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런던 올림픽

by 괴물

2012년을 막 들어섰다.

런던 올림픽을 7개월 정도 앞두고 있었다.

올림픽 준비로 더욱 힘들어진 훈련과 성적으로 인한 압박감이 선수촌의 공기를 긴장케 했다.


여자복식에선 중국 팀이 독보적인 세계 랭킹 1위로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올림픽 시스템이 토너먼트에서 리그전으로 바뀌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리그전은 어찌 되었든 네 팀이 한조가 되니 3번의 경기 는 치러야 해서 내심 안심이 되었던 이유다.

그때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나‘라고 생각했다.


7월에 접어든 런던 날씨는 쾌적하고 화창했다.

시차도 무난히 적응할 수 있었고 한국 단에서 직접 와서 요리해 주시는 음식들도 만족스러웠다. 모든 게 우리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이끌어주는 듯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코치님이 다소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 오셨다.'중국 B조가 덴마크에게 졌다.'랭킹 1위로는 중국 A 조가 랭킹 2위로는 중국 B조가 한국은 랭킹 3위와 8위로 출전한 상태였고 우리는 랭킹 3위에 속해 있었다.


대진표도 나쁘지 않았고 랭킹 2위인 중국이 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결승까지도 올라서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 아 정말 하늘이 또 한 번 우리를 돕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꿈같은 시나리오는 모두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다. 결론적으로 인도네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국 2팀이 전원 실격되어버렸다.


우리는 서로 유리한 대진을 만나기 위해 양 팀 모두 경기에서 지려는 우스꽝스러운 경기를 했고 관중들은 점점 야유하기 시작했다. 어영부영 뛰고 있으니 스스로 허탈함도 밀려왔다.


여러 차례 경고가 들어왔지만 무시하고 서로 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무언가 일이 벌어져도 벌어질 것만 같았다.


올림픽은 실력 순이 아닌 하늘에서 점지해 준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항상 변수가 있고 그런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순조롭게만 진행되어도 안정적으로 메달 획득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순탄치 않겠다.‘란 느낌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급성 위염이라도 걸렸는지 경기 중 배가 뒤틀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이대로라면 양 팀 모두 실격이라는 최악의 경고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경기에 이겨서 그래도 괜찮을 거란 기대와 달리 올림픽위원회는 다음날 전원 실격이라는 소식을 통보하였다.


세계적으로 비판적 논란거리의 중심이 되었고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동거동락하며 같이 고생한 동료들과 선생님들,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떠오르며 스쳐 지나갔다.


올림픽은 출전만으로도 그간 운동 생활의 보상을 받듯이 아주 뜻깊고 흥미로운, 그야말로 스포츠인들의 최고의 축제다.


첫 올림픽을 마무리하고 난 후 나태해지지 않고 이대로 최선을 다한다면 다음 올림픽에선 한국 A 조로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올림픽까지 4년의 시간. 중간중간의 부상과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있었으나

나의 바람대로 A 조로 런던 올림픽 출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격 처리되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은퇴하고 싶다는 바람은 허탈하게도 순식간에 한여름 밤의 꿈처럼 증발해버렸다.


안타까우면서도 논란의 중심에 선 우리를 경계하듯 바라보는 시선들과 비판적으로. 쏟아지는 뉴스 기사들을 마주하며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채 런던에서 조기 귀국하였다.


2012년의 올림픽 시스템은 경기를 치르며 다음 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예상할 수 있다는 오류를 일으켰다. 훗날 룰은 다시 재편성되었다고 한다.


올림픽은 내게 감사함과 아쉬움 모두를 안겨준 기억으로 남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훗날에는 올림픽 기억이 고마운 마음으로 생각 되길 바란다.


치열한 경쟁과 목표만을 향해 살던 나는 다시 가슴 뛰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누군가 나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건냈다.

그 사건으로 인한 올림픽은 나에게 내림픽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도 진정한 올림픽이 되길 바란다며 말이다. 엉뚱한 아재 개그인 듯해 웃음이 픽 나왔다.


다음은 김연아 선수와 아이유가 불렀던 ‘얼음 꽃‘ 이란 노래 중 좋아하는 가사다.


'눈길이 없는 곳 박수갈채 없는 곳 그곳에 홀로 서 있을 때 나만이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곳 거기서 웃을 수 있을 때 난 그런 나를 믿어요.'


소중한 무언가를 가슴 깊이 품어 본 기억. 해내려 했던 마음. 그러나 노력이 배신했던 경험. 나의 노력을 아무도 몰라주었던 경험. 가슴 아팠지만 다시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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