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병 완치] Thinkpad로의 회귀

'맥북병'보다 무서운 '씽패병'

by Nolan Kim

아이폰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번쯤 지독한 '맥북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유려한 알루미늄 바디, 쨍한 디스플레이, 빵빵하게 공간을 채우는 스피커, 그리고 무엇보다 밖에서도 충전기 걱정을 잊게 만드는 변강쇠 같은 배터리. 여러 매체에서 입을 모아 찬양하는 그 치명적인 매력에 홀려, 나 역시 맥북 프로를 들였다.

특히 배터리 타임에 유독 집착하는 나에게 맥북은 더없이 완벽해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은 카페 테이블 위에 올려둔 사과 마크를 보며 큰 만족감을 느꼈다.




완벽함 이면의 찝찝함, 판도라의 상자

그런데, 그 완벽함 이면에는 묘한 이질감이 계속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바로 '윈도우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여자친구의 과거를 알게 되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랄까? 뭔가 찝찝한 그 느낌적 느낌. 맥북을 써본 문과생들이라면 무조건 느끼는 그 본질적인 갈증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아무리 빠르고 배터리가 오래가더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맥북이 메인 랩탑이 되기란 쉽지 않다. 영상이나 음악을 다루는 예체능 종사자가 아닌 이상, 엑셀을 돌리고 한컴오피스를 켜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은 결국 윈도우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파일명 자음과 모음이 공중분해 되는 현상을 겪고, 회사 재택근무 시스템에서 맥북이 아예 배제되어 있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예쁜 맥북은 그 빛을 잃어갔다.


성형수술을 너무 심하게 한 '성괴'를 볼 때의 피로감이랄까. 겉보기엔 화려하고 완벽하지만, 정작 내 일상과는 겉도는 느낌. 나에겐 엄청나게 빠르고 예쁜 녀석보다는, 내 일상의 모든 평범한 작업들을 묵묵히 포용할 수 있는 착한 윈도우 랩탑이 더 어울린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뽀얀 백탕의 위로, 그리고 소프트한 촉감

그렇게 사과를 내려놓고 다시 내 곁에 둔 녀석은 투박함의 대명사, '씽크패드'다.

화면부터가 내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나는 디스플레이를 훠궈에 자주 비유하곤 한다. 얼큰하고 자극적인 홍탕이 OLED 화면의 쨍함이라면, 구수하고 담백한 백탕은 IPS 안티글레어 패널이다. 씽크패드의 디스플레이는 군침이 싹 도는 뽀얀 백탕 그 자체다. 글씨는 또렷하고 빛 반사는 거의 없어 눈이 편안하다. 화려한 자극 대신 담백한 위로를 건넨다.


손끝에 닿는 감각도 마찬가지다. 얕은 트레블을 가진 랩탑들은 칠 때마다 손가락에 묘한 긴장감을 준다. 힘을 빼면 오타가 나고, 다시 힘을 주면 통증이 오는 악순환. 맥북을 쓸 땐 장시간 타이핑을 하려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씽크패드의 키보드는 푸근하고 소프트하다. 굳이 비싼 고가 라인업을 고집하지 않아도, 손가락을 얹는 순간 계속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여기에 생산성의 화룡점정인 '빨콩'까지 더해지면 게임은 끝난다. 트랙패드로 손을 내릴 시간조차 아껴주는 이 요물은,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는 짜릿한 '빨간 맛'이다.




결국, 노트북은 일상을 함께 굴려가는 동료다

물론 씽크패드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스피커는 박진감 넘치는 저음 따위는 개나 줘버린, 그저 예전 데스크탑 전면에 붙어있던 8비트 수준의 소리만 내뱉는다. 하지만 랩탑의 포지셔닝이 '오피스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단점은 기꺼이 안아줄 수 있다. 인텔 칩을 달고도 12시간을 버텨주는 배터리 성능은 하극상이라 부를 만큼 훌륭하고, 나를 옥죄던 호환성의 스트레스는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맥북 프로를 처분하고 씽크패드를 들이며 남은 100만 원가량의 차액은 덤이다. 이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해 '돈 복사'를 노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완벽한 시나리오인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장신구가 아니라, 내 삶의 궤적을 묵묵히 함께 타이핑해 줄 든든한 동료. 왜 노트북은 씽크패드여야 할까? 이 투박하고 착한 녀석과 글을 짓고 있는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 손끝에서 이미 완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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