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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이유

by 송현탁

한때 끔찍할 정도의 우울함이 나를 덮친 적이 있었다. 나를 좀먹던 그 끔찍한 악몽은 나의 모든 것들을 한둘씩 삼켜가고 있었지만, 깊은 우울을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곧장 병원으로 간다는 선택지보다는 어리숙하게 그 대안, 일종의 민간요법들을 하나하나 실험해보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했던 방안 중 하나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었다. 물론 우울증 치료라는 목적으로만 고양이를 분양받은 건 아니다. 원래부터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고, 아이러니하게 우울증이 기폭제가 되어 과감하게 실행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새로운 가족을 구한다는 사안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고양이를 분양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았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케이지에 갇힌 수많은 고양이가 있었다. 내가 이들의 구원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알량한 우월감이 느끼면서 나는 고양이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종의 고양이를 분양받자.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 고양이를 분양받자. 그런 계획은 하나도 없이 무작정 찾은 곳에서 나는 케이지의 유리 사이로 평생의 가족이 될지도 모를 아이를 고르고 있었다.


그전에 내가 개보다 고양이를 선택한 이유는, 평소에 생각하기를 나는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실리적인 이유를 따지자면 고양이는 개보다 손이 덜 가는 동물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책하러 가지 않아도 되고 독립적인 동물이기에 딱히 놀아주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자는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지만 후자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내가 그 아이를 선택한 이유는, 개보다 고양이를 선택한 이유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몇몇 고양이들은 유리 너머의 나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무신경했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 아이와 눈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순간 맞추어진 그 눈동자에서 나는 그 아이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그 아이의 눈은 나의 눈과 비슷했다. 나는 그 아이의 눈에서 나와 같은 우울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 눈동자와 그 아이에게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었고 종래에는 그 아이 말고 다른 아이는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를 선택했다.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하던 와중에, 분양하시는 분이 나에게 ‘이름은 무엇으로 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이름에 대해서도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곧 정하려고요.’라고 대답하려던 와중 하나의 이름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필이요.”
 그렇게 나는 즉흥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필이라고 정하고 서류를 작성해나갔다. 서류를 작성해나가면서 이 아이가 고작 2개월 차의 아기 고양이고, 벵갈 고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서류를 작성하고 대금을 치르고 나서야 그 아이는 이제 오롯이 나의 아이가 되었다.


케이지조차 준비하지 않아 가게 측에서 준비해준 종이 가방에 그 아이를 넣고 고양이 물품도 하나도 준비하지 않아 가게에서 추천해준 사료,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 모래만 사서 차에 실었다.


집으로 가던 도중, 조수석의 종이 가방 속의 아이가 불안하듯 계속 울었다.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응 괜찮아.’, ‘집에 가면 꺼내 줄게.’ 같은 말을 그 아이가 아닌 허공에다 내뱉으며 집에 돌아왔다.


동물 자체를 키우는 게 처음인 나는 일단 아이를 침대 위에서 답답한 종이 가방에서 풀어줬고 곧이어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 등을 설치해나갔다. 어느 정도 모양새는 갖추어졌고 나도 한숨 돌릴 겸 아이를 찾았다.


하지만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침대 밑, 베란다, 책상 아래 등 고양이가 숨을 만한 장소를 찾아보았지만, 그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무언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찾기 위해서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선반, 장롱 등 닫혀 있을 법한 장소도 모두 확인했고 문은 열어두지도 않았지만 혹시나 해 집 바깥도 모두 확인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그 아이는 없었다. 몇 시간을 찾았지만, 그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침대에 다시 앉았을 때 우울의 구원이 될지도 모를 그 아이마저 나를 떠났다는 그 사실에 더욱 우울함이 심해졌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


참 우습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포기하고는 침대에서 곯아떨어졌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휴대폰 시계를 확인해보니 작은 시침이 벌써 3칸이나 전진했고, 창문 밖의 세계는 이미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깨운 소리의 방향에서, 아까 몇 시간이나 찾아다녔던 그 작디작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그렇게 내가 쉽사리 포기했던 그 인연은 다시금 이어지게 되었다.


필.


Fill. 그 이름의 유래처럼 서로 함께 지내며 나의 텅 빈 마음을 네가 채워주길 바랐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그렇게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아이가 내 마음을 채워줬느냐.라는 물음에는 긍정이지만 애초에 우울로 바닥을 친 수조에 그 정도의 양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애가 고양이를 키우더니 이상해졌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건 고양이랑 상관없이 우울증이 주변에 친한 사람에게도 표출이 될 정도로 심해진 것뿐이다.


우울증엔 병원을 가자.


그런 교훈을 남기며 그 아이와 나는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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