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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일 하는 남자 Nov 17. 2021

제주도 첫째 날(상)

제주도 여행기~1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꽤나 많은 비였다. 토론토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보기 힘들었을 만큼의 많은 비였다.


"이거, 비행기 뜨려나?"


다행히도 뜨긴 하더라.


코로나 시대의 김포공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라고 예상했는데, 조금 이른 시간 탓이었을까, 날씨가 문제였을까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평범하게 붐비는 정도? 공항에 도착 전 사람이 많으니 두 시간 전에는 공항에 오라고 협박하던 항공사의 문자 메시지가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정년으로 한가해진 아버지의 차로 거센 비를 뚫고 공항에 도착해 롯데리아의 햄버거로 주린 배를 채웠다.

이른 아침, 비어있는 속, 나에게는 꽤나 매웠던 핫크리스피 치킨버거는 결국 나의 연약하기만 한 장을 뒤집어놓았고, 불편한 배를 부여잡으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처음 타보는 저가항공사인 에어 서울의 비행기는 생각보다 쾌적했고, 출발 시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생각보다 귀여웠다. 궂은 날씨 탓에 혹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별문제 없이 제주도에 도착. 나와 나의 아내는 둘이서는 처음인 낯설기만 한 섬에 발을 내디뎠다.


막막했다. 나름 즉흥 여행을 테마로 잡고 움직였기에 제주 공항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에겐 아무런 계획이라는 게 없었다. 그리고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 중. 등에는 무거운 배낭이 하나씩.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공항 한가운데에 서서 우리 부부는 목적지도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가 우선 찾아간 곳은 온갖 여행 팸플릿이 모여있는 인포메이션 센터. 그곳에서 아내는 제주도의 여행 전도와 이런저런 여행지에 관한 팸플릿(이라고 쓰고 광고지라고 읽는 그것)을 여러 개 모아 가져왔다. 당연하게도 여행 내내 그 광고전단에 있는 곳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에게 아주 약간의 의욕을 주었고, 날아가려는 정신머리를 억지로 잡아끌어 공항 외부의 버스정류장으로 발을 이끌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보도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고, 인터넷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스에 올라타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제주도의 버스는 관광지라는 특성 때문인지 앞으로 갈 노선과 환승 가능한 버스정보 등을 매우 자세하게 전방의 모니터로 출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버스가 그저 낯설기만 할 뿐이 우리 같은 촌뜨기 여행자에게는 너무도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동문시장. 하지만 여전히 비는 힘차게 내리고 있었고, 대낮의 시장에 호객하는 사람들, 그리고 숫기라고는 일절 없는 두 사람. 이렇게 만들어진 최악의 궁합은 별다른 소득 없이 우리를 시장 밖에 위치한 사람 없는 작은 커피숍으로 이끌었다. 한국 재래시장의 적응 안 되는 분위기와 그치지도 않는 비를 피해 홀린 듯 들어간 동문시장 외곽의 '커뮤니티 라운지'라는 이름의 카페는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친구)과 애매한 시간으로 텅 비어있는 실내, 그리고 나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2000년대 초반의 노래 선곡으로 꽤나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 그렇게 비어있는 카페에 퍼질러 가벼운 계획을 짜 보았다. 음 식당은 블로그에서 유명하다던 저기로 가고, 숙소는 급한 대로 거기로 갑시다. 이동은 잘 모르겠으니까 좀 걸을 수 있을까요? 대충 20분 정도 걸으면 된다는데.


마침 비도 적당히 그쳤겠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제주의 바람이라는 걸 격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추워봤자 가을의 한국이고, 그중에서도 따뜻하다는 제주도지. 우리가 어디서 왔습니까? 캐나다 아닙니까? 한국이 추워봤자 얼마나 춥다고.


제주의 바람은 차가웠고, 그만큼 날카로웠다. 비를 잔뜩 머금은 제주의 칼바람은 옷을 뚫고 살을 애웠다. 아무 생각 없이 후드티 한 장 입고 온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바람이었다. 스스로의 무지함이 원망으로 다가왔다. 힘들게 도착한 유명 맛집은 '21'이라는 기나긴 대기열에 포기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근처의 김밥천국으로 향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만난 첫 음식이었다. 김밥나라의 일반 김밥에 갓 데운 냉동만두, 그리고 어매이징 하게 맛있는 돈가스?!


첫 맛집을 실패하고 돌아섰지만, 인터넷이라는 지장을 손에 쥔 나에게 무의미한 패배는 없었다. 급하게 검색한 결과 찾아낸 '어지간히 비싼 제주의 식당보다 맛있다'는 평의 김밥나라. 비록 익숙한 음식들이었음에도 충분히 맛있게 넘길 수 있는 한 끼였다. 그리고 사실 그 어떤 식당보다도 안 잊히지 싶은 곳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둘이 간 제주도의 첫끼가 김밥나라라니, 거의 임신 중 못 먹은 짜장면급이지 않은가.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우리. 시간은 이제 막 1시가 지났고, 숙소의 체크인은 3시. 얼리 체크인도 안 된다는 숙소의 단호한 거절에 또다시 갈 길을 잃고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 끝내 문제가 터졌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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