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발냄새

설국, 그리고 살아남은 냄새

FLIPOUT A.A와 JOHN DOE의 시끌벅적한 서울 투어가 끝난 뒤, 약간의 번아웃이 찾아왔다. FTS 멤버들 모두 휴식이 필요했고, 잠깐의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

우리는 원래 엉망진창인 밴드였다. 그래도 질풍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만큼은 달랐다. 연륜이 조금 쌓였고, 서울에서 꾸준히 라이브를 하며 나름의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파도 칠 때 노를 저으라는 말처럼, 그 시기는 분명 성장의 기회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흐름을 스스로 놓쳐버렸다. 정체였다.

각자 생활이 있었고, 각자의 일이 있었다. 밴드보다 개인의 삶, 사회 안에서의 역할에 조금 더 집중하며 쉬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는 사이, CRUCIAL SECTION과 함께하는 두 번째 장기 투어, NETWORK - CONTINUATION IS OUR DEDICATION 일정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투어를 대비해 새 EP를 녹음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두가 언급조차 피하는, 수준 미달의 작업물이었다. 한동안 몸 관리를 하지 않던 복서가 급하게 감량을 하고 링에 오르는 것처럼, 우리는 뒤늦게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반쯤은 평온하고, 반쯤은 게으르고, 안일한 일상에 여전히 젖어 있었다. 이런 준비로 이기는 시합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질풍 투어가 아직 절뚝거리던 밴드가 에너지와 열정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였다면, 네트워크 투어는 다시 망가진 밴드가 일어섰다가, 휘청이고, 또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투어 1일차, 반가운 얼굴들이 모여 있던 도쿄 PIT BAR에서 우리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라이브는 실수의 연속이었고, 도저히 투어를 도는 밴드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질풍 투어 때도 실수는 있었지만, 그때는 최소한 열정과 에너지가 있었다. 짧은 일정 안에서도 성장과 변화의 서사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치 쌓아둔 경험치를 전부 갖다 버린 것처럼, 첫 라이브를 형편없이 망쳐버렸다. 공연 도중 멤버들끼리 다투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리고 관객 중 누군가가 말했다.

“전혀 멋있지 않아.”

그 말을 남기고 나가버리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라이브가 끝난 뒤, 투어를 기획해 준 히로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우리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사코의 집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개인 정비를 하고 핏바로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는 멤버들끼리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심기일전해 사이타마의 GREGORI에서 2일차 라이브를 했다. 질풍 투어 때도 섰던 곳이다. OSEN과 TODESTRIEB의 드러머 신고짱이 기획하는 이 공간은 정식 공연장이 아니라 합주실에 가까운 구조였고, 그 점이 오히려 FTS의 스타일과 잘 맞았다. GBN이 생기기 전, 우리가 FIND THE HARDCORE SPOT이라는 이름으로 합주실 공연을 기획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라이브를 할 수 있었다. AUTOROLL 이라는 베테랑들의 멋진 라이브를 보고 나서 자극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전날 PIT BAR에서의 참패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레고리에서 공연할 때마다 신고짱의 집에서 잤다. 교외에 있던 그의 집은 아늑했고, 일본식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신고짱은 과거에 거친 폭주족 출신이었다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는 요리도 잘했다. 직접 만든 모츠나베와 또띠아 등 각종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CRUCIAL SECTION 멤버들이 모두 잠든 뒤에도 우리는 계속 술을 마셨다. 다음 날 아침 역시 신고짱이 차려줬는데, 집에 있던 일본식 버섯 반찬이 유난히 맛있었다. 동혁이와 나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이후 신고짱은 SUTEGORO의 하루, 윤대민의 기획 시리즈 BEHIND THE TONGUE로 TODESTRIEB의 한국 투어를 함께 하게 된다. 그때 같이 공연하고, 야외에서 마시던 날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BEHIND THE TONGUE 기획은 나도 처음에 함께 했었고, 훗날 고치 펑크 씬과 이노우에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다시 이어지게 된다.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일이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신고짱의 집을 출발해 히로의 밴을 타고 니가타로 향했다. 질풍 투어 동안 여러 차례 함께 무대에 섰던, SCRUM HALF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몇 시간을 달렸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익숙한 히로의 밴을 타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각자 다른 타이밍으로 졸고 깼다가, 어느 정도 피로가 풀린 뒤 모두가 동시에 멍하게 깨어 있는 시점. 그때였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이 쌓인 도시가 나타났다. 3월 초였는데도 눈이 남아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동혁이가 말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그 말이 맞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괜히 멋있어 보여서 나중에 그 문장을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 순간만큼은, 문학소년 동혁이가 조금 멋있어 보였다.

설국에서는 철도의 터널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차를 타고 있었고, 어느 터널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정말로 터널을 나오자마자 눈의 고장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니가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늘 하던 대로 악기와 장비, 머천다이즈를 각자 나눠 들고 WOODY로 향했다. 우디는 건물 옆 노란 계단을 따라 쭉 올라가면 있었다. 3층이었는지 4층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와다 바로 뒤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신선은 신선인가 싶었다. 나이도 있는데 기타와 큼직한 짐 박스를 들고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계단을 사뿐사뿐 올라갔다. 뒷모습만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우디 안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와다를 돌아보니,

“카악… 하악… 하악… 하악…”

방금까지의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마치 호수 위에서는 우아하게 떠다니지만, 물속에서는 발을 미친 듯이 휘젓고 있는 백조 같았다. 뒤에서 볼 때는 분명 신선이었는데, 앞모습을 본 순간 웃겨서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우디 안에는, 이미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럼 하프!
다시 한 번 같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날.

그날 공연의 정확한 순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첫날 도쿄에서의 처참했던 기억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밤이었기 때문이다.

FTS가 무대에 오를 차례였는데 문경훈이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러 갔겠거니, 화장실이겠거니 생각하며 우리는 무대에 올라 셋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도 경훈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무대를 뛰어 내려와 그를 찾기 시작했다. 대기실도, 화장실도, 공연장 밖도 아니었다. 건물 전체를 뒤졌다. 관객과 관계자들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초조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천만다행으로, 맨 처음 열어본 건물 안쪽의 창고 같은 공간에서 경훈이를 발견했다. 고주망태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우리 차례야, 경훈아. 일어나!!!”
“공연 전에 술 마시지 말라니까!!!!!”

아무리 소리치고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조급했다. 결국 따귀를 날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그제야 경훈이는 천천히, 좀비처럼 눈을 떴다.

정신이 반쯤 나간 경훈이를 질질 끌고 무대로 돌아왔다. 아마 기타를 찾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을 것이다.

그 상태로 라이브를 시작했다. 일본 라이브하우스 특유의, 귀를 찢어버릴 듯한 꽉 찬 사운드. WOODY도 예외는 아니었다. 귓청을 때리는 사운드와, 조금 전 내가 날린 따귀 세 대가 뒤늦게 마법을 부렸는지 경훈이는 갑자기 야수가 됐다.

놀랍게도 라이브는 무사히 끝났다. 경훈이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실성한 사람처럼 연주했다. 오히려 박력이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경훈이는 비로소 술을 깨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뒷풀이 때 재밌게 놀고 싶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 이후 나는 멤버들에게 공연 전 금주 이야기를 매일같이 꺼냈지만, 투어 기간 내내 그 약속은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어쨌든 밴드 역사상 최악이 될 뻔한 사건은 무사히 넘어갔다. 하지만… 더 끔찍한 일은 며칠 뒤 요코하마 EL PUENTE에서 벌어지게 된다.

스크럼 하프의 라이브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원래도 뜨겁고 프로페셔널한 밴드지만, 니가타라는 자기 동네에서의 그들은 한층 더 거물처럼 보였다.

펑크와 하드코어의 라이브는 밴드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관객과 밴드가 함께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그날 그 공간에서만 가능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단순히 음악으로 듣고 눈으로 보는 공연이 아니라, 온도와 밀도, 촉감까지 포함된 총체적인 감각의 경험이다. 장관이라고 표현할만큼 압도적인 라이브를 보고나면 언제나 관객들의 움직임과 감정들이 함께 느껴진다.

그래서 실패한 라이브에는 항상 공통점이 있다. 무대 위에 서 있지만 관객과의 연결이 끊겨 있는 느낌이 들면, 그건 실패다. 그날 스크럼 하프의 공연은 그 연결감이 완벽했다.

그리고 DERIDE.
사실 이 날, 내가 가장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DERIDE는 오래전부터 명성을 들어온 밴드였다. 니가타 하드코어 펑크 씬을 아주 오랜 시간 대표해온 존재.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역에 뿌리내린 채 버텨온 밴드. 니가타에서 DERIDE라는 이름은 자부심이었다.

우디의 무대는 꽤 높은 편이었는데, 라이브 중 DERIDE의 보컬은 종종 천장 구조물을 잡고 매달린 채 맨 앞줄 관객들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그 장면에는 폭력성이 전혀 없었다. 서로 룰을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장난 같았고, 친근했고, 유쾌했다.

그 유쾌한 친근감의 정체는 분명했다. 자기들이 오랫동안 해온 일로, 자기 도시에서 진짜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공연이 끝난 뒤, 뒷풀이는 같은 건물 아래층의 이자카야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문제는 부츠였다.

장시간 신고 다니며 세균과 피로가 차곡차곡 쌓인 부츠. 차 안에서는 민폐가 될까 봐 벗지도 못한 채 그대로 이동해온 그 부츠.

뒷풀이 장소는 신발을 벗고 앉는 일본식 좌식 이자카야였다.

나는 비난의 순간이 두려워 괜히 밖에서 담배만 피우며 버텼다. 언제 회복했는지 모를 경훈이는 안에서 이미 사람들과 어울리며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사람들에게 붙들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발 냄새가 나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죄를 연발하며 부츠를 벗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훨씬 심각한 냄새가 퍼졌다. 표정이 살짝 굳은 사람들도 있었고, 크루셜 섹션과 FTS 멤버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예전에 CHAOS UK 멤버들은 부츠를 절대로 벗지 않았기 때문에, 부츠를 철사로 묶고 다녔다고 한다. 그들이 일본 투어의 뒷풀이 자리에서 철사를 끊고 자리에 앉은 순간, 식당의 일반 손님들이 전부 나가버렸다는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그날 내가 서너 명만 더 있었어도 니가타에서 똑같은 전설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지고쿠노 니오이."
지옥의 냄새.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칭호를 얻었다.

물티슈 수십 장으로 양발을 닦아낸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냄새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내 옆에 앉은 DERIDE 멤버들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밤새 마시고 떠들었다. 스크럼 하프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니가타의 펑크들이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정말,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고. 인간의 한계를 넘는 냄새 앞에서도 함께 웃어준 사람들이니까.

뒷풀이가 끝난 뒤 우리는 우디에서 잤다. 3월인데도 밤새도록 추위에 떨었다. VIVISICK 타짱의 조언을 듣고 침낭을 챙겨온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고생들이, 이상하게도 DIY 투어를 DIY 투어답게 만든다.

그날 니가타에서 우리가 한 건, 완벽한 라이브도, 멋진 태도도 아니었다. 발냄새가 났고, 추웠고, 실수투성이였고, 서로 엉망인 상태로 웃고 마시고 버텼을 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밤이 지나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는 게 있다. 잘해냈다는 성취감도 아니고, 실패를 만회했다는 안도도 아닌, 그냥 함께 있었다는 감각.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온도를 견디며 같은 소음을 통과했다는 기억.

니가타의 그 밤은 딱 그런 밤이었다. 크루셜 섹션의 유쾌함, 스크럼 하프의 열정, DERIDE의 떠들썩함 속의 관록, 문경훈의 난장, 우디의 차가운 바닥, 침낭 속에서 떨던 몸, 그리고 지옥의 발냄새까지. 전부가 섞여서 하나의 장면이 됐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서 투어가 되고, 밴드가 되고, 관계가 된다. 돌아보면 늘 그렇다. 가장 엉망이었던 밤들이, 가장 선명하게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도시를 통과했다. 조금 더 망가진 채로,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면서.

다음 날은 이바라키, MIT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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