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PUENTE, 또 한 번의 패배.
투어 첫날, 도쿄 PIT BAR에서의 실패와 니가타 WOODY에서의 최악의 위기를 겨우 벗어난 뒤, 우리는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토 SONIC에서도, MOONSTEP에서도 라이브 직전 음주는 최대한 자제했고, 중간 휴식일에는 나 혼자 나오키의 생일파티에 갔을 뿐, 멤버들은 지쳐서 신야의 집에서 말 그대로 쉬기만 했다.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됐고, 라이브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은 돌아온 상태였다. 그래서 문스텝 공연을 마친 뒤에는, 정말 오랜만에 멤버 전원이 문스텝에 남아 일본 펑크들과 밤늦게까지 뒷풀이를 즐겼다.
다음 날 목적지는 요코하마. 이동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시간에 쫓길 이유도 없었고, 마음도 한결 느슨해져 있었다.
그날 밤의 뒷풀이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전날 있었던 나오키의 생일파티와 같은 장소였던 탓에 기억이 겹쳐 있기도 하고, 술기운에 장면들이 서로 섞여버린 느낌도 있다. 대신, 웃긴 장면 하나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나오키가 이동혁을 보자마자 굉장히 반가워하더니,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익살스러운 펀치를 날렸다. 그 순간, 만취해 있던 동혁이는 피식 웃으며 여유 있게 몸을 틀어 피했고, 나오키는 그대로 한 바퀴를 돌며 바닥에 격침됐다. 너무 자연스럽고 완벽한 타이밍이라, 모두가 잠시 멍하니 보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보기 드문 진풍경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뒷풀이를 마쳤고, 우리는 다음 날 요코하마로 향했다.
EL PUENTE.
공연장은 굉장히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미국의 패밀리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느낌도 있었고,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해외 투어 밴드들이 일본에서 늘 거쳐 가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공간이었다.
이곳의 사장님은 젠틀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살집이 조금 있고, 장발에 수염을 길렀지만 전반적인 인상은 깔끔한 신사에 가까웠다.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처럼 느껴졌고, 영어도 굉장히 유창했다. 요코하마뿐 아니라 일본 하드코어 펑크 씬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물이라고 들었지만, 그날은 끝내 깊이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라이브가 시작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반가운 얼굴이 일찍부터 도착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FLIPOUT A.A의 보컬, 마우였다. 그는 개구쟁이면서도 유난히 다정한 사람이었고, 이미 나오키의 생일부터 사흘 연속 얼굴을 본 사이였지만, 요코하마에서 다시 만난 그의 모습은 유독 더 반가웠다.
그때 처음 알았다. 마우가 요코하마에 산다는 걸.
나는 순간 꽤 놀랐다. 도쿄에 갈 때마다 공연장에서 늘 마주쳤고, 거의 모든 뒷풀이에 항상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도쿄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해 왔는데, 집이 두 시간 거리의 요코하마라니.
도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밴드의 프론트맨이, 매번 그 거리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마우가 주중에는 매일같이 현장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사실 나 역시 용인에서 서울까지 왕복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살고 있었다. 공연을 하고, 연습을 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삶. 그 거리와 피로, 그리고 그래도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요코하마에서 만난 마우에게 반가움을 넘어서, 펑크라는 씬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진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마우의 안내로 우리는 요코하마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문제는, 리허설을 마치고 나니 공연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녁을 먹거나, 근처를 둘러보고 와도 충분한 여유였다.
결국 그 과정에서 멤버들은 다시 술을 진탕 마시기 시작했다. 하필 그날은 문경훈의 생일이었다. 나오키의 생일 폭주와 니가타에서의 경훈이 사건이 자연스럽게 겹쳐 떠올라,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투어 기간 중 멤버 두 명의 생일을 연달아 맞는 밴드라니, 지금 돌이켜보면 축복받은 투어였지만, 당시에는 불안한 마음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경훈이는 공연 시작 전부터 이미 잔뜩 취해 있었다. 걱정이 됐지만, 생일이기에 그를 쉽게 말릴 수가 없었다. 투어 책임자인 히로 역시 그 모습을 재밌어 할 뿐이었다. 평소에 음주 라이브에 강경대응하는 그였지만, 생일이기도 하고, 사고뭉치 경훈이의 모습을 귀여워했기 때문에 가끔은 오히려 부추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우리는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공연이 시작됐다.
그날 가장 강하게 각인된 밴드는 SELF DECONSTRUCTION이었다.
베이스 없이 보컬, 기타, 드럼으로만 구성된 3인조. 파워 바이올런스와 그라인드코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변칙적인 리듬이 쉼 없이 이어지는 라이브였다. 테크니컬한 연주를 기반으로, 그들은 쉴새없이 달렸다. 나는 정신을 놓고 빠져들었다. 속된 말로, 좋은 의미에서 엄청나게 빡센 밴드였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건 음악과 어우러진 그들의 외양이었다. 작은 체구의 여성 보컬, 선량해 보이는 인상의 남성 드러머, 그리고 메이드복을 입은 기타리스트. 귀엽고, 무해해 보이는 외양과 무대에서 쏟아내는 폭력적인 사운드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다. 그 역설이 우리에게 더 큰 충격을 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메이드복을 입고 있던 미모의 기타리스트는 여장남자였다. 라이브 직후 그들에게 멋졌다는 인사를 하러 가서야 알게 되었다. 어쨋거나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무대였다. 우리 모두는 그 날부터 SELF DECONSTRUCTION의 열성 팬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차례가 왔다.
불안을 잔뜩 끌어안은 채 무대에 올랐다. 경훈이는 리허설 때 이미 맞춰둔 세팅을 다시 잡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렸고, 서 있는 것 자체가 위태로워 보였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라이브는 이어졌다. 초반부터 요코하마 관객들은 생각보다 잘 반응해줬고, 나 역시 마음속의 긴장과 불안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도 우리 스타일은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이었다.
와장창창.
만취한 경훈이가 무대 위에서 뭔가 액션을 하려다 다리가 풀리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뒷통수와 등으로 드럼 세트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드럼은 해체됐다. 하이햇은 옆으로 튕겨 나가고, 스네어는 바닥을 굴렀다. 라이드 심벌은 빙글빙글 돌며 넘어졌고, 탐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남아 있는 건 중앙에 멀뚱히 서 있는 베이스 드럼 하나뿐. 드럼 세트는 말 그대로 완전히 분해돼 있었다.
경훈이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몸을 가누지 못했고, 라이브는 중지됐다.
EL PUENTE의 사장과 동료 뮤지션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드럼을 다시 셋팅하는 동안, 경훈이는 정신을 차려야 했고, 나는 관객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했다.
여긴 요코하마였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노래, 내가 가사를 아는 몇 안 되는 일본 노래, 이시다 아유미의 <BLUE LIGHT YOKOHAMA>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일본에 올 때마다 술자리에서 몇 번씩 부르던 레퍼토리였다.
"거리의 불빛이 참 아름답네요~ 요코하마~ 푸른 불빛의 요코하마~ 당신과 둘이서 행복해요~"
대충 이런, 예쁘고 예쁜 노래.
하지만 CRUCIAL SECTION을 포함해 나를 아는 일본인들은
‘저 녀석. 또 저거 부르네.’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몇몇 관객들은 웃으며 호응했고, 나머지는 싸늘했다. 엉망이었다.
니가타에서 운 좋게 피해 갔던 진짜 불운이, 요코하마에서 터진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확신했다. 카르마는 분명 존재한다고.
고작 몇 분이 한시간 같았던 시간동안 드럼 셋팅이 겨우 끝났고, 우리는 어찌어찌 형편없는 라이브를 마쳤다. 무대를 내려오며 관객들과 친구들, 그리고 이 투어를 기획해준 CRUCIAL SECTION과 히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심으로 재밌는 광경을 보듯 웃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게 부끄러운 일이 맞지만, 그때는 그 모습이 약간 위안이 되어주었다.
어쨋거나 계속 침울해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FUCK ON THE BEACH가 무대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FUCK ON THE BEACH는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해온 도쿄의 파워 바이올런스/패스트코어 밴드다. 짧고 빠른 곡, 단순하지만 폭발적인 리프, 그리고 장난기와 폭력이 공존하는 라이브. 당시 우리의 최애 밴드였다.
그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대역죄인 경훈이는 자신의 파렴치한 행동을 뉘우치기는커녕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이 됐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기타 보컬 츠요시가 마이크를 잡고 경훈이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더니, 자기 기타를 그대로 건넸다.
순간 공연장이 술렁였다.
더 놀라운 건, 경훈이가 그들의 광팬답게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인생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은 경훈이는 그렇게 FUCK ON THE BEACH의 일일 멤버가 되어 무대에 섰다.
우리 밴드의 라이브를 완전히 망쳐놓은 놈이, 다른 밴드 무대에서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무대 아래서 경훈이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개새끼야!!!"
"자기 밴드 라이브는 제대로 연주도 못하고 망치는 놈이!!!!"
"도대체 왜 거기서 잘하고 있는거냐!!!!!!”
경훈이는 그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바보의 얼굴이었다.
CRUCIAL SECTION과 마우,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폭소하며 그 라이브를 즐겼다.
그렇게, 경훈이는 인생 최고의 미친 생일파티를 누렸고, 우리 FTS는 술로 인해 또 한 번의 실패의 밤을 기록했다.
공연이 끝난 뒤의 일들은 대부분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술을 먼저 마시고 누가 더 많이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같이 어이가 없고 웃긴 장면들만 남아 있다.
드럼이 산산조각 난 뒤에도, 그곳의 유명인이 되어버린 경훈이는 계속 생일 축하를 받았고, 우리는 계속 사과를 했다. 누군가는 “괜찮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창피함과 웃음이 동시에 오가는 이상한 밤이었다.
엘 푸엔테 앞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날의 라이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완전히 망쳤다는 말과 재밌었다는 말이 섞여 나왔고,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날의 요코하마는, 그저 기억에 오래 남을 밤이었을 뿐이다.
엘 푸엔테를 떠난 히로의 밴은 곧바로 요코하마의 밤거리를 가로질렀다. 차창 밖으로 항구의 불빛이 낮게 번지고, 바다 쪽에서 올라오는 축축한 공기가 잠깐씩 스며들었다. 미나토미라이 빌딩들의 불빛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도시의 얼굴로 조용히 멀어졌다. 그야말로 BLUE LIGHT YOKOHAMA 였다.
"당신이 좋아하는 담배 향기~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우리 둘만의 세상이 영원하기를~"
지쳐버린 내 머리 속에서는 예쁘고 예쁜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소동과 웃음, 실패와 농담들이 요코하마의 푸른 불빛들 사이에 남겨진 채, 우리는 다음 도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 경훈이는 여전히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짜증 나면서도 웃겨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의 요코하마는 그렇게 끝났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서울 펑크씬의 영원한 자매결연의 도시가 될, 고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