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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 두 번째 이야기_오르막길

Children’s attack

by 이부작

[Children’s attack]

이곳은 참제이다.(chyamche, 1430미터)

오전 7시부터 나디에서 출발하여 점심을 게루무(gerumu, 1300미터)에서 180루피를 주고 또 달밧으로 먹고 오후 2시 45분쯤 이곳에 도착했다.

트레킹 중에 만났던 외국인 트레커들과 꺼멀은 오후 3시 20분쯤에 도착했다. 작년엔 꺼멀이 항상 내 앞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계속 뒤에 쳐진 걸 보니 배낭이 무겁긴 했나 보다. 내 짐도 나름 무거웠지만 꺼멀은 자신의 몸무게만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르막길을 올랐으니 눈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원래 계획은 탈(tal, 1700미터)까지 갈려고 했지만 꺼멀의 송아지 같은 눈빛을 보고 거친 숨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짠해져서 그냥 참제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 참제에서 네팔 꼬마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이야기는 이랬다.


롯지에 도착해서 2층에 방을 잡고 짐을 풀었다. 그리곤 땀으로 찌든 몸을 샤워하고 밀린 빨래를 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고생한 꺼멀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좀 주려고 2층 베란다에 자리를 깔았다. 천하장사 소시지, 맛밤, 몽셀통통, 새우깡, 그리고 보온 통에 담긴 소주로 이 정도면 히말라야 외딴 오지에서 진수성찬 급이었다. 꺼멀은 특히 소세지를 매우 좋아했다.


"꺼멀, do you remember this sausage? I brought it last year."

"Of course sir. It's delicious."


이렇게 소주도 간단히 하면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두 명의 남녀 꼬마 애들이 숙소 옆 공터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멀리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사진 찍는 소리에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사진기가 신기한지 자기들을 더 찍어달라고 모델인 양 앙증맞은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몇 장을 더 찍어주었다.

그런데 우리만 군것질을 하고 있는 게 미안해서 소시지를 애들에게 좀 가져다주라고 꺼멀에게 부탁을 했다. 꺼멀이 1층으로 내려가 소시지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면서 애들을 쓰다듬자 아이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뜻밖의 선물에 세상을 다 얻은 듯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 소시지를 주고 나니 롯지 주위가 난리가 났다. 아래의 꼬마 애들이 자기가 받은 소세시를 무슨 훈장인 양 근처 롯지에 있는 다른 꼬마 애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까지 합세해서 자기들도 달라고 1층에서 소리쳤다. 그중 숙소 집 아이는 아예 2층으로 올라와서 애교를 부리며 소시지를 달라고 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많은 네팔의 아이들이 트레커들 뒤를 쫓아다니며 ‘sweety, pen’을 외치고 다녔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이 50년대 헐벗고 굶주릴 때 미국 군인들을 쫓아다니며 ‘김미 초콜릿’이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가급적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볼펜 같은 물건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게 하나의 불문율이다. 네팔 아이들이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기가 아닌 타인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고 결과적으로 가난한 네팔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탕같이 단것을 많이 먹다 보면 양치질을 잘 하지 않는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아이들의 이빨이 다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숙소 집 아이에게도 소시지를 주었다. 그때 숙소 여주인이 올라왔다. 20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 벌써 애가 2명이라고 한다. 이곳 롯지에 투숙하게 된 이유도 참제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이 여주인이 방값을 싸게 해주겠다고 한 이유에서였다.

여주인도 한국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할 수 없이 여주인에게도 한국산 초콜릿을 주었다.

그리고 양해를 구하고 여주인의 사진도 한 장 찍었다.(히말라야 사진을 못 찾아서 좀 슬프네요ㅜㅜ)


아래에서는 아직도 동네 애들이 소시지를 달라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다행히 2층으로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참새처럼 계속 재잘대자 너무 시끄러워서 자리를 뜨고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보이질 않고 아무 반응도 없자 아이들은 흥미를 잃었는지 롯지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20여 분 뒤 주위가 잠잠해지자 동네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을 겸 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꼬마 애 한 명이 내 주위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다른 꼬마 애들도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반 바지의 양 주머니를 밖으로 빼서 가진 게 하나도 없다는 행동을 보여줬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이들이 팔을 딱 벌리면서 길을 막고 섰다.


"I don't have anything."


다시 필사적으로 말해보았지만 아이들은 꿈쩍을 하지 않고 더욱 깔깔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뒤에도 다른 아이들이 길을 막고 서며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갔다. 그러다 한 꼬마가 내 반바지를 잡고 매달 리면서 "sweety"를 외쳤다.

내가 한국말로 "진짜 없다니깐~!"이라고 하소연해 보았지만 그 아이는 심지어 반바지를 잡고 내 바지를 벗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허걱, 아까 빨래를 하면서 팬티도 빨아버리고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에 긴장감이 들고 오직 이 '위기 아닌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온 정신이 쏠렸다.

큰 소리로 외쳐보고 주위의 막대기를 들고 애들을 쫓아내보려고 했지만 아이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이럴 때 꺼멀도 주위에 없었다.

나는 최후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Hey, look at that!!"


'백투더 퓨처의 영화 한 장면'처럼 나는 손으로 길의 반대쪽을 가리켰다.

꼬마 애들이 잠시 그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반대편으로 발에 불이 나도록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다. 역시 36계가 최고였다. 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나이 00살 먹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게 뭐 하는 것인지...... 에고'


롯지로 돌아와 숨을 헐떡거리는데 꺼멀이 다가와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다. 그 자리에 없었던 꺼멀이 야속하기도 하고 이러고 있는 내가 창피하기도 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히말라야산맥은 ※오르막길의 연속입니다. 그렇게 한 발 두발 집중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기 되죠~ 아무리 힘이 들어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꾸준한 호흡'과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안나푸르나입니다.


오늘 포스팅할 글에 '오르막길'이라는 단어가 보였습니다.

어제 와이프가 정인이 부른 윤종신의 '오르막길' 노래가 너무 좋다고 추천해 줬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 안나푸르나 여행기를 올리는데 우연히 오르막길이라는 단어를 다시 만나니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혼자 조용히 노래를 다시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와~~~가사와 멜로디가 정말 너무너무 좋네요, 여러분들도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오르막길 노래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봄 날 되세요~


오르막길_윤종신(Feat. 정인)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 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난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크게 소리 쳐 사랑해요 저 끝까지

https://youtu.be/sh-PWYLyoRw?si=FG140b6ysbSqf9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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