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의 단상

by 솔내

아이들이 자랄 때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틈틈이 공연이나 전시를 함께 보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피카소 작품 전시였습니다. 그간의 피카소 전시회 중에 가장 대규모 전시였습니다. 피카소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이 소개된 특별한 전시회로 기억합니다.


이후 지방에서도 전시나 공연이 열리는 여건이 좋아졌습니다. 집 근처에는 도립미술관이 있습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가끔 전시회를 보러 아이들과 편하게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다니다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크고 작은 사생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졸업 후 몇 년 지나 모교를 방문했을 때에 상을 받았던 그림이 학급 뒤에 여전히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름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학창 시절 이후로는 그림과 멀어졌습니다.

다시 미술을 접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은, 내가 수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동안 민화, 불교 탱화, 민중미술 등을 가끔씩 접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수련자의 시선으로 미술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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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이 그림에서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표현하려 한 감정이 마치 영감처럼 다가왔고, 빛의 흐름이나 붓의 움직임에서 그 의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면의 그림 안에 입체감을 담으려는 시도, 정지된 사물 속에서 흐름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와닿았습니다.


수련 중에는 ‘기(氣)’를 감지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가시광선이 단일한 빛이 아니라 프리즘을 통과할 때 일곱 색으로 나뉘듯, 인간의 기운도 물질을 이루는 기, 감정을 일으키는 기, 의식을 작동시키는 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운들은 경락과 경혈을 통해 서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수련자는 각 영역의 기운을 감지하는 연습과 함께 하나로 통합하는 수련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내적 수련이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에 스며든 듯했습니다. 물론 와닿는 영감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쩌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체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예술가와 장인이 작품에 혼을 담는다’는 말을 실감 나게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행할 때 소홀히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만든 것에 마음과 기운이 담긴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전보다 더 정성을 들이게 되었고, 보다 주의 깊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을 쏟다 보면 어느 순간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뇌는 가능한 에너지를 덜 쓰는 쪽으로 작동하려 하기에, 항상 온전한 집중과 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늘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성을 들이되, 힘들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그때 떠오른 말이 ‘무심(無心)’이었습니다.

'무심하게 정성을 들이는 것'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행하라”,

"그러기 위해 결과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과정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일을 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도가의 무위(無爲) 사상, 카르마요가에서 “결과를 바라지 않고 행하라”라는 가르침은 자주 접하지만 이를 체득하는 것은 일상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는 것’과 ‘되는 것’의 차이로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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