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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윤 Mar 25. 2024

05_아버지와 자전거

이젠 흙이 되신 아버지

나는 아직도 믿어지질 않는다. 

그렇게 넓디넓었던 안락한 아버지의 등이,

그렇게 든든했던 근육이 한순간 한 뼘의 작은 흙덩이가 되었다는 것이.

 “...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저어갈 때에나 내 두 다리의 힘으로 새벽의 공원을 어슬렁거릴 때 나는 삶의 신비를 느낀다. 이 신비는 내 살이 있는 몸의 박동 속에서 확인되는 것이므로 신비라기에는 너무 구체적이다. (중략) 내 몸은 바퀴를 통해서 대지와 교감한다. (중략) 그래서 바퀴는 기계가 아니라 내 몸의 일부이며 새롭게 확장된 나 자신의 몸이다. 나는 바퀴와 친숙하지만 여전히 조금은 남이다. 이 거리는 아름답다. 이 거리는, 나와 세상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연결시켜 줌으로 나를 넓히고, 내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 김훈 에세이, <인간의 다리와 바퀴 사이의 사유> 중에서.


나의 자전거에 대한 첫 경험은 네댓 살 즈음 아버지의 자전거 꽁무니에 올라탔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첫 경험의 공포와 안락이 자전거에 대한 첫 기억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셨다. 퇴근길,  낡은 앞바퀴를 흔들거리며 쌩하고 대문 앞에 도착하는 아버지의 자전거, 해가 뉘엿해질 무렵이면 어린 나는 목을 빼고 기다렸다가 태워달라고 조르곤 했고, 아버진 대문 안으로 자전거를 들이는 대신 신문을 몇 번 접어 엉덩이가 아프지 않도록 깔이주고, 나를 번쩍 들어 뒷자리에 앉혔다. 뒷바퀴 살에 신발이 끼지 않도록 뒤꿈치만 살짝 올려놓으라는 주의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바깥 동네에 있는 주변에 논이 깔린 둑길을 내달리셨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포플러 나무가 사열하듯 서 있는 길사이로 갈대와 벼와 구름과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점점 아버지의 자전거에 점점 속도가 붙으며 내 뺨을 때리는 바람도 덩달아 세졌고 재미는 무서움으로 변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행여 달리는 자전거가 둑길 아래로 고꾸라지기라도 하면, 발이 바퀴에 끼기라도 하면, 이런 두려움의 상상도 속도에 따라 점점 커졌고 신나 했던 미소는 입을 꾹 다문 표정으로 이내 바뀌었다. 팔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아버지 안장의 꽁무니도 잡았다가 허리춤도 잡았다가 결국엔 아버지 허리를 양팔로 꼭 껴안았다. 고불거리는 논두렁의 모양을 따라 빠른 속도의 자전거는 휘청거렸다.  “아빠, 쫌만 천천히요.” 내 요구에 아버진 장난기가 돋았는지 크크 웃으시며 더 세게 페달을 구르셨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나는 아버지의 허리를 더욱 세게 감싸 안았고 살도 없던 깡마른 아버지 배까지 움켜쥐듯 하였다. 그리고 오른쪽 볼을 아버지의 등에 바짝 대었다. 힘차게 구르시는 발에 아버지의 허리는 위아래로 움찔거렸고, 내 볼도 따라 위아래도 움직였다. 가빠진 아버지의 호흡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자전거는 높은 속도가 붙은 채로 곧게 뻗은 내리막 두렁길을 만났다. 아버진 페달질을 멈추었고, 그때 갑자기 자전거 위에서 본 모든 풍경의 흐름이 느린 모습으로 흘렀다. 빠르게 질주하던 기차에서 슬로우 모션을 느끼는 것처럼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의 지붕들도, 바람이 흔들어대는 바로 옆의 갈대들의 손짓도 마치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디트 올라가듯 아주 느리게 서서히 지나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장면과 감정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등에서 느끼던 근육의 힘과 따스함과 하루의 노동이 만들어 낸 땀 내음. 그렇게 아버지의 등이 안락함과 평온함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 평화와 안락함은 쉰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된 내 기억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 아버지는 이태전 한 줌의 흙이 되셨다. 하늘보다 넓게 느껴졌던 그 커다랬던 등이 자연의 부름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겨우겨우 한 뼘의 땅만큼 작아졌다.  사라져 버린 아버지의 등, 자전거에 대한 최초의 기억. 이제는 아버지의 자전거의 뒤에 탈 수 없지만, 그 따스한 체온과 내음은 내 가슴에 영원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아버지는 한 줌의 흙이 되신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원소의 존재로 우주에 존재하고 계심을, 이미 나를 둘러싼 공간의 존재로 나를 품고 계심을 나는 믿고 있으며, 심지어 느낀다. 눈을 감고 아버지의 자전거를 생각하면 그 온기가 전해진다. 나를 아주 따스하게 품고 계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_글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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