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새엄마는 베트남에서 왔다.
엄마가 구질구질하게 오천 원을 빌려가던 날,
아빠는 엄마가 다시 돌아오는 줄 알고 헤벌레 다 낡아가던 지갑에서 꾸깃한 지폐를 쥐어주던 날,
내가 엄마라는 존재를 보게 된 최초이자 마지막 날,
청테이프 같이 따가웠던 겨울이 지나가자마자 아빠는 재혼을 한다고 했다.
*
7살 때 만난 새엄마는 스물두 살이었다.
새엄마가 건넨 촌스러운 줄무늬 장갑에서는
좋은 향이 났다.
코코넛 같기도, 바닐라 같기도 한 포근한 향.
나는 그것을 베트남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황당한 요구에도
나는 뭣도 모르고 거리낌 없이 엄마라고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기억 속 엄마는 한순간의 장면으로만 있었으니.
새엄마는 내 존재가 불편하다고 했다.
아빠는 다 알면서 오지 않았냐고 어르고 달랬다.
나는 직감했다.
이번 생에 엄마는 없구나.
새엄마는 한국어를 아예 몰랐다.
그러나 습득력이 빨랐다.
병신같 년, 니 엄마같 년, 멍청 년 등
부족한 한국말로 내게 할 수 있는 욕은 다 했다.
아빠는 갑자기 경마에 빠졌고, 술과 담배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못했다.
새엄마는 울부짖었고
깨진 창문은 청테이프로 둘둘 감겼다.
집은 지옥이 됐다.
찬 바람이 시려
바퀴벌레 그득한 장롱을 뒤적일 때
새엄마는 임신을 했다.
*
작은 천사가 안방 침대 위에서 꼬물댔다.
새엄마를 닮은 큰 눈이 너무 예뻐서
아무도 없는 안방에 들어가
끙끙거리며 동생을 힘껏 안아 올렸다.
새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나를 쫓아내라고 아빠를 불렀다.
아빠는 나를 쫓아내며 크게 혼냈다.
위험하게 네가 애를 왜 만지냐고
새엄마는 아이를 둘러보며
상처는 없는지 여기저기 둘러봤다.
마치 내가 동생을 해코지한 것처럼.
동생은 천사 같았다.
큰 눈에 올망졸망한 코, 슬쩍 올라간 입꼬리까지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그래서 동생이 울부짖는 날에는
가슴이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동생이 울부짖는 날은 나와 대화를 했을 때,
새엄마의 심기를 거슬렸을 때였다.
새엄마는 산후우울증이었을까.
동생이 우유를 먹지 않아서,
제대로 세수를 하지 않아서,
'병신같 년'과 대화를 나눠서
만지면 움푹 들어가는 말랑한 다리가
엉덩이까지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빠에게 말을 해보고,
고모들에게 말해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말해도
누구도 동생을 구해줄 수 없었다.
그냥 모른 척 하라 했지만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동생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넘어갈 듯 한 날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매든 새엄마 앞을 막아섰다.
새엄마는 언제나처럼
말도 못 알아듣는 핏덩이에게
어눌한 한국말로
"누구하고 살 거야?"하고 물었다.
동생은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새엄마를 가리켰고
나는 좌절감을 느끼며
평소보다 더 찢어지는 듯한
동생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다.
*
새엄마는 유치했다.
장롱에서 꺼낸 새로운 요를
내 이부자리에 올렸는데
자신의 것이라고 치워버리거나,
내 것만 빼고 밥을 차렸다.
"밥은?" 하고 물으면
아빠는 "컸으니 네가 알아서 먹어라"
하고 새엄마 편을 들었다.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고모들 말대로
새엄마가 베트남에 다시 가버릴까 봐 두려웠겠지.
새엄마는 스물두 살에
20살이 넘는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 것이니
이해해줘야 하겠지.
그래, 어리니까.
그렇지만
나는 더 어렸다는 걸
왜 어른들은 몰랐던 걸까.
*
부모님이 없냐는 소리를 듣는 경우는 너무 흔했다.
꾸깃한 와이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을 때,
가족 외식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말을 했을 때,
친구 집에 갈 때마다
걸신들린 듯 저녁을 얻어먹었을 때,
씁쓸하지도 않았다.
나는 부모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피드백들이 좋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부모 없는 티가 나는 게 어느 지점인지
명확히 알고 철저히 감출 수 있었기에.
*
동생만큼은 내가 겪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소외와 방치, 각종 폭력과 폭언들,
이런 집안에서 자라야 해서 감내해야 했던
주변의 시선들, 진로의 방황, 학업의 고충.
나는 어릴 적 내게 하는 조언이라 생각하고
동생의 진로를 같이 고민했다.
동생이 대입으로 고민할 때
나는 동생의 편을 들었다.
그렇게 그림이 그리고 싶으면 한 번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새엄마와 아빠는 나보고
'동생 인생 망칠 애'라고 했다.
아빠는 조용히 내게 다가와
새엄마에게 받은 억울함을
동생에게 풀지 말라고 다그쳤다.
악마 취급은 익숙해지지 않고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둘은 대체 왜 내가 동생을 저주한다고 생각한 걸까.
내 기억 속 동생은
거무죽죽한 짧은 다리로 절뚝대던 그 모습인데.
*
야속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나보다 잘 살았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나보다 잘 살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는 늘 빈곤했고 그 안에서 공감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
새엄마는 희한했다.
쥐 잡듯 나를 증오하다가도 사람들 앞에서는
날 사랑했다.
특히 친척들이 한데 모일 때.
그럴 때는 새엄마를 엄마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나보고 병신이라고 하겠지.
그럼에도 사랑하는 척이 아니라고 느낀 건
사람들이 없을 때도
그 태도가 미지근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스무 살이 된 뒤에는 더 그랬다.
잊지 않고 나의 밥을 차려주고,
작은 돈이지만 내 명의의 청약을 넣고,
장학금을 타지 못한
마지막 학기에는 등록금도 보태주었다.
쇼핑을 하면 내 옷을 잊지 않고 사주곤 했다.
나를 향한 새엄마의 마음은 애증인 걸까.
누군가는 내게 병신이 맞다고 했다.
"네가 이제 일해서 돈 벌 나이니까
잘 보이려는 거지."
맞을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띨띨한 인간은 아니었다.
평생을 눈치 보고 살아왔고
평생을 숨 죽이며 지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엄마는 '가끔' 나를 사랑했다.
나를 향한 기본적인 태도는 떨떠름이었지만
분명 나를 사랑한 순간들이 있었다.
수능날 아침 나를 꽉 안아주었을 때,
수술한 나를 간호해 주었을 때,
공장에서 '뼈 빠지게 번 돈'으로
날 자신의 고향에 데려가 구경시켜 주었을 때
그 진심들을 모두 거짓이라고 하기엔
새엄마에게는 나를 쳐낼 순간들이 더 많았다.
새엄마를 향하는 내 마음은 뭘까.
하루에도 몇 번씩 새엄마에 대한 마음이 요동친다.
새엄마가 콱 사라져 버렸으면 하다가도
그저 거리만 두고 지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엄마도 나만큼 나라는 인간이 어지러울까.
글을 쓰는 와중에도
새엄마라는 단어보다 엄마라는 단어가 더 익숙해서
뒤늦게 엄마 앞에 '새'를 집어넣는다.
*
아빠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한다.
집안에는 보험, 상속 등 낯선 단어들이 들린다.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아빠는 때가 왔다고 여긴다.
과거를 잊으라고 하지는 않지만
현재를 살라고 한다.
아빠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괴롭다.
아빠가 사라지면 이 역할극도 끝나는 걸까.
아빠 말대로 사실은 역할극이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을까.
*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어버이날에 선물을 고민하는 자식이면 어땠을까.
죽음을 원할 때 남아있는 가족을 생각하라는 말이
충격이 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면 어땠을까.
부모님을 맘 놓고 사랑할 수 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어땠을까.
나는 조금 더 사랑스러웠을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사람을 마다하지 않고
내 마음을 숨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닭과 달걀 같았던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게 확실해지면 내 마음도 확실해질까.
지금은 그저 기다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