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번째 밤, 그리고 이어지는 소음
오사카를 떠나 오카자키 RAGSLOW에서 “타다이마”를 외친 우리는, 일본에서의 마지막 라이브를 위해 도쿄로 돌아왔다. 우리의 베이스캠프, PIT BAR. 몇 번이나 드나들었는지 모를 그 좁은 계단을 다시 내려가는데, 이상하게도 처음 왔을 때보다 마음이 고요했다.
투어의 마지막 날이었다.
맨 처음 라이브로 일본 땅을 밟았을 때도 그랬듯이, 이번 투어의 시작도 걱정이 앞섰다. 관객의 눈빛 하나에도 예민해졌고, 무대 위에서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온몸을 조였다. 하지만 이 마지막 날의 나는 조금 달랐다. 우리의 하드코어 펑크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끝이 보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의 결, 무대 앞에 서 있는 얼굴들, 같은 밴에 몸을 싣고 여기까지 온 일행들의 표정 같은 것들.
이 날 공연의 이름은 <UNITED THRASH NIGHT VOL.105> 였다.
UNITED THRASH NIGHT는 CRUCIAL SECTION이 오래도록 이어온 기획 시리즈다. 도쿄 하드코어 씬의 중요 행사 중 하나.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밴드와 관객, 세대와 세대를 묶어온 자리다. 나는 그 105번째 밤에 함께 서게 되었고, 훗날 150회에는 서울돌망치로 다시 이 무대에 서게 된다. 그 사실을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 날은 어떤 흐름의 한복판이었다.
라인업은 숨이 멎을 정도로 좋았다.
먼저 질풍 투어 때 GREGORI에서 함께 공연하며 친해진 DUSTPAN이 무대에 올랐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도쿄에서 활동해온 밴드. 빠른 템포와 간결한 리프, 주정뱅이들이 폭주하는 듯한 느낌의 하드코어. 이들의 음악은 취한듯 보이지만 비틀거리지 않고, 하드코어 펑크의 정수 그대로 직선으로 밀어붙이며 멈추지 않았다. DUSTPAN의 오프닝으로 공기가 단번에 달아올랐다. 짧고 빠른 곡들이 연달아 터졌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며 부딪혔다. 이들은 우리의 친근한 술 친구지만, 무대 위에선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DUSTPAN은 NETWORK 투어가 끝난 지 두 달 만에 한국에 왔고, 2024년에도 다시 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올해도 올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 밴드와의 인연은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
이어 무대에 오른 건 지금은 해체한 전설, VIVISICK이었다. 1990년대 중반 도쿄에서 시작해 일본 반다나 스래쉬의 한 축을 이뤄온 밴드. 빠르고 공격적이면서도 절륜한 구성의 악곡, 변화무쌍한 드럼, 마치 시인처럼 멋진 노랫말을 끊임없이 외쳐대는 스나오의 단단한 보컬까지, 해외에서도 꾸준히 투어하며 이름을 쌓아온 그들의 무대는 완벽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VIVISICK은 전설 이전에 형제다. 2014년, 반란의 기획으로 한국에 왔던 그들은 우리와 많은 우정을 나눴다. 그들은 뒤이어 발표한 앨범 [NUKED IDENTITY]의 대표곡, <REBEL IS CREATION> 의 인트로에서
"우린 비비씩이야. 씨발!!"
이라고 한국어를 외치며, 한국 펑크들에 대한 우정의 표시를 남겼다. 나 역시 베이시스트 타짱과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고, 양국을 오가며 만날때마다 술 친구로 밤새 마시기도 한다. 드러머 히토시의 집에서 신세를 진 적도 있다. 그 집의 프렌치 불독, 망군에게 강력한 애교가 섞인 깨물림을 밤새 당해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거나, 한국의 타악기를 궁금해하던 그에게 한국의 사물놀이를 알려줬던 기억도 있다. 그런 사적인 시간들이 쌓여 있어서인지, 이 날의 라이브는 더 크게 다가왔다.
첫 곡 <Surreal Rhythm>의 리프가 울리자마자 관객들이 앞으로 몰려들었고, PIT BAR의 분위기는 폭발 직전까지 올라갔다. 정신 없으면서도, 정확하고 노련했다. 그러면서도 더 거칠었다. 이들의 라이브를 볼때마다, 항상 왜 이들이 세계적인 밴드라 불리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 밤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VIVISICK의 라이브였다. 그래서 더욱 그들과 같은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
그리고 세번째로 또다른 전설 SYSTEMATIC DEATH가 무대에 올랐다. 1983년 요코하마에서 시작해 일본 하드코어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름. 일본 하드코어 펑크 씬의 여러 걸출한 이름들이 모였던 시기를 포함해 이미 역사로 기록될 만한 밴드지만, 무대 위에서는 과거의 영광이 아닌, 여전히 미래로 뻗어나가는 현재형의 에너지로 가득차 있었다.
첫 곡이 시작되자마자 PIT BAR의 온도가 달라졌다. 짧고 시원한 곡들, 빠르고 정확한 연주, 군더더기 없는 공격성. 세월이 응축되어 더 단단해진 사운드였다. 모두가 그 무게를 알고 있었다. 모쉬가 터지고, 몸들이 부딪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8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소음이 수십년의 세월을 지나 어떤 완숙함을 보여주는지, 일본 하드코어가 어떤 역사를 지나 왜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온몸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PIT BAR의 밤은 점점 밀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CRUCIAL SECTION과 우리였다. 투어의 마지막 불씨를 붙일 차례였다.
CRUCIAL SECTION이 무대에 올랐다.
히로는 투어 때마다 일부러 대결 구도를 만들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곤 했지만, 이 날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로 눈을 마주보는 순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수많은 전장을 같이 헤쳐 온 전우를 보는 기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번의 투어와 수많은 밤을 통과한 밴드들만이 공유하는 묘한 에너지가 있다.
사실 CRUCIAL SECTION은 일본 하드코어에서 매우 중요한 이름이다. 도쿄의 써클핏 문화와 직결된 에너지를 계속해서 증명해온 밴드.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팀이 아니라, 그 에너지가 모이는 장소를 지켜온 사람들이고, 하나의 스타일을 구축한 주체들이었다. PIT BAR라는 공간을 이끌어 가고 있는 존재. 그들과 손을 잡고 여러 차례 투어를 할 수 있었다는 건, 내 삶에서 분명히 굉장한 사건이었다.
긴 투어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CRUCIAL SECTION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그들이 홈그라운드인 PIT BAR에서 받은 환영은 거의 개선식에 가까웠다. 마치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온 사람들처럼. 곡이 시작되자마자 써클핏이 열렸다. 몸끼리 부딪히고, 주먹들이 올라가고, 꽉 찬 앰프에서 기타 굉음이 울렸다. 이 공간이 왜 그들의 공간인지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히로는 마이크를 움켜쥐고 노련하게 소리쳤다. 씬에서 오래 함께해온 얼굴들과 눈빛을 나누고, 써클 핏의 원을 더 크게 만들었다. 모리타는 베이스를 집어던지고 관객석으로 뛰어들어 원의 일부가 되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도 사람들의 함성이 계속 되었다. 긴 투어의 마침표를 찍는 밴드다운 마무리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 차례였다.
관객석을 보니 얼굴들이 보였다. 친구들, 동료 뮤지션들, 그동안 여러 차례, 우리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 멋졌던 라이브도, 형편없었던 만취 라이브도, 우당탕탕 뒤뚱거리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던 밤들도 다 함께 지나온 사람들이다.
엉망으로 시작했던 투어의 첫 날도 이 곳, PIT BAR였다. 오늘은 다르다. 멤버들 모두 마찬가지라 생각하는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긴장이 아닌, 강한 흥분과 함께, 이 밤을 계속 기억하게 될거라는 예감을 하며, 마이크를 힘주어 움켜 쥐었다. 드럼 카운트와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힘껏 달렸다. 나는 계속해서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관객의 함성이 우리의 또다른 악기였고, 라이브의 일부가 되었다.
마지막 곡은 정해져 있었다. 커버곡.
LET’S RAISE YOUR HANDS.
히로와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모리타, 스나이퍼, 이타루가 환호하고, 와다는 또다시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섰다. 누군가는 어깨 위에, 누군가는 바닥에, 누군가는 팔을 하늘로 뻗은 채. 그 장면은 마치 정지 사진처럼 지금도 또렷하다. 소리는 거칠었고, 공간은 가득차 있었고, 공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라이브를 마치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PIT BAR에 남았다.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고, 다시 건배를 했다. 누군가는 밤새 마시자 말했고, 누군가는 또 보자고 말하고 집으로 떠났다. 그렇게 밤은 흘러갔다.
PIT BAR의 불이 꺼지고, 계단 위로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밤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단지 한 구간이 끝났을 뿐이라는 것을.
<NETWORK - CONTINUATION IS OUR DEDICATION> 투어의 진짜 마침표는 3주 뒤 서울의 GBN에서 찍혔다. 도쿄에서 헤어졌던 얼굴들이 다시 모였고, 같은 소음 속에서 다시 몸을 부딪혔다. 짧은 재회였지만, 그 밤은 이 길었던 투어의 완벽한 마무리처럼 느껴졌다.
2년 동안 두 번의 장기 투어.
달리다 넘어지고, 다치고, 절뚝이다가 응원을 받고, 다시 걷고, 다시 뛰고, 환영받고, 박수를 받았다. 첫 인사를 하고, 작별을 하고, 다시 돌아가 타다이마를 외치고, 또다시 작별을 고했다. 반복되는 인사와 재회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했다.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밴드로서의 힘은 단단해졌다.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시간이었다. 각자의 휴가 기간이 잠시 맞물려 있었고, 인간관계가 이어졌고,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와 여백이 있었다. 노력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종류의 시간. 그래서 더 선명하게 남았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날도 있었고, 지친 날도 있었고, 서툴게 휘청이던 밤도 있었다. 그럼에도 드럼 카운트가 떨어지면, 리프가 울리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소음과 일체되는 감각. 그 순간만큼은 걱정도 계산도 없었다.
그게 우리가 배운 하드코어 펑크였다.
빠르고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서는 방식. 조건이 맞아서가 아니라, 맞지 않아도 선택하는 태도. 승리한 밤만이 아니라, 패배한 밤까지 끌어안고 다음 무대로 넘어가는 힘.
두 번의 긴 투어 끝에 남은 건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었다.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환대했다는 감각이었다.
하드코어 펑크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 반복을 몇 번 통과했다. 그럴수록 더 분명해졌다. 이건 취향이 아니라 태도고, 일시적인 열기가 아니라 오래 남는 습관이다. 거칠지만 순수하고, 소란스럽지만 이상하게 정직한 삶의 방식.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펑크와 하드코어는 각자의 뿌리 위에서 자라왔다. 우리는 그중 가까운 나라 일본의 계보 한가운데를 몸으로 통과했다. 기록이 아니라 경험으로. 음악보다 먼저 환대가 있었고, 소음보다 먼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히 공연 기록이 아니라, 위대한 우정의 경험이었다.
소음이 멈춰도 잔향은 남는다. 타박상은 옅어져도 감각은 남아 삶의 일부가 된다. 일상으로 돌아가도 어느 순간, 몸이 먼저 그 밤을 떠올린다.
투어가 끝나도 하드코어 펑크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흩어지겠지만, 다시 서야 할 무대를 이미 알고 있다.
이게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삶은 계속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끊임 없이 누군가와 연결될 것이다.
NETWORK!!
CONTINUATION IS OUR DED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