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CK THE BORDER LINE

FLIPOUT A.A / JOHN DOE 한국 투어

질풍 투어를 다녀오고 나서, 나는 한동안 의욕이 식지 않는 상태였다. 투어를 도는 동안 한국에 오고 싶다고 말하던 밴드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보고 확인한 멋진 밴드들을 한국의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경험한 것, 내가 받은 열기를 그대로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일본 밴드들과 한국 밴드들의 교류를 잇는 다리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스컴레이드의 이주영이나 반란의 강용준 같은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해왔지만, 둘 다 각각 일본과 미국으로 이주해버린 뒤였다. 누군가 빠지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씬은 늘 그렇게 굴러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스컴레이드의 이동우와 함께 FLIPOUT A.A와 JOHN DOE의 한국 투어를 기획하게 됐다. 플립아웃을 부르게 된 데에는 크루셜 섹션 히로의 추천도 컸다. 플립아웃 A.A의 보컬 마우와 기타리스트 히토시는 원래 LIE 출신이었고, LIE 시절부터 크루셜 섹션과 아주 오래 함께해온 사이였다. 무엇보다 히로는 “진짜 웃기고 재밌는 인간들이라 FTS랑 잘 맞을 거다”라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JOHN DOE는 사코가 보컬로 있던 하드코어 펑크 밴드였다. 지금은 해산했지만, 당시의 존 도는 도쿄 씬에서 비교적 신생 밴드에 가까웠다. 막 라이브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우리와 직접 같이 공연을 한 적은 없었지만, 사코는 일본에서 투어를 할 때 우리에게 샤워실을 제공해주고 여러모로 서포트해준 고마운 친구였다. 나는 그 빚을 한국에서 갚고 싶었다.

동우와 나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컨택과 대관, 숙식 같은 건 내가 맡고 공연 기획과 플라이어 제작은 동우가 전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거의 목숨을 걸고 했던 것 같다. 이틀간의 투어가 끝나고 나서 우리 둘 다 몸살이 났을 정도였으니까. 이틀간 GBN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고, 같은 라이브하우스에서 이틀 연속 공연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페스티벌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만큼 밀도 높은 준비였다.

투어 당일, 동우와 나는 공항으로 갔다.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데, 잠시 후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구면이었다. 플립아웃 보컬 마우는 예전에 비비식 타짱의 소개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고, 베이시스트 나오키는 KAPPUNK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 팔을 강하게 치고는 어깨동무를 헤드락처럼 걸고 술을 마구 사주던 인간이라, 그때부터 이 사람은 그냥 제대로 미친 인간이라고 인식해두고 있었다. 기타리스트 히토시는 도쿄 공연 때마다 라이브하우스에서 마주치던 아주 웃긴 사람이었고, 드럼 준은 여러 밴드를 하고 PIT BAR에서 애프터파티 DJ를 자주 하던 인물이었다. 항상 인자한 얼굴로 웃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니시오기, 혹은 니시오기쿠보의 카미사마라고 불렀다. 그날도 역시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JOHN DOE의 사코는 눈에 띄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커다란 종이의 여행 일정표를 만들어 왔는데, 투어를 많이 해본 플립아웃 멤버들과 첫 해외공연에 잔뜩 긴장한 사코의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자연스럽게 놀림 섞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일정표를 만들어오느라 고생했겠지만, 이런 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해줬다.

마우는 우리에게 일본 술을 선물로 건넸다. 그런데 그 술이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마자, 바로 다 마셔버렸을 것이다.

숙소는 GBN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의 게스트하우스였다. 도미토리 방 하나를 통으로 빌리면 밴드들과 기획자까지 함께 잘 수 있었고, 그 시기엔 손님도 없었어서 우리가 게스트하우스 전체를 전세 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연을 기획할 때마다 이 게스트하우스를 쓰곤 했는데, 그때마다 정말 베이스캠프 같은 공간이었다.

우리는 점심때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유명한 돼지불백집이었는데, 사코가 여기서 밥을 다섯 공기나 먹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사코는 이후로도 이 돼지불백집을 종종 그리워하곤 한다. 나오키의 경우엔 GBN 바로 옆에 있던 오래된 슈퍼마켓, 신흥상회였다. 라이브가 있는 날이면 펑크들이 담배나 맥주를 사러 늘 들르던 곳이었고, 라면이나 오징어도 팔아서 공연 도중 잠깐 빠져나와 술을 마시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나오키는 이 올드한 분위기를 정말 마음에 들어 했다. 일본에 돌아간 뒤에도 SNS에 “신흥상회 가고 싶어요”고 올릴 정도였다.

그날 공연은 영화 상영으로 시작했다. 이동우가 자신의 영화 <노후대책없다>를 틀었다.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일본 밴드들이 두 시간 내내 영화를 집중해서 봤을 리는 없다. 아마 그때쯤 나오키는 이미 신흥상회에 있었을 것이다.

밴드는 밤 9시가 다 되어 시작했다. 서울돌망치로 내가 먼저 무대에 올랐다. 일본에서 보여줬던 FTS의 하드코어와는 다른, 싱얼롱이 터지는 한국씬의 모습, 서울돌망치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훌륭했다. 공연장의 전체적인 열기를 고조시킬 수 있었던 무대였다.

이어서 FLIPOUT A.A.가 무대에 섰다. 첫 곡이 터지자마자, 다이브가 터지고 여기저기서 모쉬가 터졌다. 사람들이 무대 쪽으로 쏟아지듯 밀려들었다. 그 혼란 한가운데서 분명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나오키가 베이스를 치다가 바닥에 누워 브릿지 자세를 잡았다. 정수리와 양 발로만 몸을 지탱한 채 연주를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원산폭격 자세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 같은 형태였다.

나오키는 일본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걸로 유명한 인간이다. 공연 중에 뼈를 부러뜨리거나, 입에 폭죽을 넣고 터뜨리거나, 머리에 이쑤시개를 수십 개 박아 핀헤드 같은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작은 몸으로 프로레슬링 같은 터프함과 코믹한 자학을 자연스럽게 섞는 존재다. 나오키의 이 역 원산폭격을 보며 모두가 감탄했다. 하지만 나오키의 활약은 고작 시작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JOHN DOE가 무대에 올랐다. 첫 해외 공연이라는 긴장은 분명했지만, 그만큼 모든 곡에 기합이 실려 있었다. 연주는 훌륭했고, 관객들의 텐션을 끝까지 터뜨린 멋진 무대였다.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를 가기도 전에 이미 전원 만취 상태였다. GBN 안의 맥주는 금새 동이 나버렸고, 사람들은 공연 도중에도 신흥상회와 공연장을 오가며 계속 마셨으니까.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던 길에 갑자기 나오키가 괴성을 지르며 가로수 화단으로 다이빙을 했다. 불량중년인 마우와 히토시는 그걸 보며 깔깔 웃었고, 미스터 니시오기, 니시오기쿠보의 카미사마인 준은 그 모습을 보며 여전히 인자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뒷풀이 자리에서도 나오키는 머리에 이쑤시개를 꽂는 것을 포함해 몇 가지 묘기를 더 보여줬다. 그날 밤, 그는 이미 크레이지 몬스터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 뒷풀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오키는 텅 빈 차도를 멍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미 그의 기행에 중독된 사람들은 크레이지 몬스터가 또 무슨 짓을 할지 기대하는 눈치였고, 기획자인 나와 동우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오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아이폰을 차도로 던졌다. 다행히 차는 없었지만, 플립아웃 멤버들이 주워온 휴대폰의 화면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니시오기쿠보의 카미사마는 그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소동이 더 이어졌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숙소에 도착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모두를 숙소로 보낸 뒤, 동우와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로 동우의 집에 도착해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렇게 1일차는, 참이슬과 융합된 나오키의 대활약으로 끝났다.

다음 날, 우리는 문래동 게스트하우스로 플립아웃 A.A와 존 도 일행을 데리러 갔다. 모두들 비교적 쾌활해 보였다. 단 한 명, 나오키만 제외하고. 나오키는 밤새도록 잠꼬대로 괴성을 질러댔다고 했다.

"드르렁 드르렁 FUUUCK!!!! 드르렁 드르렁 FUUUUUUUCK!!!!!"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다른 손님들이 없던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오키를 관찰했다.


나오키는 숙취에 시달리는 얼굴로 풀죽어 있었고, 전날 하루 종일 최고조였던 텐션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내려앉은 듯 보였다. 이런 모습은 익숙했다. 한국 방문 첫 날, 인생 첫 참이슬을 물처럼 마시던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던 얼굴이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곧바로 2차 점심으로 양념치킨을 먹으러 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라이드를 더 좋아하지만, 외국 친구들이 오면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 번쯤은 양념치킨을 먹으러 가는 편이다. 외국에도 프라이드치킨은 흔하지만, 한국식 양념치킨은 한국만의 미식 문화라며 다들 굉장히 만족했었으니까.

다만 이날은 욕심이 과했다. 일정 자체를 푸드파이터처럼 짜버린 탓에, 점심을 두 끼 연속으로 먹는 건 숙취에 신음하던 사람들에겐 식고문에 가까웠다. 오직 대식가 사코와 니시오기쿠보의 카미사마만이 만족한 표정으로 치킨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나오키는 유난히 기운 없어 보였고, 식당 밖 계단에 홀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장난꾸러기 마우가 사진을 찍으며 “MINOR THREAT” 이라고 놀렸다.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숙인, 고뇌에 찬 나오키의 모습은 마이너 쓰렛의 앨범 커버와 똑같은 자세였다.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나오키가 고뇌에 찬 이유를 우리는 알게 되었다. 나오키는 여권을 분실한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참이슬 나이트메어를 겪은 해외 밴드 멤버가 여권을 잃어버려 대사관에 동행하는 경험을 몇 번 했다. 하지만 그때는 처음이었다. 나는 순간 매우 당황했다. 급하게 대사관에 연락하려는 나를 마우와 히토시가 급하게 붙잡았다.


둘은 씨익 웃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오키가 떨어뜨린 여권을 히토시가 이미 발견해 챙겨두고 있었고, 플립아웃 A.A와 존 도 멤버들 전원이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동우는 그 장난에 합류했다. 나는 대사관에 연락하는 척 했고, 여권 재발급까지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나오키에게 말했다. 그리고 당시 내가 토목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오키에게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나와 함께 토목 현장에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오키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토목 일을 잘 배우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잠시 후, 나오키는 그 이야기를 마우에게 전했다.

“월요일부터 찬근과 토목 현장에 나가게 됐습니다.”

마우는 짠하고 대견하다는 표정을 연기하며 나오키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어디서든 잘 살아갈 놈이다. 힘내.”

그 말을 듣는 순간, 일동과 나, 동우까지 모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그제야 나오키의 얼굴에도 조금 숨이 트인 기색이 돌았다. 그것은 거대한 불행 속에서도 당장은 버틸 수 있는 한 줌의 희망을 움켜쥔 사람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가엾은 나오키에게 신흥상회에서 여명808을 하나 사줬고, 일본 일행은 숙소로 잠시 쉬러 갔다.

리허설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 다시 GBN으로 나왔다. 나오키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모드에 들어가 있었고, 메모장에 한국어를 적으며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에게 여명808 캔을 들어 보이며, 서툰 글씨로 적어둔 문장을 보여줬다.

“이 할아버지가 저를 살려줬습니다.”

이후 나오키를 일본에서 다시 만날 때마다, 그는 신흥상회 이야기와 함께, 생명의 은인, 여명808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공연 시작 전부터 GBN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날 우리는 공연을 제대로 성공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행사를 준비했다. 서울 펑크씬의 전통적인 플리마켓인 음반 협박(RECORDS THREAT)과 바베큐 파티를 함께 열었다. 음반과 중고 물품을 늘어놓고, 바베큐 꼬치를 굽고, 공연 전부터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사람들도 많이 모여서 일찍부터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바베큐 담당은 지금도 한국 하드코어 씬을 견인해가고 있는 밴드, NO SHELTER의 1대 보컬이었던 이강현이었다. 직업 군인이던 강현이는 모처럼 꼬치구이 재료들을 잔뜩 준비해 와 분주히 움직였지만, 맛 평가는 언제나처럼 미묘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문래동 철공소 거리는 그날 완전히 축제장이었고, 지금 다시 그 정도 규모로 공연을 기획하라면 자신이 없을 만큼, 모두가 진심으로 움직였던 순간이었다.

라이브도 최고였다. 우리는 이 날 ‘10분 쇼’를 기획했다. 10분쇼는 이동우의 시그니쳐 기획이고, 지금은 FTS와 CHASM의 기타리스트 문경훈이 함께 기획하고 있다. 10분쇼는 서울 펑크들의 재치와 유쾌함이 압축되어 있는 서울 펑크씬의 자랑이다. 모든 밴드가 10분씩 연주하고, 시간이 넘는 순간 앰프 전원을 내려버리는 극악의 코미디 쇼.

10분쇼를 기획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밴드 수가 필요하지만, 서울 펑크, 하드코어 씬에는 밴드 수가 부족해서 급조된 밴드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루에 네다섯 번씩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연주가 아니라 만담이나 장기자랑, 야바위, 엉터리 강연 등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ARRYAM의 라이브는 언제나처럼 재치있고 웃겼으며, SCUMRAID의 공연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강렬했다. FTS도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 JOHN DOE는 전날보다 훨씬 뜨겁게 달렸고, 이어진 FLIPOUT A.A의 마지막 순서는 압도적이었다.

나오키의 텐션은 전날보다 더 폭발해 있었다. 공연 직전, 멤버들이 나오키에게 여권의 진실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오키는 완전히 살아났고,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는 다시 신흥상회와 GBN을 오가며 크레이지 몬스터로 돌아와 있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새벽까지 마셨고, 마지막은 족발집이었다. 니시오기쿠보의 카미사마는 자비로운 표정으로 족발 두 접시를 비웠고, 그 옆에는 대식가 사코가 함께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모두 숙소로 돌아갔고, 그렇게 투어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하루 종일 여러가지 고난을 겪은 나오키는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쌔근쌔근 잠들었다고 했다.

3일차 아침이 밝았다.

비오는 아침이었다. 전날 밤의 소음과 웃음, 술 냄새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일정은 망원시장으로 이동해 칼국수를 먹고, 시장 구경하며 쇼핑을 하다가 공항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칼국수와 만두를 앞에 두고 모두 말수가 줄어들었다. 어제까지 그렇게 시끄럽던 사람들이, 마지막 날 아침이 되자 각자 조금씩 현실로 돌아가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각자 쇼핑을 조금 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짧았고, 그래서 더 빨리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불과 며칠이었지만, 막상 이별의 순간이 오자 생각보다 훨씬 허전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포옹을 하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또 보자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런 인연은 꼭 다시 만난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은 오래 걸리지 않아 현실이 됐다.
몇 달 뒤, FTS와 CRUCIAL SECTION의 NETWORK 투어에서 우리는 도쿄에서 다시 같은 무대 위에 섰다. 이번엔 우리가 다시 그들의 동네로 간 것이었다.


투어의 휴일에 플립아웃 A.A는 일본의 대형 빈티지 옷가게로 우리를 데려가 쇼핑을 시켜줬고, 존 도의 사코는 현지 사람들만 아는 멋진 야키토리 집을 알려주며 또다시 우리를 챙겼다. 투어 중간중간 여전히 샤워실을 내주고, 자리를 마련해주고, 언제나처럼 우리의 투어를 지원해줬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런 투어는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게 아니라는 걸. 국경을 넘는 공연이 아니라, 국경을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관계의 시작이었다는 걸.

FLIPOUT A.A의 슬로건은 FUCK THE BORDER LINE!! 이다. JOHN DOE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신원미확인자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어떤 배경인지 따지지 않는 이름.

우리가 이 두 밴드와 같은 무대에 섰다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국적도, 씬도, 이력도 묻지 않고 그저 같은 무대에서 함께 소리치고, 술을 마시고, 한바탕 웃으며 기억을 나누는 것.

짧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진했던 며칠. 시끌벅적 했던 그 며칠은 뜨거운 추억이 됐고, 그 이후에도 우리들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만날 것이고,
필요하다면 또다시 국경을 넘을 것이다.
FUCK THE BORDER LINE!!

작가의 이전글타다이마, 오카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