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이야기_구원의 땅 묵티나트

이부작의 여행기

by 이부작

[Down is not better!]

몇 시간째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주위에는 나 빼곤 아무도 없었다. 꺼멀은 까마득히 뒤에 있었고 무릎의 압박은 계속되었다.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트레커들 네 다섯 명을 본 이후로 완벽한 홀로였다.


조금 더 내려가자 앞쪽에 두 명의 트레커가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나를 보더니 차를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여기서 쉬다간 몸이 더 적응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고맙다며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내리막길은 정말 끝이 없었다. 한국에선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코스가 긴 내리막길에 바위들이 많아 힘들었는데 이 코스는 비교 자체를 하기 힘들 정도로 난코스였다.

무릎의 고통을 잊어보려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는 노래가 많지 않아서 만화 주제가를 죄다 불렀다. 여러 번 부르다 지치면 내 마음대로 개사도 해보았다.


'붕붕붕 아주 작은 Smiley.. 꼬마 Smiley가 나간다,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Smiley. 엄마 찾아 묵티나트 찾아, 낯설은 히말라야 여행, 꺼멀도 함께 하지요, 거시기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거시기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룰루랄라 룰루랄라 귀여운 Smiley는 꺼멀과 함께,

어렵고 험한 일 헤쳐나간다, 사랑과 희망을 가득 싣고서, 아하 신나게 달린다. 귀여운 꼬마 Smiley ㅇㅇ...'


개사한 노래가 너무 유치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힘은 솟았다. 알고 있는 만화 주제곡을 다 부르고 트로트도 수차례 불러보았지만 아직도 급경사 내리막길이었다. 다행히 눈 내리는 것은 멈췄지만 길은 아직도 미끄러웠다. 한발 한발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만약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발을 잘 못 헛디딘다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내리막길이었다.


이번 트레킹 중에 다른 여행자들과 만나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down is better'였는데 오늘의 내리막길은 내 인생 최악이자 최고로 긴 예수님과 부처님의 고행 길 같았다. 정말이지 down is not better였다. 이 험한 길을 꺼멀은 어떻게 내려오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몇 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내려왔다. 그래도 한발 한발 걷다 보면 끝이 보이는 법, 저 멀리 희미하게 거대한 평지가 보였다. 그런데 내 앞에 보인 아래쪽 풍경은 평상시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 풍경에서 위쪽 하늘은 짙은 회색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아래쪽 1/3지점부터 하늘이 수평으로 둘로 나뉘어 그 밑으로는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과 같이 이 풍경은 마치 선과 악이 만나는 묵티나트의 경계선 같았다.


'위쪽은 고행의 땅이고 아래쪽은 천국의 땅 같군...'


특이하고 신기한 풍경을 계속해서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고 나서 구원의 땅 묵티나트로 서둘러 내려갔다. 묵티나트에 가면 정말 내 영혼과 육체를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눈으로 보기에는 가까워 보였지만 어림짐작으로 한 시간은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묵티나트의 대 자연이 눈앞에 보이니 더욱 힘이 솟았다.


[구원의 땅 묵티나트(muktinath, 3760미터)]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여기는 티베트 인이 운영하는 묵티나트의 한 롯지 2층 숙소이다. 이곳의 많은 롯지들 중에 어느 곳에서 1박을 할까 고민하다가 문 앞에 Free Tibet이라고 적혀진 문구를 보고 주저 없이 들어왔다.


티베트라는 말을 들으면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발버둥 치는 그들의 처절한 모습이 보여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티베트는 중국의 1/8 정도의 땅덩어리를 차지할 만큼 광활한 지역이다. 이곳엔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이 땅을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2년 전에 티베트를 혼자 여행한 적이 있었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 도착한 나는 손대지 않은 옛 그대로의 건물들과 순수한 눈빛의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했다. 그런데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티베트의 거의 모든 거리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고 건물들은 여기저기서 공사 중이었다. 그리고 눈만 돌리면 쇼핑센터가 보였으며 쇼핑백을 들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한족들로 거리가 넘쳐났다.


이게 다 2007년부터 중국 베이징부터 라사까지 연결된 칭창열차 때문이었다.

평소에 비행기를 타고 올 수밖에 없었던 중국인들이 이제는 편리하게 기차를 타고 쇼핑을 하러 홍수처럼 몰려들었다. 티베트 라사의 경제 또한 당연히 한족들이 다 잡고 있으며 라사가 상업화되는 만큼 티베트인들의 독립의지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러한 티베트의 중화민족화 작업 모두를 통틀어 중국의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고 한다. 서남공정은 티베트 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 문제 따위를 연구하는 국가적 사업의 명칭이지만, 실제로는 티베트가 늘 중국의 일부분이었다며 티베트의 과거 찬란한 역사를 말끔히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이 서남공정이 우리 한국인에게도 중요한 이유가 중국의 서남공정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중국은 2002년부터 우리의 고구려 사를 없애고 만주지방이 원래 중국의 역사였다고 주장하며 얼토 당토 않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티베트 여행 때 나날이 상업화되어 순수함을 잃어가는 라사 모습을 보고 이래저래 마음이 착잡했었다.


묵티나트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마지막 은둔의 땅 티베트 무스탕이다.

무스탕은 네팔의 자치구 중 하나로 대부분 티베트인들이 정착해 살고 있고(2001년 기준 14981명), 위쪽으로는 중국과 경계를 두고 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곳인 만큼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무스탕은 위아래로는 약 80킬로미터, 좌 우로는 약 45킬로미터로 총 3573제곱 킬로미터의 크기이며 해발 고도가 보통 2500미터 이상이며 원래 독립된 왕국이었으나 18세기에 네팔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아직도 수도 로만탕에는 형식적이지만 왕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곳 북쪽의 묵티나트 풍경은 남쪽과는 완연히 달랐다. 남쪽이 초원지대라면 이곳은 거대한 협곡에 둘러싸인 사막지대와 비슷했다. 그래도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그리 척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의 거대한 산에는 옛날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동굴들이 많이 보였다. 그 동굴에 다가가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동굴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지금 시간은 오후 12시 50분, 숙소 옆 발코니에 빨래를 걸어놓고 추위에 떨었던 몸을 따뜻한 햇볕에 내맡기고 있었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던지 손가락의 근육도 꽁꽁 얼어 원래 악필인 내 글씨체가 더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히 고산증 증세는 이미 사라지고 몸 컨디션이 금방 회복되었다.


이곳도 해발 3700미터로 마낭 보다 높은 곳인데 내 몸은 이미 이 정도 고도에는 적응이 되었다.

새벽에 해발 4450미터에서 출발하여 5416미터를 통과하여 다시 3760미터로 내려오면서 1년 4계절과 생로병사를 다 체험한 것 같았다. 단 몇 시간 만에 고도 차이가 거의 2000미터가 되는 경험을 했다는 게 신기했다.


꺼멀은 아직도 묵티나트에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글로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정말 내 평생 최고로 힘들었는데...꺼멀은 얼마나 더 힘들어할까?

꺼멀이 올 때까지 이곳 2층 발코니에서 기다려야 했다. 묵티나트는 큰 마을이기 때문에 내가 기다려주지 않으면 꺼멀이 나를 못 찾고 이곳 주위를 헤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나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꺼멀이 보였다.

꺼멀이 이리도 반가울 수 없었다. 꺼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꺼멀이 2층의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롯지로 달려왔다.


"Are you ok kamal?"

"Yes, 그런데 무릎 아파요"


내려오면서 무릎이 정말 많이 아팠나 보다. 생전 아프다는 소리 안 하는 꺼멀인데, 무릎을 계속 쓰다듬으며 한국말을 하며 웃음을 보였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다'

"Road is very steep and dangerous, so I worried about you"


내려오는 길이 험해서 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꺼멀은 참 고마운 친구다. 꺼멀이 없었으면 내가 무사히 토롱라를 넘을 수 있었을까?...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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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티나트 istockphoto-1435100570-1024x102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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