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속 성(性), 웃음으로 핀 욕망

감추고 드러내는 조선의 은밀한 언어

by 서필

대학생 시절, 경주박물관 답사를 갔던 때 일이다.

나는 한 항아리 앞에서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토우 장식 항아리’였다. 5세기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토기는 흙으로 빚은 사람과 동물의 작은 형상(토우)을 항아리 표면에 붙여 장식한 독특한 형태다.

항아리의 표면엔 작은 사람과 동물들이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놀라웠다.

개구리를 삼키는 뱀, 악기를 연주하는 임산부, 그리고 성행위를 하는 남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장면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삶과 죽음, 욕망과 탄생의 순환을 상징하는 이야기였다. 죽은 이의 무덤에 이런 장면을 새겼다는 것은, 신라인들이 성(性)을 금기나 부끄러움이 아닌 생명의 근원적 힘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웃음이 났다.

‘우리가 오랑캐 족이 맞긴 맞구나.’

중국이 우리를 ‘동이(東夷)’라 부르며 야만인 취급했지만,

적어도 그 시대의 우리는 삶과 사랑,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자유인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성(性)은 숨기지 않는 것이었다.

불교가 융성하던 시기, 절은 신앙의 공간이자 연애와 향락의 장소로도 기능했다.

역사 기록 곳곳엔 술과 춤, 연애와 풍류가 공존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그렇다면 유학이 국가의 근본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고려 말기 이후,

억눌린 민중의 욕구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그것은 민화(民畵)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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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조선 후기 서민들이 생활 속의 바람과 신앙, 유머를 담아 그린 실용적 그림으로, 궁중화나 문인화와 달리 형식보다 감정과 상징성이 강조된 회화이다. 그 속엔 부귀를 꿈꾸고, 자식을 바라고,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러나 유교적 도덕이 사회를 지배하던 조선에서, ‘사랑’과 ‘욕망’은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였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그림 속에 그 마음을 감췄다.


# 화조도 — 사랑을 속삭이는 새와 꽃


가장 흔한 민화의 주제는 화조도(花鳥圖)였다.

꽃은 여성을, 새는 남성을 상징한다.

모란은 신혼부부의 합방을, 연꽃은 깨끗한 사랑을,

앵두는 귀엽고 생기 있는 여성미를 뜻했다.

민화 속 모란에는 종종 나비 한 쌍이 앉아 있다.

부부의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을 은유하는 장면이다.

향기 없는 꽃 모란이 신혼방의 장식이 된 건,

당황스러운 첫날밤의 풋풋함을 상징하는 유머이기도 하다.

민화는 늘 그렇듯, 웃음과 풍자로 금기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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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상징 — 복숭아와 석류의 비밀


민화에서 여성은 늘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다.

탐스러운 천도복숭아, 씨가 많은 석류, 달콤한 감과 유자…

모두 여성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특히 복숭아는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면서도,

그 둥근 형태와 솟은 꼭지는 은근한 에로티시즘을 품었다.

석류를 가르면 수백 개의 씨앗이 반짝인다.

많은 자식을 낳길 바라는 부모의 기도가 그 안에 있다.

그러나 그 기원에는 눈물도 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슬픔이,

민화에서는 오히려 해학으로 승화된다.

욕망과 슬픔, 삶과 죽음이 하나의 색으로 섞인 것이다.


# 남성의 상징 — 잉어와 호랑이


남성을 상징하는 소재는 동물적이다.

잉어, 자라, 뱀장어, 호랑이, 용, 그리고 버섯과 고추.

그중에서도 잉어는 민화 속 ‘에로틱 아이콘’이다.

용문(龍門)을 향해 뛰어오르는 잉어는

성취와 남성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 모습은 은유이지만, 결코 애매하지 않다.

민화의 호랑이는 또 다르다.

무섭지 않다.

오히려 바보스럽고, 덩치 큰 고양이처럼 웃긴다.

이 어설픈 호랑이는 권력자에 대한 풍자이자,

공포를 웃음으로 이겨낸 민중의 해학이다.

그림 속 호랑이는 조선 서민의 ‘자유’를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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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추고 드러내는 미학 — 조선의 웃음이 된 욕망


민화 속 性은 단순한 외설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된 시대의 ‘숨결’이었다.

조선의 백성들은 욕망을 그림에 담고,

그림을 벽에 걸며, 웃음으로 욕망을 나눴다.

동남아의 춘화가 노골적이라면,

조선의 민화는 상징의 언어로 말한다.

그것은 풍속을 지키면서도, 인간의 본능을 잊지 않은

‘은근한 사랑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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