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29-

야당촌 사람들

by 생각소년 김영안


누나는 <선데이서울>을 숨어서 봤고

나는 누나의 <선데이서울>을 훔쳐서 봤다.

그러나 지식인들이여


월간 돌베개와 사상계가 시대를 고민한 바 크나 60년대 70년대 서슬 퍼런 통제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지킨 건 정작 이런 류의 잡지와 만화책과 장발과 미니스커트가 아니었겠는가. 영화 자유부인이 신장시킨 자유는 또 얼마나 큰가.


밤에 떠돈 가설극장도 좋았다.

"비지직"거리는 화면을 통해 윤정희를 알았고 허정강을 알았다.


동춘서커스 단원들이 했을 고생과 열광했던 대중과

시름시름 죽어야 했던 시대의 아픔이

나라와 민주주의의 거름이 아니었겠는가.


6인치 흑백 TV가 불티나게 팔렸다.

MBC 저녁 연속극 신부일기의 김자옥과 현석을 보기 위해서였다.

프로복서 김기수, 홍수환이 반도의 남쪽을 펄펄 끓였고 염동균의 요리조리 두뇌 방어전도 지루함과 재미를 동시에 줬다.


프로 레슬러 김일과 천규덕이 조를 이뤄 안토니오 이노키 측과 벌이는 타이틀전도 좋았다.

서울의 장충체육관과 부산의 구덕경기장을 오가며 달궜는데


나는 레슬링을 쇼라고 했고

큰아버지는 쇼가 아니라고 하면서 싸웠다.


9시 뉴스의 첫머리는 "박정희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됐다.

두 번째 뉴스는 "공화당과 유정회는~"으로 시작됐다.


박성만은 이러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신세계 공동묘지에서 시신 여럿을 파묻고 왔다.


일영리를 감고 있는 신세계 공동묘지는 1971년 배호가 와서 묻히고 난 후 떴다.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품을 팔아먹었다.

그중 한 명이던 야당촌의 박성만이 죽었다.


야당촌의 원래 이름은 당촌이다.

자유당에서 공화당으로 이어지는 긴 정권에서

고무신으로도 안 통하고 막걸리로도 안 먹혔던 동네라서 공화당 애들이 지은 이름이다.


"저 새낀 먹여봐야 안 찍어."


박성만은 선거 때만 되면 죄인이다.

그러나 그는 밤에 외롭지 않은 의인이다.

'이래도 되는데' 쪽 애들은 포마드를 바르고 낮을 다녔고

'이러면 안 되는데' 쪽 애들은 벙거지를 쓰고 밤을 다녔다.


어디 당촌뿐이랴

배울, 평촌, 매남리로 이어지는 선은 길었다.

그들은

쉬쉬하며

어이어이하며

눈을 꿈쩍꿈쩍하며 표를 만들었다.


절골엔 성백호가 있었고

구만리엔 이지수, 강이환이 있었다.

산뒤의 이찬기,

응달편의 황산덕.


그들은 김환기가 찍은 점처럼 독립이었지만 연결돼 있었다.


쥐구멍에 볕 들기란

죽은 쥐가 살아서 나오는 것만큼 어렵지만


정권이 몇 번 왔다 갔다 했어도

응달편은 여전히 응달편이지만


이승만 박정희의 근대화 산업화를

부정하는 바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이들을 응원한다.


박정희가 김일성 되고

박근혜가 김정일 되고

박지만이 김정은 되는 길을 막은 것도

엄연한 이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라도 세워

기념하고 싶지만

아직은 역사가 되지 않았기에 참아야 한다.


-


칡과 등나무는 같은 콩과이면서 무던히도 싸우지만

꽃은 자줏빛, 같은 색으로 핀다.


이날도 이쪽저쪽 애들이 와서 회방아를 다졌다.

돌고개 천근이와 만근이가 싸울 때도 나는 말했다.

관뚜껑에 못 박아 줄 사람들 아니냐고,

박성만을 묻고 온 날 나는

시대의 어둠도 함께 묻혔기를 바라며

시를 썼다.


-


꽃군은

겨울을 물리치고 왔으나

사납지 않습니다.


활도 없고 창도 없이 왔습니다.


다만

노란 물감 한 통 들고 왔습니다.


다만

빨간 물감 한 통 들고 왔습니다.


붓 한 자루 들고 놀다가

여군처럼 예쁜 녹군이 쳐들어오면

단 한 발 총성 없이

물러갔습니다.


오월의 풀밭에

사랑할 일만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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