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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고양이

by 송현탁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면 늘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퇴근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양이가 늘 마중 나와 있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반가웠고 기특했지만, 그런 현상이 일주일 즈음 지속되었을 때부터 내게 든 생각은 기특함보다 걱정이었다.


‘이 아이가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을까?’


고양이가 내가 출근한 동안 혼자 있는 건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불가항력이다.

그런 생각이 들던 와중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양이는 그런 걱정을 더욱 키우게 만들었다. 고양이는 내가 없는 집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그저 집사가 돌아오는 것을 몇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럴 때 생각한다.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본인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기에, 그런 꿈같은 이야기보다 고양이가 집사를 마중 나와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 이런 현상은 상당히 범고양이적인 현상으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집사들도 많이 보였다. 그렇게 인터넷 스크롤을 내리던 도중 흥미로운 가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양이는 청각이 좋은 동물이라, 계단을 올라오는 집사의 발소리를 듣고 집사가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문 앞에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그다음 퇴근 때, 나는 이것을 실험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기에 최대한 발소리를 줄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도어록 여는 소리도 주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4자리를 살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누른 후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후다다다닥.


뭔가 방 안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서 고양이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귀가의 새로운 패턴에 서로에게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발소리를 듣고 나오는 건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집 안에 있는 것이 외롭고 쓸쓸해서 문 앞에서 하염없이 집사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음 날. 어제와 똑같은 패턴으로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지만 날 기다리는 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었다.


발소리를 죽이는 것이 부족했나. 싶어서 다음 날에는 더욱 줄여서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도 고양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원래 생각해보면 그냥 평소 패턴대로 집 안으로 들어갈 때도 고양이가 후다다다닥거리면서 입구로 뛰어오는 일이 없던 건 아니었다.


‘결국 발소리를 줄이는 건 미신이었나.’

라고 생각하기엔 발소리를 줄였을 때와 그냥 귀가했을 때를 비교해보면 빈도 상 뒤쪽이 고양이가 마중 나올 확률이 높았다.


CCTV라도 설치해볼까.라는 생각과 같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내린 결과는 ‘아무 의미 없다.’였다.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던 내 발소리를 듣고 뛰어나오든 그 진실을 알게 되면 좋은 점은 그저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한 것뿐이다.


고양이에게 이야기해서, 나는 6시쯤, 일정 있으면 7시쯤에 도착하니까 기다리지 말라고 전할 수도 없다. 그냥 고양이는 기다리는 것뿐이고, 나도 고양이를 두고 출근하는 것을 당연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거의 2년 즈음이 흐른 지금, 고양이는 여전히 내가 귀가했을 때 후다다다다거리면서 뛰어오거나, 아니면 그 앞에서 자리를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 새로운 패턴도 생겼다. 내가 오든 말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도 있다. 2년 전의 내가 원했던 패턴이지만, 막상 찾아오니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없어도 우리 집이 우리 고양이에게 어느 정도 편안한 공간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 고양이가 나를 기다리는 건 현관 앞뿐만이 아니다.

아침에 큰일을 비롯한 일렬의 과정을 완수하기 위해서 화장실을 가면 들어갈 때는 쫓아오지 않아도 꼭 나오면 화장실 입구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다.


이것도 인터넷 검색 결과, 내가 선택한 결론은 고양이는 볼일 볼 때가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볼일 보는 동료를 지켜주는 습성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 있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늘 내리는 결론은 ‘의미 없다.’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보다는 다른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고마워.’


말이 통하지 않는 동거인에게는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는 감사가 더욱 소중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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