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사람인지 사람이 돼지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더 좋은 시대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품고 탄생한 동물농장이 어떻게 다시 기존의 악(惡)이라고 여겨졌던 메이너 농장으로 돌아가는가에 대해 쓴 우화적 풍자 소설이다. 필자는 사실 이 책의 중반부 정도까지만 읽고도 뒤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되었다. 이 책이 쓰였을 당시에는 잘 모르겠으나,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어쩌면 뻔한 스토리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신뢰의 부재'에 대한 시각에서 이 책을 바라보기로 했다.
돼지 '메이저'는 '존스'가 운영하는 메이너 농장에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은 노년의 돼지이다. 그는 죽기 직전 동물들을 모아 그의 신념을 전한다. 동물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 사는 자유로운 삶이 아닌, 인간의 부를 위해 희생하고 자식을 빼앗기며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이러한 노예로서의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위해 뭉치고 투쟁하여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부한다. "거듭 말하지만, 여러분이 인간을 정복했을 때에도 그들의 악덕만은 절대로 답습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동물도 집에서 살며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동물들도 같은 동물을 억압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약하건, 강하건, 지혜롭건, 우둔하건,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모든 동물들은 동등합니다."
죽기 전 늙은 돼지 메이저가 남긴 연설은 동물들의 투쟁의 불씨를 지폈고, 동물들은 합심해 메이너 농장의 주인 인간 '존스'를 몰아내고 '동물 농장'을 세웠으며, 동물들이 따라야 할 불변의 계율로서 메이저의 철학이 담긴 칠 계명을 세운다.
모두가 같은 행동(투쟁)을 통해 '동물농장'을 건설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속마음 즉 이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메이저와 같은 것을 믿고 따른 것은 아니었다. 가장 이상주의적이고, 메이너의 신념과 유사했던 돼지 '스노볼'이 있는가 하면, 똑똑하지는 않아 정확히 이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남들에게 모범이 되고 항상 희생하고자 하는 훌륭한 일꾼인 말馬 '복서'도 있었고, 가장 나이가 많고 메이너 농장 시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늙은 당나귀 '밴자민'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물들은 글을 읽거나 쓰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고, 심지어는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그들은 투쟁을 통해 '동물농장'을 건립할 때에도 이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다만 메이저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때 불렀던 신념이 담긴 노래인 <영국의 동물들>을 부르며 똑똑한 돼지들을 따랐다.
동물들에게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는 생각도 잠시, 이러한 망상은 서서히 깨지게 된다. 똑똑한 돼지들 중 야심과 추진력이 넘쳤던 돼지 '나폴레옹'은 어떻게 이 '동물농장'을 운영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이상주의자 '스노볼'과 대립하였고, 그는 자신을 따르는 개들을 모아 스노볼을 내쫓는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이후, '나폴레옹'은 서서히 칠 계명을 입맛대로 바꾸어가며 자신만의 농장을 건설해 나간다. 나폴레옹과 그의 측근들은 자신을 따르지 않는 동물을 죽이고,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설파하며, 술을 마시고 인간과 거래하는 등 점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이다가 결국에는 두 발로 걷고, 인간의 옷을 입고, 종국에는 정말 그들이 혐오하던 인간이 되어버린다.
앞서 말했듯 필자는 이 책의 5장 '나폴레옹'이 이상주의자 '스노볼'을 몰아내는 시점부터 뒤의 내용이 예상이 되었다. 물론 동물농장이라는 책이 유명하기 때문에 대충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이상적 세계를 만든다는 표어를 들고 앞서 나왔던 정치가가 권력에 힘을 갖게 되면 또다시 자신을 위해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들고 결국 이상의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는다는 줄거리가 여러 매체,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친숙한 내용 이어서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이러한 생각이 나만의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관련된 통계자료들을 찾아보았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실상은 훨씬 더 처참했다. 영국의 시장조사 기업 Ipsos에서 2019년에 발표한 세계 23개국(한국포함)의 직업에 대한 신뢰도 지표를 확인해 보면 신뢰도가 가장 높은 직업 '과학자'의 경우 신뢰(60%), 불신(11%)인 반면, 가장 낮은 신뢰도를 기록한 정치인의 경우 신뢰(9%), 불신(67%)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더 높은 불신(69%)을 기록했다.
정치가가 권력을 갖게 되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나, 앞서 이상주의적으로 얘기한 '공약'들과 같은 신념은 자신의 이해타산에 맞춰서 뭉그러지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잠깐 시행한 여러 정책들은 어느 순간 소리소문 없이 중단되기도, 입맛대로 바뀌기도 한다. 이 과정을 단순히 한 정치인만의 잘못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표를 얻기 이전 정당에서 충분한 지지를 얻기 위한 작업들은 자연스럽게 지지해 준 본인의 세력들을 위한 콩고물을 남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 때로는 자신의 신념을 통해 이상주의적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희망을 품은 자들도 있었으나, 그가 정치적인 적이 된다 싶으면 혹은 자신에게 이득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이 되면 자신의 세력들을 모은 '나폴레옹'이 이상주의적 '스노볼'을 몰아내는 것 역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례들이 즐비해 있다. 그리고 가끔은 '스노볼'이 또 다른 '나폴레옹'이 되기도 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정치가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부패한 언론의 역할 역시 등장시킨다. 또 다른 돼지 '스퀼러'는 연설가적인 자질을 가졌던 돼지로,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자 그의 입맛대로 바뀌는 '칠 계명'에 적절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동물들을 속였고, '나폴레옹'과 정반대로 여겨지는 '스노볼'을 실제 그의 행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동물농장의 악당으로 만들어 대중들을 설득한다. 그래도 인간 '존스'시대보다는 낫지 않냐며 동물들이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바탕으로 나폴레옹을 신격화하기도 한다. 이 역할은 언론의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나폴레옹'세력의 또 다른 정치인으로서 볼 수도 있다.
그럼 단순히 정치인을 믿었던 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남들에게 모범이 되고 희생했던 말 '복서'는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자 그의 삶의 좌우명중 하나로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를 추가한다. 그는 그를 진심으로 믿었고, 그가 진행하는 정책들에 항상 앞장서 '내가 좀 더 일하겠다'라는 자신의 또 다른 좌우명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그를 따른다. 우직하게 불평하지 않고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일을 하던 그는 나이가 들고 전투에서 총알을 맞아 노쇠해지자 '나폴레옹'이 연락한 말 폐사 업체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럼 정치가 믿을만한 것이 아니고, 누가 권력을 잡던 똑같은 일이 펼쳐질 것이기에 그냥 눈감고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건 절대로 아니다. 책에서 '나폴레옹'이 권력을 얻고 행하는 많은 만행들이 동물농장에 그대로 먹혀들어간 이유 중 하나는 말 '복서'를 포함해, 글자도 읽을 줄 모르고, 기억력도 좋지 않은 대부분의 동물들 때문이었다. 오히려 피해자인 그들에게 왜 '때문'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동물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인간인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얻자마자 진행한 가장 큰 행동은 역시 그의 말에 의문을 품은 똑똑한 다른 돼지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혹은 다른 동물들도 적당히 똑똑했다면 줄거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력이 생겨 또 다른 혁명을 낳았을 수도 있고, 그가 추진하는 자신만을 위한 정책들에 대해 질타와 견제가 들어왔을 테니 권력을 약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이상적 세계를 건설할 수는 없더라도, 칠 계명이 그들을 옥죄어 조금이나마 이상에 가까운 농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지식을 갖추고, 그 이유를 꿰뚫어 보는 자를 정치인들은 가장 두려워한다. 그들이 쉽게 속일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 끊임없이 그들을 감시해야 우리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단순히 믿음의 영역으로 정치인을 바라보기보다는 항상 비판적인 태도로 의심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책 '동물농장'은 우리에게 사실 필자가 바라본 시각 말고도 정말 많은 교훈을 주는 책이다. 책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 동물들이 아는 사람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어떤 동물들에서는 내 모습도 보여,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등 생각할 것들이 많아진다.
'동물농장'이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부분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라, 이 부분을 빼고는 내용을 적기가 정말 어려웠고, 그래서 다소 조심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으나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를 가지라는 필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한번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광고, 글, 영상 등을 접한다. 무엇이 옳고 틀린 지 너무 복잡한 시스템 때문에 때로는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으나 "이 사람이 왜 이런 뉴스를 쓴 거지?", "왜 이런 글을 썼지?" 등 되물어 가며 속내를 파해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앞으로 우리가 내려야 할 수많은 결정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확신이 생기고, 선택에 대해 덜 후회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