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 야간경계초소

Prologue

by 황프로

2013년.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이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하얗게 입김이 나왔다. 10개월 정도 후임이었던 K와는 아직 많이 친해지기 전이었다. 나는 주로 말하고 K는 주로 들었다.


나는 공항의 경비를 담당하는 소대에 복무하고 있었다. 하루 중 근무에 투입되는 시간을 제하 면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꽤나 많았다. 계급이 낮은 병사에게는 어느 정도 활동의 제약이 분 명히 존재했지만, 생활에 적응하고 모든 것에 익숙해질 즈음 나는 자유로웠다. 자유롭고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는 독서였고, 마침 부대 안에는 웬만한 구립도서관 크기의 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조지오웰,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의 세계문학부터 시작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쫓는 모험」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하루키의 초기 작품까지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흔히 권장도서에 이름을 올리는 문학책을 대부분 읽었을 때부터 나는 세계사와 여행기를 주로 읽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이름의 '유리알'이 내 안에 생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 유명한 작가들이 묘사한 세상의 거리들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그들이 살았던 도시는 성동구 왕십리와 어떻게 다를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군 생활이 1년 남짓 남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수첩에 여행에 대한 계획을 적었다. 내 나이와 대학의 남은 학기를 생각하고, 비용을 생각하고, 두서없이 가보고 싶은 나라와 도시를 적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그것을 조금씩 구체화시켰다. 다행히도 군대에서 시간은 차고 넘칠 만큼 많았다.


내가 근무하던 소대에서는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하루 다섯 시간씩 밤낮없이 교대로 경계근무를 섰다. 낮 시간 근무는 출입 인원의 검문검색이나 차량의 통제 등 할일이 많았지만 비행단의 일과가 종료된 후의 야간 근무는 사정이 달랐다. 특히나 한적한 비행단 외곽의 야간 경계근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수̇ 단̇ 은 함께 근무에 투입된 후임과 선임뿐이었다. 초소 앞에는 담장과 철책 사이로 작은 천이 흘렀다. 담장을 따라 늘어선 경계등은 주황색 빛을 내고, 천에서 두꺼운 물안개가 경계등 빛을 받아 오묘한 색으로 피어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는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울었다. 구석구석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초소 선임과 후임의 대화도 끊일 줄을 몰랐다. 고향, 학창 시절, 취미, 특기, 가족, 좋아하는 음악, 전역하면 하고 싶은 일…. 그렇게 세 번 정도 같은 사람과 야간 경계근무를 하고나면, 우리는 서로의 인생사를 거의 통달할 수 있었다.

입에서 하얗게 입김이 나왔던 날 밤의 초소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여행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K는 나보다 한 살 밑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가 그의 동기들과 함께 소대에 배치되던 날을 기억한다. 까무잡잡하게 똑같이 생긴 세 명이 눈에 가득한 장난기를 애써 숨기며 나란히 앉아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이 신병들과 친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때로 선임으로 챙겨주면서 주로 친한 친구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를 빠르게, 깊게 했다. 나와 K는 잘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소재로 대화를 나누고, 함께 근무하고, 운동하고, 끊임없이 체스를 두고, 여자 아이돌그룹을 사랑했다. 그리고 가끔 나는 스스로에게 결심을 굳히듯이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이고, 얼마 정도의 경비를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경비를 모을 것이며 어디까지 다녀오겠노라고. 그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긴 여행에 대해 말할 때 아마도 K의 눈은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나는 군 생활을 마치고 다니던 학교에 복학했다. 나의 전역이 다가올 무렵 K와 그의 동기들과 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전역한 후에도 그들이 휴가를 나올 때면 우리는 종종 만나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여름에는 바닷가로 가 함께 시간을 보냈다. K가 나에게 “형, 나도 여행을 같이 가야할 것 같아.”라고 말한 것은 그의 군 생활이 3개월 정도 남아있던 봄이었다. “여행을 같이 가고 싶다.”도 아니고, “여행을 같이 가도 되겠느냐.”도 아니었다. 마치 두꺼운 망토를 뒤집어쓴 사제에게 인생을 바꿀 중요한 예언이라도 듣고 온 듯 K는 “형, 나도 여행을 같이 가야할 것 같아.”라고 했다. “나야 좋지.”라고,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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