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가득 채운 음식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딱 한 가지 음식을 묻는다면? 또는 가장 힘들도 지칠 때 나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음식이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엄마의 요리를 인생 음식으로 꼽을 것이다. 일 년 동안 식구들을 먹이겠다는 엄마의 정성에 막대한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김장김치라던지, 가족들이 아직 잠든 이른 새벽부터 홀로 일어나 부지런히 차려낸 따뜻한 아침 밥상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엄마가 김장 담그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아침잠이 많은 스타일인 나는 차려진 아침밥상은 구경 못 하고 학교 다니기 바빴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 잊지 못할 진한 감동을 남긴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나에게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면 아무래도 김밥이다. 어릴 때는 김밥 속에 그렇게 무수히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지, 모든 재료를 일일이 다 볶고 데치고 해서야 김밥이 완성되는지 잘 몰랐다. 그저 쉽고 간단하게 뚝딱 말아져 나오는 줄 알았다. 소풍 가는 날 아침이면 언제부터 말기 시작했는지 모를 김밥이 줄줄이 쌓여 있었다.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아침에도 먹고 학교 다녀와서도 먹으라고 김밥은 끝도 없이 썰어져 나왔다. 어느 주말 동네 뒷산에 놀러 갈 때도 엄마는 김밥을 뚝딱 말아 도시락을 쌌다. 소풍날처럼 시금치에 우엉이 들어간 정식 김밥은 아녔다. 단무지 대신 김치 넣고 햄이나 맛살 대신 어묵볶음이나 진미채 같은 밑반찬이 들어간 특별한 김밥이었다. 그렇게 냉장고에 있는 평범하고 흔한 재료도 엄마 손으로 돌돌 말면 최고 맛있는 김밥이 되었다.
엄마의 사랑은 김밥처럼 날름날름 받아먹기 쉬웠고 한없이 쌓여 있어 언제나 나를 배부르게 채워주었다. 언제 어디든지 나를 따라다니며 내 곁을 지켜주었고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며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티 나게 했다. 그렇게 엄마는 나를 향한 터질듯 한 사랑을 꾹꾹 말아 건냈고 나는 늘 당연하게 받았다.
고3 때 엄마가 다쳐서 병원에 일주일쯤 입원하신 적이 있었다. 학교 저녁 급식을 신청하지 않아서 도시락을 꼭 싸가야 했다. 그래서 그때 아빠가 내 도시락을 싸주셨다. 퇴근길에 반찬가게에 들러 다음날 내 도시락으로 싸줄 반찬들을 이것저것 골라오셨다. 그것도 나름 아빠만의 재미였을까? 어쩜 매번 다르게 다양한 반찬을 골라 싸주셨다. 어느 날엔가는 도시락통을 열어보니 반찬으로 꼬막무침이 딱 들어있었다. 껍데기 채로 양념장이 뿌려져 있는 꼬막 반찬이 밥반찬인지 술안주인지 어쩐지 안 어울렸다. 알맹이는 다 까먹고 껍데기만 남은 빈 도시락통을 딸그락 들고 집에 와서 아빠한텐 반찬이 이상했다고 투정 아닌 투정도 부렸던 거 같다.
엄마 대신 아빠가 밥을 차려줄 때도 도시락 싸주던 거랑 비슷했다. 냉장고를 털어, 멸치볶음이나 콩자반 같은 남은 반찬들에다가 된장찌개 두부랑 채소들 넣고 국물에 자박자박 비벼낸 비빔밥이 아빠의 주특기였다. 뭐 어쨌든 맛만 있으면 됐지, 사는 것도 그냥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살아라. 있는 그대로 투박하지만, 뭐든 다 주고 싶은 마음, 그게 아빠 스타일의 사랑이고 격려였다.
어느덧 나도 결혼하여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주는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다. 가족을 너무 사랑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워킹맘처럼 또는 MZ세대 와이프처럼 시간을 드려 정성스러운 요리는 못한다. 그렇지만 가족을 굶기 수도 없기에 매일매일 저녁 식사는 책임지고 차려낸다. 마트에서 사 온 양념된 고기를 데우기만 하거나 밀키트로 포장된 재료를 모두 넣고 끓이기만 해도 어쨌든 내 손을 거친 요리다. 시어머니가 담가준 김치로 엄마가 가르쳐준 방식으로 만든 김치찌개도 나의 대표 요리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내 요리에 늘 박수 쳐주고 맛있게 먹어준다. 나의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는다. 소울푸드가 뭐 별 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차려낸 밥상이면 됐지 뭐. 세상에서 엄마 요리가 제일 맛있다고 엄지 척해주는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들에게 내일은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