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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일 하는 남자 Nov 18. 2021

제주도 첫째 날(하)

제주도 여행기~2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결혼 전까지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의 아내가 나의 첫사랑이며, 첫 연애였고, 그대로 결혼까지 이어진 케이스였다. 그렇다고 연애기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30살의 마법사를 눈앞에 둔 오랜 모태솔로였을 뿐. 그러다 도망치듯 날아간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고로, 결혼 6년째를 향해가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자를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에게 해야 하는 배려에 대해 무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고 싶다. 


문득 찾아간 김밥나라에서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칠 수 있었지만, 계획 없이 밖으로 나온 우리 부부를 맞이한 건 끝내 그친 비, 여전히 흐린 하늘, 그리고 시리도록 차가운 제주의 바람이었다. 그 차가운 바람 아래 내던져진 우리는 말 그대로 헤매고 있었다.


"나 추워요."

"그럼 택시 타고 먼저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기다릴까요?"

"그러면 너무 일찍 도착하지 않을까요? 아직 한 시간이나 더 남았는데."

"그럼 로비에서 기다리면 되잖아요."

"로비가 없으면 어떻게 해요."


이 같은 영양가 없는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그러다 결국 거의 모든 대화가 사라진다. 춥다던 아내는 바람도 그다지 막아지지 않는 버스정류장에 틀어박혔고, 나는 뭘 할지도 모른 채 버스 정류장 옆에 있던 공유 전기 자전거에 인증 신청을 하겠다고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아내가 먼저 터졌다. 그리고 나도 함께 터졌다. 터지고 터져 그제야 우리 눈에 맥도널드가 눈에 들어왔고, 맥도널드가 주는 익숙하고 따뜻한 커피 향에 극적으로 화해를 나눈 부부는 그다음에야 제주의 첫 숙소로 가는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맥도널드 앞에서 부르니 금방 택시가 왔다. 기사님은 꽤나 유쾌하신 분이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 제주 날씨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는데, 여행 내내 전부 맞아떨어져 지금에서야 놀라는 중이다. 제주에 온 일이 별로 없다 하니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굳이 다 와가는 길에서 옆으로 빠져 험한 길로 돌아주시는 열정에 감사하며(어차피 선불 결재인 탓에 비용 차이는 거의 없었다.)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는 공항 바로 근처에 위치한 예쁜 듯 낡은듯한 애매한 2성급 호텔로 가격 대비 평이 좋아 잡아보았는데, 솔직히 그다지 좋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리셉션이 위치한 리조트 쪽은 그나마 나아 보였지만,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바로 바다 옆에 있으면서도, 사방이 공사 중이어서 바다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고, 호텔 밖으로 나가면 조명도 그리 없어서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람도 그다지 없어 보였는데 1층을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주도 숙소 기준으로도 그리 싼 가격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빵빵하게 돌아가는 보일러에 몸을 녹이니 그 모든 아쉬움이 함께 흐물흐물 사라지고, 침대에 몸을 뉘어보았다. 그리고 눈을 뜨니 한밤중. 대충 3시에 들어온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7시가 넘어버렸다. 역시 보일러가 주는 따뜻함은 히터랑은 또 다른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여전히 삐걱이는 몸을 달래 가며 밖으로 나오니 사방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바람은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졌으며, 저 검은 하늘 너머로 집채만 한 파도가 이쪽을 향해 치고 있었다. 그리고 택시가 안 온다. 카카오 택시 앱을 켜고 아무리 택시를 불러보아도 택시가 오지 않는다. 길 건너 바다 쪽에는 차를 대고 나와 여전히 크고 아름다운 밤 파도에 뛰어다니는 젊은 사람들의 신나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조금이라도 밝아 보이는 곳으로 함께 걸음을 옮겨보았다. 그리고 얼마를 걸었을까 다행히도 아내의 핸드폰에 택시가 한 대 잡혔고, 너무도 감사하게 우리는 택시를 타고 동문시장으로 다시 향할 수 있었다. 


따듯하고 편안한 운행에 3000원이라는 감사를 추가로 전하고, 도착한 동문시장은 낮에 본 그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다 많은 가게들, 보다 많은 조명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 사람, 사람들. 아아 토론토는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였던가. 이 정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가야 한 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인파가 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사람의 강을 지나며 눈을 사로잡은 건, 낮에는 아무도 없던 노점들이었다. 그 볼품없던 간판들이 화려하게 빛을 바라며 차갑게 식어있던 불판 위로 거친 불꽃이 너울거린다. 아무도 없던 차가운 골목은 본인들의 청춘을 태우듯 열정적으로 춤추고 소리치며, 음식을 만드는 젊은 장사꾼들로 빛이 났고, 그 빛에 이끌리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음식 주문하고, 기다리며,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꽤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저리도 열심히 사는 청춘들 앞에 나라고 하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안일했던가. 저들의 화려함은 감히 부러워할 수조차 없는 땀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저 부끄러움만이 마음 한 구석에 돌처럼 자리 잡았다. 


뭐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배가 고프니 밥은 먹어야지. 일단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는 곳을 하나 골라보니 전복 김밥이라는 것이 있어 주먹밥과 함께 사 보았다. 사람이 몰려 넘치는 줄에, 옆의 횟집 아저씨의 역정이 느껴졌다. 장사의 엄격함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꼭 먹어봐야 한다던 딱새우 회와 은빛으로 예쁘게 빛나는 갈치회가 섞여있는 모둠회를 하나씩 사 숙소로 돌아왔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다. 


딱새우 회는 맛있었다. 토론토에서도 가끔 먹는 단새우 회보다도 더 좋았다. 그 녹진한 맛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갈치회는 처음 먹어봤는데, 내 입에는 그냥 그랬다. 상상하던 식감이 아니었달까? 그래도 같이 나온 광어와 우럭은 맛이 있었다. 참고로 우리는 방어를 얘기했는데, 광어가 들어있었다. 방어는 '빵'어라고 해야 오해가 적다고 한다. 전복 김밥은 그냥저냥이었다. 맛은 있는데, 식어서인지 전복 내장 맛보다는 그냥 기름 맛이 더 많이 났다. 반쯤 먹다 남기고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다. 


편의점에서 산 과자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신다. 아내는 감귤 빼빼로가 입에 맞는지 연신 감탄이다. 어느덧 제주에 도착했고, 험난한 하루가 지났다. 그래 이제 첫날이 끝나간다. 일주일 하고도 하루 더 잡아놓은 제주의 첫째 날이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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