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할 것 같더니 가네ㅡ"
청첩장을 돌리던 날, 나를 오래 보아 오던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셨다.
자유분방하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던 내가 결혼과는 안 어울렸는지 이따금씩 놀란 눈치였다.
나의 결혼은 그렇게 불쑥, 느닷없이 이루어졌다.
결혼 후 살고 있는 전주에는
시댁식구들의 터전이자 고향이다.
명절이나 주말에는 자연스럽게 친척분들까지 함께했고
나는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모두들 따스히 맞아주셨지만 나에겐 피로감도 못지않게 밀려왔다.
'아, 결혼은 단체 생활이구나..'
7남매 중 두 분 다 막내인 어머님 아버님 위로 첫째 이모님, 둘째 이모님, 외숙모, 이모님의 첫째 딸 둘째 아들... 등등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시댁식구들 중 한 명이라도 나와 삐걱된다면 이슈가 될 것이고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져 고요하던 수면이 깨지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다름 아닌 나로 하여금.
사실 모두가 따스한 분들이라 나를 배려해 주셨지만 만남 자체에 피로를 느끼고 있던 차라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수면에 돌을 던지는 일로 느껴졌다.
우리 집은 반대로 친척끼리 자주 만나지도, 모여서 딱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문화도 아니었다.
손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나만 이런 원치 않는 관계를 맞이해야 하며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 할까.
불만은 스멀스멀 머릿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식구들도 이렇게 왕래를 안 하는데...'
그들의 단란하고 행복한 문화를 헤치고 싶지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모두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원치 않는 간섭과 조언도 함께였다.
그것은 서로 합의된 것이 아니었다.
'결혼이 이런 거라면 나와는 안 맞아'
'그분들이 못되거나 미워서가 아니야'
너무 자주 보는 것이 문제였다.
남편도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가 괜찮았다.
문제는 나였다. 그 울타리 안에 들어온 것은 나였다.
이곳은 원래가 그랬다. 내가 그곳에 속해진 것이다.
이 감정은 누구의 탓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반면 자책일 수도 체념일 수도 있다.
결혼은 마치 재미없는 거대한 책임감 덩어리 그 자체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난제를 어떻게 만족스럽게 풀어나갈까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