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다시 찾은 뚝배기 식당]
휴게소에서 잠시 쉰 버스는 다시 2시간여를 달려서 드디어 포카라 시내로 들어왔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잡고 작년에 묵었던 네팔 게스트하우스(Nepal guest house) 호텔로 이동을 하였다. 이곳은 일류 호텔 못지않게 깔끔하고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텔은 1년 전과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작년에 사용했던 1층 제일 오른쪽 방에 짐을 풀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관광객이 머물고 있어서 2층에 여장을 풀었다. 널찍한 방안에는 침대 2개와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었고 천장에는 열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선풍기가 달려있었다. 이 방 하루 사용료가 단돈 500루피이고 우리 돈 따지면 7500원 정도이니 이만한 시설에 가격 대비 참으로 저렴하였다. 물론 이보다 훨씬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도 많았지만 작년의 포카라 여행 추억이 생각나서 주저 없이 이곳으로 왔다.
짐을 풀자마자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를 빨았다. 물론 빨래도 저렴한 비용에 맡길 수 있지만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싫었다. 산에서 빨래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빨래할 양이 많았다. 일일이 비누칠을 하고 손으로 옷을 비비고 물로 헹군 후 물기를 뺐다. 그리고 빨래를 방안 옷걸이에 펴서 널려놓고 잘 마르게 하기 위해 천장의 선풍기를 돌렸다. 그리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몸이 나른해졌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무사히 끝나고 고대했던 포카라에 도착한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10여 일간의 트레킹 여정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순간 또 잠이 들었나 보다. 꺼멀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오후 5시 55분이 넘었다. 식당에 갈 시간이 되었다. 무사히 트레킹을 끝낸 기념으로 한국 식당 뚝배기에서 작년처럼 조촐한 저녁 파티를 하기로 했다.
꺼멀과 함께 다시 찾은 뚝배기는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잘 가꿔진 정원에 야자나무들과 식탁들,
왼쪽에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사무실 겸 여행사 건물이 있었고 오른쪽 별관에는 노래방 겸용 식당이 있었다. 웨이터들은 작년에 봤던 젊은 네팔 청년들 그대로였고, 내 옆엔 작년과 똑같이 꺼멀이 듬직하게 있었다. 작년 소망이 올해 꼭 사랑하는 사람과 이곳에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었는데 올해도 역시 혼자였다. 정말 내년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와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골랐다. 메뉴판의 모든 음식들이 내 식욕을 자극했다. 그 음식들 중 트레킹 기간 제대로 못 먹은 고기를 보충할 필요가 있어서 인당 220루피 정도되는 제육볶음을 주문하였다. 220루피면 평지인 이곳에선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나는 상이 차려지기 전에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소주와 골뱅이, 그리고 파인애플 통조림에 참 쥐포를 안주 삼아 꺼멀과 건배를 했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젊은 웨이터가 반찬을 나르며 능숙하게 서빙을 했다. 돼지고기에 상추, 된장찌개에 각종 나물로 신속하게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우리는 돼지고기를 쌍추에 싸서 순식간에 앞의 음식을 먹어 치웠다. 꺼멀도 너무나 맛있어 했다. 배가 부르자 우린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배도 부르고 술기운도 올라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기분이 좋아지자 라메쉬 형이 다시 생각났다. 꺼멀의 휴대전화를 통해 라메쉬 형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리고 나서 라메쉬 형이 전화를 받았다. 꺼멀이 신나게 라메쉬 형과 트레킹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여행을 무사히 잘 마쳤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1분 여가 지나서 꺼멀이 전화기를 바꿔줬다.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로 형에게 말했다.
"라메쉬 형, 저 **에요, 덕분에 트레킹 무사히 마쳤어요, 여기는 포카라의 뚝배기에요, 잘 계시죠?"
"야,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10일 만에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할 수 있니, 최고다 우리 동생, 어디 아픈 덴 없고?"(참고로 라메쉬 형은 독학으로 한글을 배웠고 일상적인 한국어 대화도 전혀 문제없다)
"예, 물집 잡힌 것 빼고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내일모레 카드만두로 돌아가는데 만날 수 있죠?"
"아, 내일이 아니라 모레야? 나는 내일 올 줄 알았는데."
순간 카트만두를 떠나기 전 버스 정류장 앞에서 형이 말한 번지점프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아직까진 번지점프가 무리인 것 같았다. 애써 말을 돌렸다.
"작년에 포카라를 충분히 둘러보지 못해서 올해는 하루 더 쉬었다 갈려고요"
형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많이 묻어났다.
"그래, 할 수 없지, 아쉽지만 금요일에 보자고. 비행기표 예매하면 돌아오는 시간 미리 알려줘"
"네, 금요일에 뵐게요"
라메쉬 형과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꺼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Kamal, I couldn't make it without you."
정말로 꺼멀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무사히 뚝배기 식당에서 앉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No, sir. You did very well.”
꺼멀은 나에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이 모든 공은 꺼멀에게 돌아가야 한다.
"No, my bag was not heavy, but your bag was very big. And you always protected me.”
한참 동안 트레킹 중에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주위를 보니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 친필 사인들 이 많이 있었다. 이 중에 가수 이문세 님의 사인도 보였다. 뉴스에서 몇 달 전에 가수 이문세 님과 연기자 박상원 님, 이태란 님이 함께 네팔 아이들을 위해 설레발(설레이는 발걸음) 원정대를 꾸며 학용품을 들고 네팔을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여기 포카라도 들렸었나 보다.
이곳 포카라에서 우연히 이문세 님 같은 대스타를 만나게 되면 참 반가웠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나 또한 네팔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아마도 라메쉬 형이 네팔의 서쪽 오지에 학교를 지을 목적으로 구입한 땅에 학교가 세워지면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온 사방이 어두워졌지만 날씨가 흐려서 별이 안 보여 아쉬웠다. 이번 트레킹 중에 만년 설산과 아름다운 풍경들은 많이 봤지만 유독 밤하늘의 별들은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저녁 7시 4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숙소가 포카라에서 약간 외곽에 있다 보니 길거리가 조용하고 사람의 왕래도 많지 않았다.
꺼멀과 함께 갈지자를 하며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상점에서 주인이 나와 가방이나 옷을 사라고 말을 걸었다. 오늘은 피곤하다고 내일 보자며 숙소로 돌아왔다. 꺼멀에게 내일 오전 5시 30분쯤에 일어나서 폐와 호수로 일출을 보러 가자고 부탁했다.
작년에 폐와 호수의 보트 위에서 본 일출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 여였다. 꺼멀은 역시나 좋다고 했다. 꺼멀과 헤어지기 전에 감사의 인사를 다시 전했다.
”Kamal, AC(Annapurna Circuit) is not easy. It was like my dream, but we made it. Thank you for everything. You are my best friend"
꺼멀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꺼멀을 보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옛날 옛날에 나는 꺼멀의 마님이고 꺼멀은 나의 충실한 종이 아니였을까… 아니야, 내가 꺼멀의 충실한 종이어서 현생에서는 지금처럼 대우를 받는지도 몰라.'
혼자 이런 생각을 해보다가 피식 웃었다. 나는 참 상상력이 풍부했다. 호텔 입구에서 바라본 2층의 내 방 불은 꺼져있었다. 오직 나를 반기는 것은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과 풀벌레들뿐이었다.
포카라에서의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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