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추석날 새벽,
여러분들에게 안나푸르나 이야기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추석날이 다가오면 항상 생각나는, 이부작이 제일 좋아하는 詩 중 하나인 김영랑 시인님의 『오~매 단풍 들것네』와 오늘의 안나푸르나 이야기 소주제인 '나갈곶의 별 헤는 밤'을 더욱 아름답게 밝혀주는 윤동주 시인님의 『별 헤는 밤』 도 선보입니다.
여러분,
키보드로 차분히 아래 두 詩를 한 글자 두 글자 입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필사하는 것처럼 제 마음이 넉넉해 지고 밝은 보름달이 뜨는 것 같습니다. 이 기운을 이웃분들에게도 전해드립니다. 보름달처럼 은은하고 넉넉한 풍요로운 한가위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연휴 기간 안전 운전하시고 많이 웃고 행복하시죠~ 공감과 댓글 그리고 광클은 이부작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서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그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나갈곶(nagarkot, 2164미터)의 별 헤는 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목적지를 향해 우리는 계속 달렸다. 어두웠지만 여기 저기서 풀벌레들의 소리가 들렸다. 산의 2/3정도 올라왔을 때쯤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밤 하늘은 대학생 때 지리산 세석 산장에서 봤던 별 밤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온 밤 하늘이 별로 가득했고 조금 있으면 별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와 좋다, 별 많다" 단지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카트만두는 매연이 심해 당연히 별들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 나갈곶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게 수없이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어서 더 감격적이었다. 끝없는 별들의 반짝임에 트레킹 동안 별을 못 봤던 아쉬움도 모두 해소되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카트만두 도시의 반짝이는 야경도 끝내줬다. 하늘과 땅 온통 별빛과 불빛의 쇼에 감탄사만 나왔다. 나는 진정 행운아였다. 어느 한국인이, 아니 어느 네팔 여행자가 이렇게 오토바이를 2시간 이상씩 타고 나갈곶을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의형제인 네팔인 형과 자연스레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타멜의 거리를 걸을 수나 있을까?
또한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인구 중에 토롱라를 털끝 하나 다치지도 않고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넘을 수 있겠는가! 이건 분명 히말라야의 신들이 나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드디어 저 앞에 건물들과 불빛이 보였다. 다행히 아직 소중한 나의 엉덩이는 깨지지 않았다.
우리는 조그마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은 10평 정도로 작았다. 형이 주인아저씨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예약했던 방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형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방 예약이 중간에 잘 안되었나 보다.
주인아저씨가 다른 롯지 주인을 소개해 줘서 옆 건물로 방을 둘러보러 갔다. 방은 깔끔하고 넓었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1일에 1000루피를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외국인인 내가 있어서 가격을 높이 부르는 것 같았다. 라메쉬 형이 비싸다고 펄쩍이며 가격을 깎으려고 했으나 주인은 1000루피 이하는 절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밤도 늦고 잘 곳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이곳에 머물자 했지만 형은 절대 안 된다며 우리는 다시 술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후끈 달아오른 열도 식힐 겸 시원한 맥주를 한잔했다. 그리고 맥주잔에 마지막 남은 팩 소주를 타서 폭탄 주를 마셨다. 폭탄 주를 마시니 취기가 약간 올라왔다. 형의 목소리 톤이 높여졌다.
"돌대가리야, 돌대가리.. 이 시간에 관광객 누가 찾아오겠어. 싸게 해서 방을 주면 주인도 좋고 우리도 다 좋잖아. 그런데 절대 가격은 깎을 수 없다고 하잖아. 이제 그 방은 오늘 하루 놀릴 수밖에 없는데... 돌대가리야."
형의 기분이 많이 상했나 보다. 그런데 네팔인을 한국말로 ‘돌대가리’라 하며 화를 푸는 형의 모습에 속으로 웃음이 났다. 맥주를 다 비우고 나자 형이 조금만 기다리라며 훌쩍 술집을 나가버렸다. 형이 나간 뒤 한참을 뻘쭘하게 앉아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네팔 청년들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가끔씩 내 쪽을 쳐다보았다. 한국인과 네팔인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게 신기했나 보다.
10분쯤 지나자 형이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방을 구한 눈치였다. 형이 맥주 값을 계산하고 옆 건물로 이동하였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매점에서 양초와 맥주 2병과 종이컵 그리고 칫솔을 샀다. 이번엔 내가 재빨리 계산해 버렸다. 이런 나를 보고 형이 그냥 웃었다. 방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불이 켜지지 않았다. 양초를 2개 켜서 불을 밝히니 방은 좀 전에 봤던 곳보단 크거나 깨끗하진 않았지만 트레킹 동안 사용했던 롯지들보다는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침대를 사이에 두고 탁자 위에 술과 안주를 펼쳤다. 술을 몇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자 다시 취기가 올라왔다. 하룻밤만 자면 네팔을 떠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좋았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전기가 다시 들어온 것이었다. 별빛만큼이나 전기가 참 반가웠다. 우린 다시 밝은 불빛 아래 못다 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나갈곶의 별 헤는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