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배드민턴 선수가 될 운명

by 괴물

제주도 제주시 ㅡ 낡고 후진 동네에 살았다. 기껏 해봐 야 3층짜리인 건물들이 어깨동무를 하듯 다닥다닥 붙어 있고, 얼룩덜룩 벗겨진 칠해진 페인트와 엉켜있는 전봇대의 까만 선들, 포장되지 않은 길이 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이어달리기하자~!"

누구 하나 다를 것 없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지내는 아이들과 달리기나 자전거 경주 따위 등의 놀이를 하며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그 동네에 살았는데 부모님이 아끼고 쪼개가며 겨우겨우 모은 돈으로 신축 아파트가 대거 들어선다는 신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40분 남짓 거리만 이동했을 뿐인데 미래의 도시에 온 것처럼 고층 아파트들이 멀끔한 모습으로 정갈하게 줄지어 있었다.

새로 전학 간 학교는 그림책에서만 보던 것과 같이 파스텔 톤으로 칠해져 화사한 건물 외형을 자랑했는데 학교는 그 후로도 5년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층수를 올렸다.

이상한 착각이지만 늘 우중충한 날씨였던 예전 동네를 벗어난 그곳은 줄곧 화창한 여름 날씨와 같았다.

무언가 세련된 외모와 옷차림의 아이들.

자기표현을 거침없이 마구 던지는 아이들.

모델 같은 길쭉한 팔다리와 조그마한 얼굴에 그때 당시 유행이던 힙합바지를 즐겨 입는 인형처럼 예쁘고 멋진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체 말없이 주변을 탐색하기 바빴다. 익숙지 않은 중압감을 적응해 보려고 애를 썼다.

학교에선 체육대회가 열렸다. 계주에 나가게 되었는데 내 순서가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팀 남자애가 3등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바통을 잡자 두 팔과 다리를 힘차게 내저었다. 역전을 하고 1등으로 통과하자 함성 소리가 터져 들려왔다.


그즈음에 배드민턴 감독님께선 추천 학생을 묻고 다니 셨는데 담임 선생님은 체육대회를 보시곤 나를 추천하셨고 그 계기로 배드민턴 선수가 되었다. 배드민턴은 그렇게 우연히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왔다.


선수반은 방과 후에 다 같이 모여 버스를 타고 체육관으로 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내가 알던 체육관이라는 것 은 오빠가 다니던 태권도장이 전부라 동네 태권도장 비슷한 곳으로 가서 연습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어마어마하게 큰 종합 실내 체육관이었다. 엄청나게 큰 규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63 빌딩을 바라보는 시골 촌놈처럼 나는 입을 헤ㅡ벌려 한참 천장을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하였다.

그곳에 계신 코치님은 굉장히 무서웠는데 매일 빵과 간식을 나눠주며 계속해서 나오도록 어르고 달래 가며 지도하고 있었다. 내 또래는 다해서 12명 정도였 다. 나는 한 명씩 한 명씩 이기는 상상을 했다.

'얘는 이겼고. 오늘은 얘를 이겼고. 남은 애는 누구지? 이제 쟤만 이기면 되겠네.'라고 생각하며 발톱을 감춘 호랑이가 갑자기 잽싸게 공격하는 것처럼 또래 아이들 을 하나씩 사냥하듯이 쓰러뜨렸다. 나는 승부욕이 강했 지만 성장발달도 남들보다 빨라 쉽게 1등을 하였다.


6학년이 되고 그해 여름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단체전 우승을 했다. 그때 우승후보였던 강원도 팀에 있던 에이스 선수를 이기며 신문에 크게 났다. 그 선수를 이기며 두말할 것 없이 전국에서 내가 1위로 굳혀진 분 위기였다.


코치님은 큰 목소리로 흥분하며 여기저기 자랑하셨고 엄마는 신문에 난 딸의 기사를 스크랩하기 바빴다.

6학년 때 내 실력은 복식 결승전에서 11:0,11:2 란 결과를 낼 만큼 우세하고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또래 친구들과 성장 발달이 비슷해졌고 실력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느낀 우월감은 더 큰 좌절감으로 돌아왔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허송세월했다. 그 후 실력이 더 저조해져 주전 멤버에서조차 제외되었 고 팀 주장으로 있던 자격도 박탈되어 다른 선수가 주장으로 교체되는 수모마저 겪게 되었다.


나의 반항심은 극에 달해 코치님께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기합을 받으면 째려보기 일쑤였고 속으로는 '누가 이기나 보자'와 같은 무모한 신경전을 수시로 벌였다. 다른 선수들은 종종 곤란에 처한 표정으로 나를 달래곤 했으며, 나는 그 많은 선수들 중 본보기로 참 많이도 맞았다. 그야말로 열등감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