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I

그 누구를 바라보던 자세히 보면 내가 보인다.

by krush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우리의 삶을 강력하게 뒤흔들어 놓은 코로나 19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군대에 있었던 저에게 그 시기는, 세상의 불확실함을 알게 하고, 인생의 공정함, 그리고 노력하는 자는 무조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기대를 단번에 부순 사건이었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없이 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이뤄낸 무언가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숨에 무너져 내렸고, 심지어 거리두기 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그때,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것을 저는 뼈저리게 느꼈고 삶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저는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항상 커다란 짐을 지고 삶을 살아갑니다.

책에서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 '독고'는 본인의 인생에서 한번 무너져 내렸던 사람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말 만연하게 퍼져있는 물질주의를 믿고 따랐던 독고는 성형외과 의사입니다. 독고가 있는 병원의 원장은 병원에 더 많은 수입을 가져오기 위해서 의사인 독고를 앞세워 많은 수술을 따내게 하고, 수술은 라이선스가 없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끌어내는 사업가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 환자가 수술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독고의 아내와 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병원 일은 비싼 변호사 고용으로 그럭저럭 잘 풀렸으나 아내와 딸은 어느 날 그를 떠나버리고 맙니다. 매일 술을 마시며 자신이 한 행동과 죄를 잊으려 회피하던 그는 기억을 잃고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병원 의사면 돈을 참 많이 벌어왔을 텐데, 사실 아내와 딸, 그리고 독고 스스로가 어느 정도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라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독고는 잠깐 불행하더라도 다시 자신이 신봉하는 물질주의를 끝없이 믿으며 자신을 합리화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놀랍게도 이런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사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잖아요?


그래서 책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독고라는 인물은 간접적이더라도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독고 본인이 믿고 따르던 물질주의와 경쟁사회에서 벗어난 그 순간, 자신이 누구고 왜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때 독고는 그동안 매고 다녔던 짐을 사라져 버린 기억 속에 파묻고, 숨겨져 있던 자그마한 양심과 배려가 수면 위로 올라와, 그는 배려의 표상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한 편의점 사장님과의 사건에서 순수한 배려의 모습으로 좋은 인상을 사장에게 남겼던 독고는 사장님의 따뜻한 손길에 노숙자의 삶을 떠나 편의점 알바로서의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장님의 고운 마음씨 역시 주목할 만하지만, 그녀의 이목을 끈 그의 배려 역시 우리는 잘 보이지 않는 보석을 꼼꼼히 발견하는 것처럼 발견해 내야 합니다. 우리는 가진 짐을 내려놓고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작지만 선한, 배려와 온정이 남아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 속에서 보이는 우리의 모습

경쟁과, 불황, 남들과의 비교 등으로 피폐해진 우리를 보듯, 불편한 편의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 할머니들의 손주들, 술에 잔뜩 취한 진상, 편의점 테이블에서 술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회사원, 대기업에 들어갔으나 좋은 자리를 버리고 폐인이 되어버린 자식을 둔 어머니, 몇 년째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 극작가의 꿈을 꾸었으나 현실의 벽에 치여 마지막 글을 쓰고 절필하겠다 마음먹은 작가. 겉보기에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속마음은 그들 자기만의 고민으로 둘러싸여 있고, 세상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노숙자였던 독고의 배려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에서 조금씩 힘을 얻어 자신이 꿈꿔온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갑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사랑해 준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지요. 각자의 삶은 다들 미묘하게 달랐을 테지만, 그들의 삶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측면에서 스스로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대기업을 나와 폐인이 되어버린 '자식'의 측면에서 생각을 많이 하며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자꾸만 뒤처지면 안 된다고 앞으로 가라고 하는데, 마음은 자꾸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라며 제동을 겁니다. 멈추는 것은 굉장히 무섭습니다. 또한 두렵습니다. 내가 여기서 멈추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면 가족들한테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잠깐 남들보다 앞선 위치에 있었다고 자만하고 우월감을 느꼈던 나 스스로의 자존심이 망가지는 것은 아닌가?, 만약 멈췄는데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 오늘의 내 선택이 틀렸으면 어떡하지? 사실 이런 내용은 책에 드러나지 않지만 제가 상상했던 그의 속사정입니다.


우리는 대신 책에서 그 자식의 어머니의 스토리를 듣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걱정되기만 합니다. 내 자식이 좋은 대기업 들어간 것으로 남들과 비교하며 으스댔던 것을 떠올리며 생각나는 알량한 자존심도 있고,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은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인데, 그러지 않았던 자신의 남편처럼 아들이 남편과 같은 길을 가면 어떨까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식의 앞날이 걱정되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사실 이러한 갈등관계를 보다 보면, 참 단순히 해결되기 어렵다고 느껴지실 겁니다. 우리네 삶도 그랬으니까요, 책에서 독고가 그때, 자식의 어머니에게 삼각김밥과 진심을 담은 편지를 자식에게 써보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세상을 등진 폐인과 자식을 한심하다고 여기는 부모의 관계는 계속되었을 겁니다. 자식의 불안한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부모의 역할은 자식에게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는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가장 이입해서 이 책을 읽으셨나요? 나중에 제가 다시 이 책을 꺼내 읽게 된다면,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한 동정을 느끼면서도, '맞아 배려는 사람을 행복하게 바꾸지'라며, 최근에 제가 배려했던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좋겠네요.


책을 읽읍시다.

20살이 되기 전까지, 책 읽는 게 너무 싫어서 스스로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이 만화책 밖에 없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참 어불성설 같이 느껴지긴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정답과 목표가 정말로 뚜렷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돈은 무지하게 많이 벌어야 하고, 서울에 집 한 채는 사야 하고, 재테크 꾸준히 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 하고,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고, 결혼은 최소 어떤 조건은 만족하는 사람이랑 해야 하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하고, 스스로 역시 만족되지 않는 삶에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내용들을 보다 보면, 물론 어느 정도의 자기 포장과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잘 나가던 사람이 한없이 추락하기도 하고, 정말 힘들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성장해 있기도 하듯. 인생은 사실 한 방향으로만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 역시 사실 자기 계발서가 아닌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기도 하고, 내가 생각한 것과 믿음이 항상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