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공개되면서 극장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압도적인 작화와 액션, 감각적인 연출은 호평을 받지만, 늘 따라붙는 불만도 있다. 바로 회상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적이 죽는 순간마다 과거가 펼쳐지고, 그 인간적인 사연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은 무한성편에서 새롭게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작품 초반부터 꾸준히 지적되어온 특징이다.
물론 원피스나 나루토 등 다른 소년만화에서도 회상은 흔히 쓰인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은 그러한 연출에 익숙해진 사람들도 회상이 너무나도 많다고 느낀다. 거의 모든 전투에서 죽음 직전 회상을 반복한다. 이 때문에 악역의 과거를 보여주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연출을 두고 ‘세탁’이라고 불리는 것이 귀멸의 칼날에 너무나도 많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귀멸의 칼날은 왜 죽음 직전에 회상을 배치했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작품 초창기부터 등장한 탄지로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오니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귀멸의 칼날에서 오니는 악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길을 잃은 인간이며, 죽음의 순간에야 다시 인간이었던 의식을 되찾는다.
귀멸의 칼날이 지극히 불교적인 정조를 지닌 작품이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업에 따라 윤회를 거듭하며, 악업을 많이 지은 자는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겪는다. 귀멸의 칼날의 오니들도 여지없이 죽음 이후에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지옥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는 그 업이 다 소멸되고 다시 윤회의 길로 나아간다. 작중 수많은 오니들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육도윤회의 흐름 속으로 다시 돌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오니들도 본래는 회개해야 할 인간인 것이다. 죽음 직전의 회상은 이 사실을 드러내는 장치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악역을 세탁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의 핵심 세계관을 정확히 짚어낸 셈이다.
이처럼 회상과 세탁의 구조는 분명 강점이 있다. 캐릭터들은 깊은 비극성을 얻고, 작품 전체의 감정 밀도는 한층 짙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단점도 있다. 전투의 긴장감이 끊기고, “또 회상”, “또 세탁”이라는 패턴 피로가 누적된다. 감정을 과도하게 소모시키는 방식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런 요소들로 인해 귀멸의 칼날은 더욱 깊은 감정선을 지니게 되었고, 이것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