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슴도치와 여우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고슴도치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고 있다.”
그리스 시인 아킬로쿠스(Archilocus)가 말한 것으로 전해져 온 이 말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계기는 I. 벌린(Isaiah Berlin)이 1953년에 쓴 에세이 ‘고슴도치와 여우(The Hedgehog and the Fox)’를 통해서이다. 꾀가 많은 여우는 몸도 날렵하고 위험이 닥쳐오면 피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알고 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몸놀림이 느리고 둔하나 굳이 재빨리 도망칠 필요도 없다. 몸을 웅크려 온몸에 난 가시로 자기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두 동물의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I. 벌린은 서양의 위대한 작가나 사상가들을 두 부류로 구분하고 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여우같은 속성을 지닌 사람들의 사상이나 글들은 폭넓고 다양해서 원심 운동처럼 많은 분야로 확장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고슴도치 같은 사람들은 하나의 원리나 체계를 구심점으로 해서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보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이다. 몸에 난 가시 하나로 자신을 보호하는 고슴도치처럼 한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나 개념을 가지고 한 사람의 사상이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할 수 있다면 그는 고슴도치 같은 사람이라 불린다.
플라톤, 루크레티우스, 단테, 파스칼, 헤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등이 고슴도치에 속한 사람이고, 헤로도투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괴테, 푸시킨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 같은 이들이 여우에 속한 인물들이다. 화이트헤드는 전자에, 러셀은 후자에 속한 사람이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상가와 작가들을 이렇게 두 부류로 구분하는 것을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벌린의 이런 구분에 대략 동의할 수는 있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고슴도치와 여우로 비교한 것은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공감이 간다. 만학(萬學)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여우같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으로 분류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다. 반면 플라톤의 열쇠 말(key word)인 이데아 개념은 고슴도치가 알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그것에 해당이 된다.
I. 벌린이 이렇게 고슴도치와 여우의 비유를 통해 위대한 사상가들과 작가들을 구분한 것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작품과 그의 역사관 등을 고려할 때 그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톨스토이에 대한 벌린의 가설은 이러했다. “톨스토이가 천성적으로는 여우 같은 특성이나, 스스로 고슴도치라고 믿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톨스토이가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애 또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꿰뚫어 본다는 의미에서 나는 고슴도치의 가시가 상징하는 것을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부르고자 한다. 공자가 일이관지를 말할 때 그것은 인(仁)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충서(忠恕)뿐이다. 맹자의 의(義), 순자의 예(禮) 그리고 한비자의 법(法)도 마찬가지로 고슴도치의 가시에 해당이 된다. 인, 의, 예, 법은 이들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시기에 치국평천하를 위해 처방한 만병통치약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벌린의 구분법을 적용해 보는 것은 가능할까?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사람에게는 여우 같다 하고, 많이 배우지는 못했어도 큰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와 지식과 요령과 처세술이 필요하다. 젊은 날에는 여우같이 재빠른 몸놀림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자기방어 기제로 삼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죽기 살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승률 높은 전략과 전술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에서 벗어나 노년의 삶으로 접어들면 굳이 많은 앎이 필요치 않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쏟아지듯 생산되는 사회에서 노년에 이른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해 뒤처진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생활하기에 불편할 수는 있지만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우의 머리와 고슴도치의 가시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것을 우선해서 선택할 것인가? 나의 지적 능력이 점점 퇴화해 가는 지금 지식과 정보 경쟁에서 젊은 여우들을 감당해 낼 수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한 방이 있는 고슴도치의 가시로 무장하는 것이 노년에 이른 사람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선택일 것이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흩어져 있는 여러 진주들을 하나의 줄로 꿰어서 이어줄 때 하나의 진주 목걸이가 되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이든지 각자가 갖고 있는 하나의 실을 일이관지로 붙들고 사는 것이 노년에 이른 사람들에게 더 맞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