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TEP의 밤
니가타에서 문경훈의 만취 수면 사건과, 내 발냄새 사건 같은 크고 작은 위기들을 겨우 넘긴 뒤, 투어는 4일차 이바라키 미토로 이어졌다. 조용한 도시였고, 공연장은 더 조용해 보였다.
CLUB SONIC.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리허설을 시작한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사운드가 다르다는 걸. 오래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들이 관리하는 라이브하우스였다. 사장과 엔지니어 모두 밴드를 해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사운드로 납득이 되는 장소였다.
그날, 정말 인상적인 밴드를 만났다. LAST RIGHT BRIGADE. 음악적으로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게 많은 밴드였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보컬 히로시였다. 무대 위의 그는 펑크 보컬로 나이 들어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방식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답처럼 느껴졌다. 자기가 살아온 시간과 태도가 그대로 라이브에 배어 있었다. 나는 공연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저렇게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공연이 끝난 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나도 당신처럼 나이 들어가겠다고.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이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히로시는 웃으며 받아줬다. 그 짧은 대화는,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 만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7년 뒤, 서울 돌망치로 도쿄에서 라이브를 했을 때 그들과 다시 만났다. LAST RIGHT BRIGADE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히로시 역시 변함이 없었다. 다시 확인했다. 내가 꿈꿨던 미래의 모습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날 밤, 미토에서 얻은 기운을 그대로 안은 채, 우리는 다시 PIT BAR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은 투어 브레이크, 휴식일이었다. 동시에, 내 생일이기도 했다. 4일간의 투어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우리는 핏바에 모여 있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휴식일이 밝았다. 이 날은 FLIPOUT A.A의 나오키 생일이었다. 알고 보니 나와 생일이 같았다.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나는 나오키가 운영하는 라이브하우스 MOONSTEP으로 향했고, 그의 생일파티에 참가했다.
문스텝은 아주 재밌는 공간이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꽤 넓은 라이브 스테이지가 있었고, 위로 올라가면 펍이 있었다. 내일의 공연이 기대된다고 생각하며 2층 펍으로 올라갔다.
그 자리에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캐나다 하드코어 펑크의 전설, S.N.F.U.(Society’s No Fucking Use)의 보컬 Chi Pig. 나오키는 그를 “캐나다의 형제”라고 소개했다. 일본에서, 그것도 이런 자리에서 그를 마주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뮤지션을 실제로 만나, 같은 공간에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런 순간은 언제나 현실감이 조금 늦게 따라온다. 그 밤도 그랬다. 멋진 일이었다.
몇 해가 지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내가 좋아했던 펑크록의 한 시절로 남았다.
Chi Pig 와의 인사 이후, 밤의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나오키에게로 옮겨갔다. 그날 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생일로 한껏 흥분이 고조된, 최종 버전의 나오키가 그 중심에 있었다.
나는 투어를 돌 때마다 목 관리를 위해 용각산을 들고 다녔는데, 그걸 발견한 만취한 나오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내 손에서 용각산을 낚아채더니, 가루를 자기 얼굴에 마구 뿌리고는 다시 괴성을 지르며 문스텝 안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일 선물로 받은 위스키를 반병이나 단숨에 들이켜 버리기도 했고,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기행들도 이어졌다. 그래서 그 밤의 나머지는 기록 대신, 기억 속 한켠에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렇게 밤을 태워버린 다음 날, 나는 다시 문스텝으로 향했다. 이번엔 라이브였다.
전날 이미 한 번 와봤던 곳이라, 이번에는 내가 멤버들을 이끌고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날은 문스텝의 주인 나오키와 FLIPOUT A.A 멤버들이 우리를 위해 기획해준 공연이었다. CRUCIAL SECTION과 함께한 투어 중에서도 결이 조금 다른 날이었다. 장르도 다양했고, 라이브도 하나같이 좋았다.
이 날의 무대를 열어준 건 NO PROBLEM이었다. BURNING SPIRITS HARDCORE의 한 시대를 이끌어 온 베테랑들. 보컬 미키오는 CRISIS KILL, GESHPENST 등의 활동으로 90년대 도쿄 하드코어를 대표하던 인물이었다. 어디선가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지만, 실제의 그들은 다정하고 재밌는 사람들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기타리스트 치하야와 함께 편의점에 술을 사러 갔을 때 그 사실을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치하야는 내 몸을 보더니 벌크업이 돼서 강해 보이고 멋지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극진가라데를 보여주겠다!!”
라며 길가의 가로수에 정권 찌르기와 발차기 시범을 보였다. 위협적인 분위기라기보다, 친근하고 순수한 열정에 가까웠다. 술 취한 그의 일본어를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쿄쿠신 가라데(극진 가라데)' 라는 단어는 수십번 알아 들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문스텝으로 돌아오는 내내 같이 건배하며 웃었고, 그렇게 가까워졌다.
이어서 TOKYO MENTAL PICTURES SESSION BAND가 무대에 올랐다. 굉장히 재밌고 신나는 무대였다. 도쿄의 펑크 부부들 중, 아내들만으로 이루어진 여성 빅밴드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고, 나와 친분이 있던 아카네가 멤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한국에는 아직 펑크 부부가 많지 않다. 펑크록커들이 가족이 되고, 부부들이 같은 씬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도 언젠가 저런 미래가 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날의 문스텝은 장르가 다 달라도,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밴드의 색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가 더 뜨거워지는 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GUN FRONTIER였다. 건프론티어는 특이한 밴드다. 격정적인 포크인데, 엔카의 곡조에 남자들의 정서와 술 문화가 뒤섞인 거친 결이 있다. 도쿄의 펑크들은 이들을 ‘하드코어 포크’ 또는 '하드코어 엔카'라고 불렀다.
사실 나는 예전에 VIVISICK과 JABARA의 드러머이자 아카네의 남편인 히토시에게 이들의 음악을 소개받고 팬이 됐다. 자주 들었고, 언젠가 꼭 라이브를 보고 싶었던 밴드였다. 만나는 모든 일본 펑크들에게 나는 건프론티어의 팬이라고 알려 왔었다. 그래서 그들이 문스텝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플립아웃 멤버들이 나를 위해 이 라인업을 짜 준 게 아닐까 하고.
어쩌면 내 쪽의 과한 해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쨋거나 그 밤의 건프론티어는 정말 멋졌다. 언젠가 그들을 꼭 한국에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FLIPOUT A.A도, CRUCIAL SECTION도 자신들의 동네인 도쿄에서 멋지게 라이브를 마쳤다. 체력을 충전한 우리 FTS도 마찬가지였다. 문스텝은 들떠 있었고, 흥겨웠다.
하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그 흥겨웠던 분위기보다 항상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들뜸과 흥겨움이 잠시 가라앉았던 한 순간.
그것은 술에 잔뜩 취한, 한 나이 든 펑크록커의 고백이었다. 그는 고함치듯이 자신의 한국인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 군인들에 의해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삶에 대해.
그 말은,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아픈 단어와 겹쳐졌다. 종군 위안부.
공연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소음이 잠시 얇아졌다. 사람들은 말을 멈췄고, 그 공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적이 흘렀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훗날 자신을 낳아주시고,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셨다고. 그래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외쳤다.
자기는 바보같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펑크 씬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바보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죽으면 진심을 다해 애도하고, 주위에 새 생명이 태어나면 “잘 왔다.” 하고 축복하며 살아간다고.
그는 연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술에 취한 말이었지만, 그 손짓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고백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이야기가 된 순간. 음악도, 라이브도, 펑크라는 말도 잠시 뒤로 밀려나고, 그저 한 사람의 삶과, 그 삶을 버텨낸 또 다른 사람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펑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보다 더 정확한 대답이 있을까 하고.
바보같은 인생일지라도, 서로의 죽음을 애도하고 태어남을 축복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온기 하나로 계속 살아가는 것.
문스텝의 그 밤이 특별했던 이유는, 좋은 라이브 때문도, 해외 투어라는 고조된 감정 때문도 아니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잠깐,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의 말을, 그 합장의 손짓을, 그 얇아졌던 소음을,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떠올린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도, 이상하게도 그 장면만은 닳지 않는다.
펑크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바보같은 인생을 산다. 그래도, 분명 사람의 인생이다. 그날 밤, 문스텝에는 술 냄새와 시끌벅쩍한 소음, 그리고 가슴 아픈 누군가의 인생사가 뒤섞여 있었다.
웃음과 아픔, 만취한 몸짓들, 엉킨 말들과 나오다 삼킨 울음들, 잠깐 스쳤던 침묵들, 밴드가 쏟아내는 소음과 박수까지. 모든 것이 맥락 없이 얽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던 밤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날은 온기로 가득 차 있다. 그 온기 속에서 나는, 지난 역사의 비극을 애도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이 사람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