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이야기_서남공정 vs 동북공정

이부작의 여행기

by 이부작

안나푸르나 여행기를 정리하다가 갑자기 서남공정과 동북공정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티베트의 현재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시대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일제가 우리에게 했듯이, 중국은 티베트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수십 년간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베이징과 라싸에 철도를 연결하고 한족을 대거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사람들을 중국화로 세뇌화 시켜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티베트는 제가 10여 년 전에 갔을 때 보다 정말 많이 중국화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티베트의 독립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겨우 자치권 확대 정도만 협상(?, 이야기)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늘도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 투지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독립 정신은 아직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글을 쓰면서 확인해 봤는데요, 중국의 침략으로 티베트인 100만 명이 사망하고 6천여 곳의 사원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하 정말 욕 나오네요... 슬프고 화나게도 1) 서남공정은 우리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인 시키려는 2) 동북공정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나라가 바로 서야 하고, 대한민국은 반드시 주권이 강한 강대국이 되어야 합니다!



[마낭에서 추석 연휴를 맞이하다]


마낭에 도착한 후 3층 방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배낭 아래쪽이 좀 축축했다.

원인을 파악해 보니 꽁꽁 묶어놔서 안심하고 있었던 플라스틱 김치통이 세고 있었다.

서둘러 김치를 빼서 바람이 강하게 부는 옆 옥상에다 보관하였다. 방 안은 김치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방안의 김치 냄새가 그리 싫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했다. 그리곤 다시 롯지 옥상에 가서 계곡 사이에 걸쳐있는 거대한 빙하 사진을 찍었다. 빙하의 계곡은 완벽한 황량함 그 자체였다. 잠시 빙하를 구경하다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롯지 밖으로 나왔다. 마을은 상당히 컸다. 털 모자와 장갑, 등산용품을 판매하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안 팔린 재고처럼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가격 또한 비쌌다.


잠시 둘러보다가 다시 위쪽으로 향했다. 빼곡한 골목길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앞쪽에 역시나 마니차가 보였고, 그 앞에서 여자 꼬마 아이 두 명이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또 귀여워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러고 나서 이번엔 내가 마니차를 돌리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이번 트레킹 중에 나는 마니차를 볼 때마다 소원을 빌었다.


계속 돌아다녔지만 마낭이 꽤 큰 마을이라 다 구경은 못했다.

발을 돌려 다시 호텔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카페에서 시간 일정표에 맞춰 영화를 상영한다고 적혀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비디오방처럼 이곳에서도 영화를 상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영화 제목이 ‘3) 티베트에서의 7년’이었고 포스터가 나의 관심을 끌만큼 눈에 띄었다.

티베트에서의 7년은 장자크아노 감독의 영화로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아 유명해졌던 영화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히말라야의 최고봉 중의 하나인 낭가 빠르바트로의 원정을 떠난 오스트리아의 유명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브래드 피트)가 귀향을 위해 히말라야에서의 사투를 벌이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라는 금단의 도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티베트의 모든 국민에게 추앙받고 있는 종교적 영적 지도자인 13세의 어린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서 달라이 라마에게 서방 세계의 문명을 가르쳐 주며 서로의 우정을 나누게 되었고, 그 후 티베트에는 엄청난 정치적 격변의 시기가(중국 인민 해방군의 침략) 닥쳐왔고, 이러한 티베트에서 하인리히 하러가 보낸 7년의 생활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옆에 친구라도 있었다면 들어가서 카페를 구경하고 실제 영화도 봤을 텐데 그냥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시간을 내서 제대로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어제 본 이스라엘 학생들을 또 만났다. 그중 어제 나보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던 친구가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저녁에 이스라엘 식 파티를 한다며 나를 초대했다. 오늘이 이스라엘의 무슨 기념일이라 트레킹 중인 이스라엘 친구들이 한데 모여 이스라엘 음식도 먹고 춤도 추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었다.


꼭 가겠다고 말하고 롯지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실제로 갈 마음은 전혀 없었고 그저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가급적 이 친구들하고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곳 롯지는 룩체 아저씨와 약속해서 머물기로 한 예티 호텔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낭에 도착한 후 예티 호텔에서 계속 사람을 기다렸지만 몇십 분 아무 대답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옆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에 예티 호텔에 다시 들러서 아저씨를 찾아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엊그제부터 돈 사용에 대한 기록도 소홀해졌다. 트레킹 중에 돈을 헤프게 쓰지도 않고 있고, 돈을 아껴야 한다고 일일이 기록하며 적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라 그냥 내 하고 싶은대로 했다.


오늘은 금요일,

한국에서는 민족의 대명절 추석 연휴의 시작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 가는 차에 몸을 싣고 있을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런데 난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 와있었다. 심지어 내 존재가 한국에서는 이미 잊혀진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한국의 그리운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다.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마낭에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통화를 한다 해도 통화요금 1분에 250루피로 너무나 비쌌다.(1분에 3750원 정도)

그리고 통화상태도 안 좋고 이처럼 너무 비싸니 내일모레 토롱라를 넘고 무사히 묵티나트에 도착한 후 집에 전화하리라 다짐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 지나가고 있고 한국에서 가져온 무스탕 책을 모두 읽고 침낭 안에 누워서 글을 쓰며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한국에 있었으면 이런 자유는 전혀 생각을 못 할 것이다.


침낭 안에 있으니깐 나만의 공간이 푸근하고 따뜻했다. 이미 마낭에 도착해서 몇 시간 낮잠을 잤는데도 또 졸음이 왔다. 내 손목에는 아직도 나디의 롯지에서 산 털실 팔찌가 수호신처럼 차여 있었다. 샤워를 하건 잠을 자건 아직까지 한 번도 풀어 본 적이 없었다. 이 팔찌 때문에라도 무사히 여행을 끝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녁이 나올 때까진 시간이 남아 있어서 다시 눈을 붙였다.


1) 서남공정(西南工程)은 중국이 티베트 지역을 자국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역사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이는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기반하여 진행된 것으로,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가 중국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한장동원론(漢藏同源論)을 통해 한족과 티베트족이 같은 기원을 공유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서남공정은 동북공정과 함께 중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한 국제적인 논란도 존재합니다.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를 역사 왜곡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이를 학술 연구의 일환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서남공정과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 연구 프로젝트로, 각각 티베트만주 지역의 역사를 중국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남공정은 1980년대부터 진행되었으며,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연구였습니다. 이후 2002년부터 동북공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포함시키려는 시도였습니다.

즉, 서남공정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동북공정이 시작된 것은 맞지만, 서남공정이 완전히 끝난 후 동북공정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두 프로젝트는 각각의 목적과 시기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중국의 역사 공정의 일환으로 각각 추진된 것입니다.


3) 티벳에서의 7년 줄거리(출처 : 네이버) : 임신한 아내를 뒤로한 채 히말라야의 최고봉 중의 하나인 낭가 빠르바트로의 원정을 떠난 오스트리아의 유명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 브래드 피트 분). 강인함과 냉철함, 그리고 이기적인 성격의 하인리히는 혹한의 산정에서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이것은 그의 험난하고 기나긴 여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영국군 포로수용소 생활, 그리고 죽음을 건 탈출. 귀향을 위해 다시 한번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히말라야에서의 사투. 그리고 티벳의 라사라는 금단의 도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어느날, 낯선땅 티벳의 이방인이 된 하인리히. 티벳의 모든 국민에게 추앙받는 종교적, 영적 지도자인 13세 어린 나이의 달라이 라마(Dalai Lama, aged 14: Jamyang Wang Chuck 분)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뀐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에게 서방 세계의 문명을 가르쳐주며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후, 험청난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처한 티벳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하인리히는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을 통해 영적인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 하러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 한지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달라이 라마를 만나,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린 달라이 라마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그가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평온했던 영혼의 나라 티벳에서 중국 인민 해방군이 진격해 오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중국의 점령 이후 백만의 티벳인이 죽었고 6천 여곳의 사원(Monasterles)이 파괴됐다. 1959년 인도로 피신한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중국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지금도 하러와는 절친한 친구다.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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