이희정은 서예가였고 한학자였는데 친일을 하지 않았고

김만욱은 땅부자였는데 친일이 심했다.


그에 의해 징용에 끌려갔던 김덕용은 돌로 오른손 검지를 자르고 돌아왔다.

현대판 타제석기를 네안데르탈인이었는데

그는 돌아와서도 이 어른 사피엔스에게 쩔쩔매며 살았다.


장흥면장 중엔 공무원 청백리의 표상도 있다.

이준규다.

그는 군수를 야단치는 소신 면장이었다.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으로 산림법이 시퍼럴 때 군수실로 쳐들어갔다.

장흥면에 하루 천 장 연탄을 배급하지 않으면 나무 베어 때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연탄도 못 주면서 나무도 못하게 하면 어떡하라는 거냐고 따졌다.

군수가 쩔쩔맸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요즘 권력에 비해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했던 그는 공무원 교육 교재에도 나오는 모범이었다.


최기준은 내 친구의 할아버지면서

내 은사의 아버지다.

이희정은 나의 외당숙이다.

김만욱은 나의 큰할아버지고

이준규는 내 누이의 시아버지다.


최근엔 내 친구가 면장을 했다. 황순임이다.

그는 초임 면서기 때

내 첫 주민등록증을 발급해 준 갑장이다.


장흥면은 1466년에 태어났으니 560살이다.

그러나 나이와 달리 아직 익지 못한 지역이다.


대한민국은 섬이다.

장흥면도 섬이다.

장흥면은 양주시로부터 고립무원의 땅이다.

중간에 의정부시와 말부리고개가 가로막고 있어 접근성이 전무하다.


과거 양주의 중심이었던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분리되면서 생긴 기형이다.

1963년 의정부읍이 양주군에서 분리될 때 같은 생활권인 장흥면도 함께 가져가라고 했으나 의정부시가 거절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일설도 있다.


양주군에선 버렸는데 의정부시에서 안 받은 일종의 유기면(面)인 셈이다.

강아지 한 마리만 버려도 동물 학대라고 난리 나는 세상에 개만도 못한 면이란 말인가.

그래서인지 면 소재지에


병원 없다.

약국 없다.

옷집 없다.


없는 것만 있을 뿐 있는 것은 없다.


서울시청까지 40분

의정부시청 10분

고양시 10분

은평뉴타운 10분

지척이 눈부신 도시임에도


유독

장흥면만

흑색지대다.


최근 행정구역 통폐합이 뜨거운데

자칫, 양주시는 장흥면을

인근 시에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


장흥면엔

매년

새해맞이 행사가 있다.


부곡리 챌봉으로 올라가

해님께 소원 비는 행사다.

해는 늘 동쪽에서 뜨지만

만만하게 뜨지는 않는다.


하늘을 물들이다가

연하게

천천히


사람들 애태우다가

올라오는데


사람들은

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폰을 본다.


소원을 빌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해를 찍지 않고

해를 찍는 사람들을 찍었다.


수락산에서 솟은 해에게

면장이 잔을 올렸다.

음복을 하고 지전을 놨다.


발전협의회장이

그렇게 하고

여럿이

또 그렇게 했다.


나는

이 행사를

일영봉에서 하고 싶어서


길을 내고 있다.


챌봉

삼각봉

일영봉은

장흥면의 백두대간이다.


장흥면은

이 산을 놓고

둘로 갈라졌다.


송추와

장흥


삼상초등학교

송추초등학교

해를 맞는 산

그 이름도 찬란한 일영봉에서


장흥과 송추 사람들이

만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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