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學無憂와 識者憂患 2

by 생각하며 놀자

2. 식자우환

절학무우와 식자우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절학무우를 부정하면 식자우환이 생긴다. 식자우환은 ‘배워서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거리가 된다’는 뜻이다. 쉬운 말로 바꾸면, ‘아는 게 병이다’라는 말과도 같다. 식자우환은 다소 경멸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말이다. 너무 많이 알아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을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또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설프게 알아서 불필요한 근심 걱정에 빠진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식자우환의 근심할 우(憂)를 어리석을 우(愚)로 바꾸어서 배운 사람의 어리석은 걱정(愚患)이라 해도 식자우환의 냉소적인 의미는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환은 근심(憂) 병(患)이라 할 수 있다. 근심하며 걱정하는 것을 굳이 병이라 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쓸데없이 지나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까지 피해를 줄 때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근심 병을 경계하는 말로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다. 자신이나 가족의 일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식자우환이나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들은 여기에 적합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절학무우거나 식자우환이거나 여기서 말하는 걱정과 근심의 대상은 학교나 회사 같은 작은 집단에서 사회나 국가 더 나아가 세계적인 문제들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과하다고 할 만큼 전 국민이 관심을 보이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문제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대내외 경제 상황들 그리고 지구 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이다. 문제의 진단에서부터 해결의 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의견의 일치를 보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따라서 근심과 걱정의 정도는 심각할 수도 있다.




배움은 끝이 없다.jpg 배움에는 끝이 없다


오래전 일이다.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참여하는 일에도 냉소적이던 어떤 친구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라를 걱정하고 미래 교육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전문적인 지식도 별로 없이 원전 건설 등의 문제로 여럿이 언쟁하는 모습을 두고서 그 친구는 모두가 ‘임꺽정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했다. 그가 이해한 임꺽정은 누구인가? 천민 신분에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새로 세우겠다고 쓸데없이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사람이었다. 우리 같은 소시민이 나랏일 걱정하는 모습이 마치 임꺽정이 나라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그러니 식자우환의 우를 범하지 말고,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적당히 살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근심하고 걱정하는 행위에는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그 안에 배어 있으며, 그것도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이다. 바뀔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하고 어리석은 걱정(愚患)이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처럼, 배운 이가 세상의 일에 대해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문제 해결의 방법을 모색하는 첫걸음과도 같다. 그래서 절학무우할 수 없다. 걱정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은 배운 이의 태도가 아니다. 근심이 생기면 반드시 그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 일에는 배움과 탐구가 필수적이다. 이런 걱정과 우려를 현명한 근심이라 할 수 있다. 배우되 걱정하지 않으면 그 배움이 공허하고, 걱정은 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 걱정은 자신과 남을 위태롭게 만들고 해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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