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극장가는 물론이고 인터넷 상에서도 여러모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작품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주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는 귀살대의 ‘비합리성’이다. 가장 크게 지적되는 선별시험의 잔혹함부터, 대원들에 대한 혹사와 잦은 순직까지.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단순히 귀살대가 잘못 설계된 조직이어서가 아니라, 보통 독자들의 인식과 작가가 그리고자 한 실제 모습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귀살대는 현대 사회의 경찰이나 군대처럼 사회 안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적 조직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인간을 혈귀로부터 지킨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명의 근본에는 혈귀의 소멸이 자리한다. 이것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귀살대 입대 동기의 상당수가 가족이나 동료를 잃은 데서 비롯된 복수심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는 ‘보호’보다는 ‘소멸’이 더 근본적인 목적에 가깝다고 본다.
소년병의 운용, 대원들의 잦은 순직, 그리고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비공식적 지위. 이런 단어들을 나열해보면, 현대 사회에서 귀살대와 가장 닮은 조직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나 군대가 아니라 오히려 테러조직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두 집단이 추구하는 정의와 지향점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제도권 밖에서 움직이며, 폭력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목숨보다도 목적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닮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 속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귀살대의 비합리성은, 이들을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공적 제도로 오해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귀살대는 어디까지나 정부가 공인한 사회 안전망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비밀결사에 가깝다. 만약 귀살대를 이러한 ‘공적 조직이 아닌 음지의 집단’으로 이해한다면, 선별시험의 잔혹함이나 대원들의 과도한 희생, 체계 없는 운영 방식 같은 비합리성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러한 면모를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무한성 전투 직전, 우부야시키 카가야가 무잔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부인과 두 자식과 함께 동반자폭을 감행한 순간이다. 이 장면은 흔히 귀살대와 그 수장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장면이야말로 귀살대가 어떤 조직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귀살대는 빛나는 정의의 기사단이 아니다. 그들은 인류를 지킨다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그 토대는 저주와 원한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찬란한 활약을 보며, 어느새 그들을 보편적인 정의 집단으로 착각한다. 바로 그 오해 때문에, 독자들은 귀살대의 잔혹함과 비합리성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