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태릉 선수촌 입성이라는 영광

by 괴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태릉 선수촌에 입촌하게 될 예정이었다. 함께 입촌하게 될 친구와 대표 팀 명단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유독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뭐~야!? 이 선배도 선발되었다고?? 허! 게다가 복식? 대~~ 박!"이라며 건방진 미소를 내보였다.

오만한 태도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선배들을 제치고 전국 대회 우승을 해왔기 때문에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수촌에 입촌해 보니 선배들은 아무도 나를 몰라보았다. 나이키 운동복을 자주 입고 다녀서 육상부인 줄 알았다는 선배도 있었다.


태릉 선수촌 입촌 후, 긴장감 속에 훈련을 하던 중 복식 파트에서는 파트너를 정해주기 시작했다. 태릉 안에서 도 유망주 순서대로 이름이 호명되었다.

A조 강 00+오 00

B조 박 00+강 00

C조 이 00+신 00

D.

E.

F조....

점점 명단은 끝나가는 데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고 있었다. 나의 불안감은 점점 높아졌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제일 마지막 순서에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심지어 내가 비웃던 그 선배와 함께 말이다.

코치님은 그 많은 선수들 중 나를 가장 못마땅해하셨다.

“너는 그 자세로 될 수가 없어~!"

"에잇~ 그냥 코트에서 나와~!"

"넌 절대 될 수가 없어~!"

등 매일 나를 비판하셨다.


모든 선수가 공평히 시간을 나누어 훈련을 할 때도

내 순서는 항상 마지막이었는데 그것도 몇 번 하지도 못하고 코트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코치님께 인정받으려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늘 호통과 질책이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애쓰던 마음은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라는 독기가 되었다.


코트 안에서는 선배고 후배고 우선이랄 것도 없이 이기는 놈이 선배같기도 하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후배들과 실력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한 살이라도 어린 선수를 쓰지 않겠는가.


반면 미운 선배가 있다면 그 선배를 이길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코트뿐이었다. 불만이 쌓인 게 있다면 코트에 서 이기면 되는 일이었다.


여느 선수들이 세계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실력이

한 단계 우상향 되어 있었다.

쉽게 이기던 후배가 해외에 나가 큰 무대를 경험하고 올 때면 위기의식이 느껴져 왔다. 무조건 이 안에서 발탁되 어 외국 시합을 출전해야 한다고 느껴졌다. 한국팀 안에서의 순위는 곧 미래의 주전멤버가 될 징표였다.


해가 지날 때마다 여러 선수들이 교체되었다.나와 가까이 지내며 서로 의지했던 동료 선수들도 모두 떠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살아남았네'

코치님이 어깨를 툭 치시며 던진 한마디였다.


모두가 마치 서바이벌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곳은 야생과 도 같았다. 피 튀기는 경쟁과 압박감 속에서 오로지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기계 같은 훈련 스케줄ㅡ

식사하고 훈련 후 취침. 다시 식사하고 훈련의 연속.


선수촌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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