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대흉, 자전거 폭주족, 그리고 패배를 배운 밤.
CRUCIAL SECTION과의 2016년 <질풍> 투어 3일차.
첫날 도쿄에서는 친구들의 환영과 응원을 한가득 받았고, 둘째 날 오카야마에서는 젊은 펑크들의 에너지에 떠밀리듯 연주를 마쳤다.
3일차는 교토. 오랜만에 맛본 패배감의 날이었다.
교토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공연 팀이라기보다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 가까웠다. 전일 투어 한가운데였지만, 그래도 교토인데, 그냥 라이브만 하고 돌아갈 순 없었다. 크루셜 섹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조금 일찍 시내로 나가 가장 교과서적인 선택을 했다.
금각사…라고 나는 꽤 오랫동안 믿고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우리가 간 곳은 금각사가 아니었다. 청수사, 키요미즈데라였다.
입구를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는데, 히로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키요미즈노 부타이카라 토비오리루….”
(청수사의 무대에서 뛰어내린다…)
“찬근, 따라 해볼래?”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히로는 씩 웃으며 설명해 줬다. 청수사 본당의 큰 무대에서 몸을 던질 각오로, 인생을 걸 만한 결심을 한다는 뜻이라고. 예전에는 실제로 저기서 뛰어내리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설명이 끝날 즈음, 히로의 눈이 슬슬 수상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야, 이거 홍보 영상 찍자. ‘청수사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로, 이번 투어를 박력 있게 돌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날도 어김없이, 히로의 개그 욕심과 투어 홍보 욕심이 동시에 발동했다. 나는 거의 강제 징집되듯 청수사 난간 앞으로 끌려 나갔다. 히로는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멤버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며 킥킥거렸다.
“좋아, 시작!”
나는 히로가 적어준 대사를 어설픈 일본어로 더듬거리며 외웠다.
“키요미즈노… 부타이카라… 토비오리루 카쿠고데… 콘도 노 닛폰 투어… 박력 있게… 뭐시기 뭐시기… FTS와 크루셜 섹션의 투어에 많이 와주세요!”
발음도 흐리고 의미도 몰랐지만, 히로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한 번 찍고 끝날 리는 없었다.
“오케이, 한 번 더!”
두 번째 테이크부터는 아예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몸을 앞으로 쭉 빼고 소리쳤다.
“키요미즈노 부타이카라 토비오리루—!!!
토비마스! 토비마스!!”
(뜁니다! 뜁니다!!)
무슨 문법인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어쨌든 “뜁니다! 뜁니다!”라는 말과 함께, 청수사의 무대에서 몸을 던질 각오라는 콘셉트는 대충 완성됐다.
문제는, 그걸 보고 있던 게 히로와 멤버들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진짜로 몸을 내미는 자세를 취하자, 근처에 있던 일본인 관광객 몇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교토의 고풍스러운 아주머니 한 분은 “위험하잖아!”라며 고개를 저었다.
크루셜 멤버들은 그런 시선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악동들처럼 비죽비죽 웃으며 내 일본어 발음을 따라 하고, 모리타는 “마지데???”를 중얼거렸고, 히로는 그 장면들을 전부 찍어 SNS에 올렸다.
“청수사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로, 이번 일본 투어를 박력 있게 돌겠습니다. 많이들 우리 FTS/CRUCIAL SECTION 투어에 와주세요.”
그날 저녁, 그 짧은 인터뷰 영상은 일본 펑크 친구들의 SNS 사이에서 꽤 돌았다. 댓글란엔 웃겨 죽겠다는 리액션들이 달렸다. 나도 재밌었다. 투어 홍보용으로는 이만한 개그가 또 없었다.
인터뷰 촬영으로 히로의 개그 욕심과 홍보 욕심을 충분히 채워준 뒤, 우리는 청수사 경내를 조금 더 둘러보다가 자연스럽게 오미쿠지(점궤)를 뽑으러 갔다.
작은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마다 하얀 종이들이 빽빽하게 묶여 있는 곳. 일본 만화와 영화에서 숱하게 보던 그 풍경이었다.
원래 나는 미신 같은 걸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일본 작품 속에서 수도 없이 봐온 장면을, 드디어 내가 직접 해보는 거였다.
‘이건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나무통을 흔들어 막대기를 하나 뽑았다. 막대기의 번호를 들고 멀뚱멀뚱 서 있는 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히로를 찾았다. 히로와 크루셜 멤버들은 청수사 직원에게 번호를 보여주더니,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네줬다.
나는 일본어를 잘 읽지 못해, 종이를 받아 들고도 바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눈으로만 줄을 따라가며 해석을 부탁하려 고개를 들었을 때, 옆에 있던 크루셜 멤버들은 이미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아,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됐구나.
“무슨, 의미…?”
히로가 숨넘어가게 웃으면서 말했다.
“대흉.”
보통은 ‘길’이냐 ‘소길’이냐, 나빠도 ‘흉’ 정도가 대부분인데, 내 손에 들린 종이 맨 위에는 큼지막하게 ‘대흉(大凶)’이 찍혀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관광지 오미쿠지에는 원래 흉을 잘 넣지 않는다고 했다. 굳이 멀리서 놀러 온 사람들 기분까지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
심지어 크루셜 멤버들도, 살아오면서 대흉을 실제로 뽑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슈퍼 레어!”
그들은 신이 난 표정으로 내 점괘를 돌려가며 구경했다. 나는 종이를 들고 서서히 침묵해 갔다.
내용은 더 참담했다.
'천둥이 치고 하늘이 흔들리듯, 앞으로 여러 번 일이 뒤집힙니다. 좋은 사람은 문을 꼭 잠그고 혼자 있고, 사람들과의 인연은 종이 쪼가리 위의 말로만 오갑니다. 큰 화가 있고, 좋은 일들은 모조리 더디게 옵니다.'
한마디로 재난 예고장.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흉이 나오면 저기 묶고 가면 돼.
저기 보이지? 하얀 종이 잔뜩 묶여 있는 데.”
나는 마지막 희망처럼 종이를 들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가느다란 나무 기둥들과 가로대로 엮인 구조물에, 수많은 점괘 종이들이 접힌 채 줄줄이 묶여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흉과 걱정을 묶어두고 돌아간 자리였다.
기분은 나쁘지만 어차피 미신일 뿐.
그렇게 생각하며 종이를 길게 두 번 접고, 기둥에 걸어 교차시키려 했다. 힘을 줘서 묶으려는 순간이었다.
뚝.
종이가 반으로 찢어졌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묶지도 못한 대흉 점괘가, 양손에 딱 반으로 갈라져 매달려 있었다.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일행은 그대로 쓰러졌다.
“대흉 뽑은 것도 처음 보는데, 그걸 또 찢어먹는 놈은 진짜 처음 본다!”
그들은 숨이 넘어가듯 끅끅대며 웃었다. 무릎을 꿇고 바닥을 치는 놈도 있었고, 난간에 기대 헉헉거리는 놈도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찢어진 종이 조각 두 쪽을 들고,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신으로 흘리기엔 불운의 콤보가 너무 강했다. 액운을 묶어두기는커녕, 액운을 둘로 나눠서 손에 쥐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세월이 꽤 흐른 뒤, 그날의 대흉을 떠올리며 내 인생을 되짚어 보면, 솔직히 말해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도 같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나는 여러 일들로 꽤 오래 고생하며 살았다.
그래도 청수사 언덕 위에서 배꼽 잡고 웃던 친구들의 얼굴과, 찢어진 대흉 종이 두 쪽을 들고 멍하니 서 있던 내 모습은, 언제든 돌아가 다시 즐기고 싶은 요절복통 청춘의 한 장면이다.
우리 <질풍> 투어의 교토 편은 그렇게 시작됐다.
청수사의 무대에서 뛰어내리진 않았지만, 아마 그날 이후 몇 년을 나는, 이미 한 번쯤은 뛰어내릴 각오를 해본 얼굴로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청수사 언덕에서 한바탕 불운 코미디를 찍고 나서야, 우리는 본업을 하러 내려왔다. 그날의 공연장, 스튜디오 246.
스튜디오 246은 정식 라이브하우스라기보다는, 합주실과 녹음실이 여러 개 붙어 있는 큰 스튜디오였다. 스튜디오 한 켠에 작은 라이브 스테이지 룸이 있었고, 우리는 그 방에서 공연을 했다. 사운드는 훌륭했고, 규모는 소극장보다 조금 작은 느낌이었다.
이날 처음 만난 밴드는 니가타의 SCRUM HALF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들은 DERIDE와 함께 니가타 하드코어 펑크 씬을 오래 이끌어 온 베테랑이었다.
보컬 쿄이치는 날렵한 얼굴에 눈매가 시원한 미남이었고, 지치지 않는 하드코어 보컬을 쏟아냈다. 기타 마사시는 일본식 남성미의 정석 같은 스타일. 옷 사업을 하는 성공한 사업가라고 들었고, SCRUM HALF의 티셔츠와 머천 다 디자인하고 찍어내는 것도 그였다.
베이스 타츠야는 한눈에 봐도 “터프가이”였다. 덩치 크고 근육질에, 말 그대로 마초형 쾌남. 막상 대화를 나누면 웃음소리를 크게 터뜨리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진짜 좋은 형이었다. 드럼 사라는 네 명 가운데 가장 조용해 보였지만, 첫 인상 그대로 친절하고 다정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늘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차가운 눈의 고장에서 온 사람들 같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이 전일 투어 동안 우리는 그들과 두 번 더 같은 무대에 서게 되고, 그 인연 덕분에 이듬해엔 그들의 홈그라운드, 니가타로 초대를 받는다. 그 도시에서 또 한 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다.
교토의 터줏대감 같은 밴드도 있었다. HOLLYWOOD MASSAGE VIBRATION. 이름부터 이미 평범하진 않았다. 무대 위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홈 그라운드라는 여유가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들의 음악은 한 줄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드코어라고만 부르기엔 리듬이 계속 출렁거렸고, 중간중간 기묘한 그루브와 공백이 있었다. 어떤 곡은 레게에 발을 걸친 것처럼 느긋하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를 올려 폭주했다. 내 귀에는 후기 BAD BRAINS의 무언가를 닮아 있는 것처럼 들렸다. 레게와 펑크, 하드코어를 머릿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버리는, 괴짜 계열의 펑크록.
SCRUM HALF의 라이브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박력으로 다가왔다. 네 명 모두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한 곡 한 곡을 근성으로 밀어붙이는 라이브였다. 쿄이치가 마이크를 쥔 손을 번쩍 들고 고함을 지를 때, 마사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리프를 갈겨댔고, 타츠야는 베이스를 터프하게 울리며 묵직하게 서 있었다. 사라는 뒷자리에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 모든 걸 정확하게 떠받치고 있었다.
그들의 슬로건은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비튼 한 줄이었다.
MAY THE THRASH BE WITH YOU.
처음 그 문장을 봤을 때, 피식 웃음이 먼저 나왔고, 그다음엔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농담처럼 적어놓은 한 줄인데, 그 안에 이 밴드의 태도와 우리가 같이 도는 이 투어의 공기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무겁게 진지해지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하는 음악과 장르에 대한 믿음은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들. 자기 음악과 무대에 대해 설명이나 변명 따위는 집어넣지 않은 채, 그냥 “같이 있다”고 믿고 가버리는, 거의 맹목에 가까운 긍정의 태도.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펑크라는 삶의 태도도, 우리가 수많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배우고 있는 것들도, 결국은 그런 믿음 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공연을 보고 있는 교토 관객들의 분위기였다. 앞줄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팔짱을 낀 채 뒤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음악에 몸을 맡기는 느낌보다는, 마치 심사위원처럼 밴드를 평가하고 있는 얼굴들. 곳곳에서 “다른 동네 밴드들 실력 좀 보자”는 공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솔직히 그 벽을 깨지 못했다. 앞에 나와 머리를 흔드는 몇 명이 있었지만, 전체 분위기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무대 위에서 아무리 몸을 던져도, 어느 선 이상으로는 열기가 번지지 않는 밤이 있다. 그날이 딱 그랬다.
CRUCIAL SECTION과 SCRUM HALF는 그래도 특유의 프로페셔널함으로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지켜냈다. 관객이 조금 차갑든 말든, 셋리스트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밀어붙이고 내려왔다. 공연이 끝난 뒤 히로와 멤버들은 평소의 표정으로 장비를 정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관객의 호응에 따라 에너지가 널뛰는 전형적인 아마추어 보컬이었다. 사람이 많고 분위기가 좋으면 목이 터져라 뛰어다녔지만, 반대로 반응이 적으면 몸이 먼저 굳고 금방 지쳤다. 머리로는 “관객이 한 명이든 만 명이든 똑같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몸에 새겨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마저도 결국 연습 부족이었다. 연습량이 쌓이면 기본 체력이 올라가고, 체력이 올라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라이브를 뽑을 수 있다. 그날 교토에서의 공연은, 그 사실을 아주 불편하게 깨닫게 해 준 밤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뒷풀이를 갔다. 일본식 패밀리 레스토랑 특유의 밝은 조명 아래, 온갖 메뉴가 빼곡히 적힌 커다란 메뉴판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날 우리 테이블 위의 음식과 술은 반쯤 손도 대지 못한 채 식어 갔다.
셋리스트를 바꾸자는 이야기, 술 마시고 무대에 오르지 말자는 이야기, 중간중간 템포가 어긋난 이야기, 라이브 도중 에너지가 빠진 이야기… 결국은 우리 자신에 대한 불만들.
결론은 뻔했다. 연습과 실력 부족. 그리고 어떤 분위기에서든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근성과 체력이 아직 모자라다는 것. 일본 투어 겨우 3일째에 맞은, 작은 벽이었다. 우리는 맥주잔을 앞에 두고, 이 벽을 어떻게 넘을지에 대해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그 무거운 회의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교토라는 도시가 준비해 둔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길을 걷는데, 저쪽에서 자전거 몇 대가 쌩쌩 달려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우리 근처에서 속도를 줄이더니, 갑자기 원을 그리며 우리를 둘러싸고 맴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솔직히 좀 긴장했다. 어두운 골목에서 갑자기 젊은 무리가 우리를 에워싼다면, 어느 나라든 약간은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곧 웃음이 났다. 이들은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전통적인 폭주족 특유의 복장 대신, 힙합 스타일의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
타츠야가 그 광경을 보더니 껄껄 웃으며 일본어로 외쳤다.
“너희들, 멋있다!”
자전거 폭주족들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말은 못 알아 들었지만, 대충 “형들도 멋있어요!”라는 톤이었다.
나는 뒤에서 나지막이 농담했다.
“교토는 워낙 고풍스러운 도시라, 폭주족도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로 진화한 게 아닐까.”
FTS 멤버들은 고개도 안 돌리고 무시했다. 대흉을 뽑고 종이까지 찢어 먹고, 라이브까지 말아먹은 남자의 농담에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전거 폭주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상하게도 조금 웃음이 났다.
관객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해 패배감을 느낀 날, 청수사 언덕 위에서 대흉을 뽑고 종이를 찢어 먹은 날, 그리고 마지막엔 자전거 폭주족에게 포위당해 “멋있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은 밤.
그날 밤 자리에 눕자, 단어 하나가 바뀐 문장 한 줄이 떠올랐다.
MAY THE HARDCORE BE WITH YOU.
대단한 이념도, 거창한 선언도 아니었다. 그냥 “그래도 계속 하자”는 말. 라이브가 생각만큼 안 터지는 날도, 운세가 개판으로 나오는 날도, 그래도 악기를 메고, 장비를 들고, 다음 도시로 간다는 뜻.
지금 돌아보면, 그 문장이야말로 질풍 투어 전체를 관통하던 주문 같은 말이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망해도 또 무대에 오르는 인간들을 위한 짧은 축복. 교토에서의 그 하루는, 그 축복의 한 줄을 몸으로 외우기 시작한 첫 번째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딘가 삐뚤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교토의 밤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다음 도시를 향해 움직였다. 내일의 공기가 어떤 모양일지는, 그때의 우리는 아직 몰랐다. 다만 한 줄짜리 주문 하나만은, 이미 서로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반복되고 있었다.
MAY THE HARDCORE BE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