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인류를 진화의 승자로 만든 스포츠

700만 년 전 본능을 깨우는 '러너스 하이' 시스템

by 서필

마라톤 대회는 아마추어 대회일지라도 오래전부터 신문사와 방송사에겐 확실한 수익원이었다. 참가비에 더해 대형 스폰서, 협찬이 붙으면 안정적인 흥행 구조를 만들수 있었다.


과거 몸담았던 신문사도 1년에 한번 마라톤 대회를 주최했는데, 이 행사를 성공시키려면 무엇보다 동호회 러너들에게 ‘우리 대회’를 각인시키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서 동호회 취재를 자주 나갔다. 그 현장에는 60대 이상 시니어 러너들도 적지 않았다.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왜 마라톤을 계속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대개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마라톤을 하면,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혈관은 젊어지고 세포 노화도 잠시 늦춰질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과부하가 걸린 ‘엔진 부품’처럼 관절은 닳아가고 피부 탄력은 떨어져, 오히려 동년배보다 더 늙어 보이는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 마라톤의 힘은 ‘중독성’에 있다. 한 번 그 쾌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좀처럼 출발선을 떠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고통스러운 달리기가 왜 이렇게 강력한 중독성을 갖게 된 걸까. 그 해답은 70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내린 위대한, 그러나 미친 짓에 가까웠던 선택에 있을 지 모른다.


700만 년 전 인류가 두 발로 일어선 시도는 생물학적으로 보면 거대한 도박이었다. 네 발로 걷는 침팬지에 비해 속도와 힘은 크게 떨어졌고, 허리 디스크와 무릎 관절염, 치질 같은 숙명적 질환을 대가로 떠안아야 했다. 그럼에도 이 ‘비효율적인’ 자세는, 예상치 못한 반전을 불러왔다.


인류의 진화는 ‘직립보행’에서 출발했다. 두 발로 일어선 인간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지면의 열기를 피하고, 햇빛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이는 열역학적 이점을 얻었다. 또한 이 자세는 인류에게 ‘자유로운 두 손’을 선물했다. 다른 포식자들이 앞발로 땅을 딛고 있을 때, 인간은 그 손으로 도구를 만들며 신체의 한계를 보완하고,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인류를 최상위 포식자로 만든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제작한 도구를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과 ‘지구력’의 결합이다. 인간은 빠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오래 달릴 수 있는 엔진을 갖췄다. 땀으로 체온을 조절하며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추격하는 사냥법은 생태계의 판도를 바꾼 인류의 핵심 전략이었다.


이 과정에서 진화는 뜻밖의 보상을 마련했다. 30분 이상 달릴 때 분비되는 베타엔도르핀과 엔도카나비노이드는 고통을 덮고 황홀감을 선사한다. 이른바 러너스 하이다.


700만년을 넘어 오늘날 마라토너들이 달리며 느끼는 환희는, 단백질 쟁취를 위한 그 오래된 생존 시스템이 여전히 몸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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