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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bear Jun 04. 2021

인생 키우기 게임

'넌 쉴 때 뭐해?'

'책보거나 집에서 간단하게 운동해요. 산책 가거나?'

'또 뭐해? 게임 같은 건 안 해?'

'네, 뭐 가끔 맛집 가는 정도... 아 당구도 쳐요'

'술은?'

'안 마셔요'

'그렇게 살면 재밌어?'

'네. 나름 재밌어요'


목적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교회 형 차를 타고 녹양역을 지나가던 때였다. 차 안에서 일상 얘기를 하다가 취미 얘기가 나왔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지만 대충 그 당시 차 안에서 나눈 대화였다. 대화도 대화였지만 그 형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마치 '뭐지 이 기이한 생명체는?' 이런 느낌으로 본 것이 기억난다. 기분이 나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 형 눈에는 말 그대로 신기함과 놀라움만 가득했으니까. 어쩌면 내가 못 느꼈을 수도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내 취미를 얘기하자면 독서와 턱걸이, 일기, 글쓰기 정도가 있다. 이 취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무렵부터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자기 계발에 취미를 가지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들을 막 빌려 읽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번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 우수자로 문화상품권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그런 부류의 습관들을 가지게 됐다. 


군대에서도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아침 6시 30분 기상이지만 6시에 눈이 떠졌고, 그 시간에 책이나 성경을 보곤 했다. 개인정비 시간이나 점호가 끝날 때 즈음이면 일기를 3줄은 쓰고 잤다. 어쩔 때는 한 페이지를 넘게 쓰기도 했다. 그렇게 채우고 채우다 일기장을 다 채워서 새 일기장을 살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복학해서도 그 재미는 그대로 가져갔다. 시험 준비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책 보고, 가끔 일기 쓰고. 하나 추가하자면 기타 치는 재미? 그 정도로 살았다. 지금 다시 기타를 잡기 시작했고, 굳은살이 다 사라져서 엄청 아프다. 계속할 걸. 


어쨌든 난 보통의 여가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끔 당구도 치고 노래방도 갔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그다지 가고 싶지가 않다. 뭐 노래방은 이 시국이 끝나면 추억을 꺼낼 겸 가고 싶긴 하다. 그래도 예전만큼 자주 갈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나의 성인기 인맥은 그렇게 넓지 못했다. 학교를 다닐 때 왕복 5시간을 통학해서 그런지 취미 생활의 대부분이 전철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나마 동아리 사람들과 놀긴 놀았지만 그다지 많이 놀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공대와 군대에서 놀려고 하면 게임과 술은 거의 필수인데 도저히 늘지 않았다. 특히 게임은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한창 서든어택이 유행이었다. 친구들과 가끔 피시방을 가면 하긴 했지만 항상 맨 밑에 있었다. 게임 스타터였고, 킬보다 데스가 많았다. 그리고 항상 나는 유리한 팀에 들어가는 킬 자판기였다. 스타크래프트는 10분을 넘겨본 적이 없다. 나는 드라군을 뽑고 있는데, 럴커가 오고 골리앗과 탱크들이 무더기로 온다. 드라군을 뽑았으면 다행이지.


그나마 오버워치랑 배틀그라운드는 할 만했지만, 너무 눈이 아파서 못하겠다. 한 게임 돌리고 나면 뇌와 눈이 사라진 느낌? 롤은 빌드를 외우기 싫었다. 시험공부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거기서 뭘 또 외워야 되니까. 그리고 한 게임에 1시간이라니. 그 시간에 자야지. 더할 엄두가 안 났다.


술은 그냥 먹고 싶지가 않았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종교적인 이유로 먹지 않았다면, 복학 이후로는 그냥 맨 정신으로 살고 싶었다. 술을 먹으면서 머리가 약간 멍해지는 알딸딸한 그 느낌이 특히 싫다. 그리고 나의 기쁨을 제대로 백퍼센트로 느끼고 싶고, 슬픔은 온전한 정신으로 극복하고 싶은 설명하기 힘든 오기가 있다. 


그런 이유로 내 생활은 극강의 건전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건전함이 나에겐 가장 큰 행복으로 느껴지고 있다. 다시 누가 내 인생이 재밌냐고 묻는다면 아주 재미있다. 친구들이랑 술 없이도 재밌게 놀고 얘기하고, 책 보면서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쌓아가는 재미가 나에겐 지금 가장 큰 재미다. 


이것도 게임이라면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키우기 게임. 게임에서 못 키운 캐릭터를 잘 키워보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 빌드업을 잘하고 싶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못한 빌드는 여기서 할 것이다. 지금 다시 세우는 중이라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레벨업을 해서 누군가의 헤매고 있을 빌드업을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때를 바라보며 오늘도 책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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