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태양을 등지고 밀크 티를 마시다
케가르네(ke garne),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면 모든 일이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붉은 태양을 등지고 밀크 티를 마시다]
새벽 2시부터 잠에서 깨어 뒤척거렸다.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서 나름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다시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트레킹이 시작된다는 긴장감으로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어차피 잠도 안 오고 새벽에 일어나 잠을 싸야 하니깐 지금부터 하자'
이리 다짐했지만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에 모든 게 의미 없이 느껴졌다. 그렇게 뜬 눈으로 두어 시간이 흘렀다.
밖은 아직도 완벽한 어둠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불을 켰다. 고맙게도 나이 들어 보이는 형광등에서는 방안을 환하게 밝히고도 남을 만큼의 매력을 발산하였다. 주위엔 트레킹 물품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먼저 큰 배낭의 하단부터 딱딱하고 각진 물품들을 꽉꽉 채워나갔다.
소시지 같은 간식은 35리터짜리 배낭 앞부분에 채워 넣고 가장 중요한 비상금은 반반을 나눠서 35리터짜리 배낭 가장 밑부분과 내 몸의 복대에 각각 챙겨 넣었다. 얼추 1시간이 지나자 서울에서 가져왔던 3개의 짐은 2개로 줄어 있었다. '남는 소형 배낭은 라메쉬 형에게 맡겨놔야겠군'
6시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짐 꾸리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샤워를 했다. 샤워가 거의 끝날 무렵 꺼멀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똑똑.
"Hello, sir"
"oh, 꺼멀 Wait a minute, I'm almost ready"
꺼멀은 어제의 기지 바지가 아닌 곤색 면바지에 흰색 면 티를 입고 왔다. 면 티가 배를 가렸지만 볼록한 배는 여전하였다. '이번 트레킹으로 꺼멀 뱃살은 좀 빠지겠군'
우리는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각자 배낭을 한 개씩 메고 고요한 타멜 거리에서 택시를 잡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라메쉬 형을 주제로 소설을 쓰면 재미있겠다. 제목은 어떤 게 좋을까? '라메쉬 brother의 케가르네(ke garne)’가 괜찮을 것 같네……' 정말로 기회가 되면 진짜 한 번 써봐야겠다.
케가르네는 네팔 말로 '어떻게 하려고'라는 뜻으로 네팔인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이 표현을 활용했다. 특히 어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면 모든 일이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 표현대로 네팔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조급함이 없었다.
‘빨리빨리’의 우리 한국 사람들 기질과는 정 반대로 네팔인들은 엄청난 인내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5시 50분쯤에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네팔스럽게도 출발할 차는 아직 보이지도 않았다.
라메쉬 형은 어제 약속한 데로 노스페이스 방풍 재킷을 가져왔다. 그리고 더 고맙게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라메쉬 형의 여자친구분도 함께 와 주었다.
"안녕하세요?"
"나마스떼?" 누나가 수줍게 인사했다
"누나가 참 곱고 미인이시네요, 함께 배웅 나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형이 방풍 재킷을 나에게 주었다.
"이 재킷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정품으로 산 거야, 유용하게 쓰라고”
“정말 고마워요, 잘 쓸게요.”
네팔에는 수많은 가짜 명품 등산복들을 살 수 있고 가격도 정상가격의 1/10 정도 밖에 안 했다. 질은 손색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짜는 가짜였다. 형은 혹시나 자기가 빌려주는 게 가짜인 줄 오해할까 봐 정품이라고 말해준 것이다.
“차 떠나려면 좀 더 기다려야 될 거야. 밀크 티 한잔하자"
새벽 공기가 차가운 카트만두의 이름 모를 길가에서 우리는 따뜻한 밀크 티를 마셨다. 이번에도 밀크 티 값을 형이 계산해 버렸다.
“야, 이 밀크 티를 1년 만에 다시 맛보네요, 참 따뜻하고 좋네요!”
밀크 티를 마시며 라메쉬 형과 누나의 러브스토리를 짧게 들었다.
형과 누나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서로 알게 된 지는 30년이 넘었고 연인 사이가 된지는 20년이 지났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아직 결혼을 안 한 이유를 물어보자 여자친구가 심장이 안 좋아서라고 했다. 결혼을 안 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적당한 자리가 아니어서 그냥 밀크 티를 들이켰다. 저 멀리 카트만두 외곽으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일출을 배경으로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드디어 베시사하르로 가는 20인승 버스가 도착하였다.
버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낡았고 당연히 에어컨도 고장이 난 상태였다.
꺼멀이 서둘러 배낭을 들어 나르고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버스가 장시간 운행되니 화장실에 지금 들리는 게 좋지 않겠니? “
“아, 그렇게 해야겠네요”
그런데 정류장 주위에 화장실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역시 네팔이야, 정류장에 화장실도 없네……’
형이 나보고 따라오라고 했다.
형은 정류장 뒤쪽의 일반 가정집 사이로 들어갔다. 처음엔 형이 한적 한 골목에 대충 볼 일을 보라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형은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했다. 볼 일을 보고 버스 주위로 돌아왔지만 버스는 그렇게 또 10여 분을 더 지체하였다.
그리곤 버스가 곧 떠난다는 듯 경적을 울리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쉬고 있던 승객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되었다. 라메쉬 형과 누나와 헤어지기 전에 무언가를 드리고 싶었다. 잠깐 고민하다 한국에서 가져온 부채 모양이 새겨진 금색 북 마크가 생각났다.
서둘러 책 속에서 예쁘게 포장된 북 마크 3개를 꺼내 라메쉬 형과 누나, 그리고 꺼멀에게 선물로 주었다.
“별건 아니지만 책 읽으실 때 사용하시라고요”
"그래 고맙다, 정말로 조심조심 또 조심해서 다녀와. 빨리 다녀오면 같이 내가 말했던 곳에 가서 번지 점프하자"
형은 어제 술 마시면서 내가 트레킹을 무사히 끝나고 돌아와 시간이 있다면 함께 번지점프를 하러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형은 작년에도 윤서 스님과 함께 번지 점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소가 카트만두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히말라야의 보테코시 계곡인데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번지 점프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높이 166미터의 다리에서 아래로 떨어진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번지 점프요? 네 알았어요……”
번지점프란 말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확답을 못하고 서둘러 인사를 했다.
“잘 들 계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저 원래 lucky guy에요. 조심히 잘 다녀올게요."
누나에게도 공손히 나마스떼 인사한 후 형을 꽉 껴안았다.
'정말 고마워요, 형이 없었으면 네팔에 다시 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버스는 형과 누나를 뒤로하고 카트만두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