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윤 Apr 21. 2024

06_On Reading

누군가 무엇을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까르티에 브레송이 찬송한  헝가리의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1894.7.2 ~ 1985.9.28). 그는 헝가리, 파리, 뉴욕을 옮겨 다니며 70여 년 동안 형식과 유행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스러운 사진을 담아 20세기 사진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힌다.  특히 ‘On Reading’ 사진집을 좋아하는데 사진집에는 책과 신문, 고서를 읽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나온다. 모든 색을 걷어 낸 흑백으로 담백하게 담아낸 사진들 속 ‘책에 푹 빠져’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늘 지적 허영에 허덕이는 나의 가슴을 충만하게 해 준다. 케르테츠의 사진집을 보며, 나도 이런 ‘읽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담아보고 싶은 갈증을 느껴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늘 학년이 바뀌던 즈음에 자주 찾던 곳이 있다. 대전역 인근 중앙시장의 한쪽 편에는 헌책방 골목이 있었다. ‘수학의 정석’ , ‘성문영어’는 물론, 비싼 참고서는 대부분 그곳에서 구입했었다. 물론 책의 발행 연도와 상태에 따라 가격은 달랐지만, 반값정도에 살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젠 헌책으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많이 없어져서 일 테고, 헌책방 골목은 작게 움츠러들어 시장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가끔 카메라를 메고 찾는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방의 카메라도 꺼내지 않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어느 날 오래된 LP판이나 둘러보러 나선 길에 엄청난 산더미옆에 한 평남짓의 땅 위에 손가락을 끝으로 책장을 짚어 가며, 책을 탐독하는 노인분이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하고 커다란 책더미의 옆, 헌책의 모습들과 어긋나지 않으려 한 듯 남루한 모습. 노인의 얼굴이 내 시야의 중심에 자리 잡자 주변의 다른 모든 것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검이불루儉而不陋’의 아름다움이란 것 이런 것이 아닐까.

어르신께서 부디 내 존재를 눈치채지 마시길 바라며. 옆구리에 메고 있던 카메라의 셔터 On버튼을 돌렸다. 그리고 몇 분 간 숨을 멎은 채 구도와 각도를 바꿔가며 수십 번의 셔터를 끊었다. 내가 사랑하는 장면이다.  막연했지만  늘 이런 장면을 꿈꿔 왔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차마 이 순간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생각이 많아지면 가끔 들르는 옛시장 끝자락. 헌책방 거리에서 담은 사진. 내가 사랑하는 장면, 아끼는 장면 중에 첫째로 꼽는다면 바로 ‘읽는 사람들’에 관한 장면이다.


  봄날의 아련한 목련도, 벚꽃도, 그 겨울의 동백도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양손으로 책을 쥔 채 푹 빠져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게 다가온다. 내 눈엔 거대한 책더미보다 책 한 권을 손에 쥔 어르신이 훨씬 더 커 보였다. 사진을 담은 후 어르신께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니, 고등학교 국어교사 은퇴를 하시고 작은 헌책방을 운영하신단다. 그저 책이 좋아서 하시는 일, 국어선생이었던 것은 인생의 복이었다고 하시며 이런 말씀을 덧붙였다.


“고전을 보세요. 고전을 읽으셔야 합니다. 고전에서 삶의 진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음식을 꼭꼭 몇 번씩 씹어 먹듯이, 그리고 몇 번이고 정독을 하셔야 합니다. 진실의 깊이는 단번에 보이진 않아요. 그래야 아는 척을 안 하게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손에는 책 보다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주도적 읽음(Reading)보다, 강요된 봄(Seeing)을 하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느낌보다, 책을 손에 쥔 사람들의 눈동자는 빛나지만,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눈은 휘발성 재미에 홀려 있는 느낌이다. 살아 숨 쉬는 눈동자와 타의적으로 풀려 있는 눈동자. 두 가지 모두 보는 행위이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 무언가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다분히 온화하며, 평화적이며, 주변의 잡음까지도 사라지는 고요함도 느껴진다. 물론 외모로 그 사람의 지적능력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지극히 건방진) 선입견도 깨끗하게 닦아낸다. 남루한 옷차림과 상관없이 지적 탐구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힘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에서 오는 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차갑거나 따스함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 몇 장면을 소개해 본다.


미국출장 중 MOMA에서
아름다운 장신구를 팔고 있는, 그렇지만 읽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던 분
코로나도 어르신의 지적탐구를 막지는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05_아버지와 자전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