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거꾸로 읽는 다섯가지 방법 1

-드넓은 세상으로 나서는 그대들에게-

by 생각하며 놀자


매년 2월이면 대학마다 졸업식이 있고, 많은 졸업생이 사회로 나옵니다. 예전 같으면 떠들썩하던 졸업식의 분위기도 어느새 차분하고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취업 시장이 좁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그렇게 밝지 않은 탓일까요?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은 늘 변하는 것이기에 지금을 보고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20대 중반의 나이는 예측이 어려운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조금 세상을 만만하게 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때입니다.

몇 년 전 졸업생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망설이다가 노자와 스피노자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위지위(無爲之爲)의 멋과 비움(虛)의 여유를 보여준 노자의 사상과 대학 교수직을 거부하고 렌즈를 갈아 가난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자유롭게 살아간 스피노자의 삶이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는 노자와 스피노자의 사상과 삶을 통해 세상을 거꾸로 읽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입니다. 강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패배자의 모습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또 노자는 물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지만 강한 것을 깨뜨리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살이 나무로 된 단단한 방패는 뚫어도, 비단처럼 부드러운 천으로 지어진 천막은 뚫지 못하는 것이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몸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운동을 하지 않은 몸은 근육이 뭉치고 단단해지나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은 오히려 부드럽고 유연한 근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모두 강하고 단단한 것을 미덕으로 칭송하지만 부드럽고 약해 보이는 것에서 더 큰 힘이 나오는 것을 본다면 아마도 세상을 이겨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강자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한 사람이 되는 길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둘째, ‘버려야 얻는다’라는 자연의 이치에서 거꾸로 사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버려야 얻는다’라는 것은 ‘비어 있음’ 또는 ‘비움(虛)’의 여유가 살아가는 데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노자는 도(道)를 곡신(谷神)에 비유하면서 곡신불사(谷神不死)라 하고 있습니다. 도는 영원히 죽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곡신을 더 쉽게 말하면 깊은 산의 계곡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깊은 산에 비가 오면 그 물은 모두 계곡(곡신)에 모이고 다시 산 아래 냇가를 거쳐 강과 바다로 흘러가게 만들어 줍니다. 계곡이 물을 담고 있으면 계곡물이 넘쳐 홍수가 나게 됩니다. 계곡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無爲)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계속해서 자신을 비워서 산 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다 냇가로 흐르게 만들어 주는 일(爲)을 합니다. 무위지위(無爲之爲)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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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술잔이 비었을 때라야 새 술을 담을 수 있고, 작은 욕심을 버렸을 때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고, 욕심을 비우고 배우자를 찾을 때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그 마음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모두 비움의 이치와 일치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사실은 늘 무엇으로 나의 잔을 채워놓으려고 애쓰며,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행하며,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도 없이 각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솔직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나이가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에게 버리고 비우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직은 가당치 않게 들릴 것입니다. 실제로 살아가면서 마음을 비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실천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라는 삶의 지혜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에 젊은이들에게 더 요청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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