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걷자.
요상한 날씨, 요상한 사람들
Los Marcos - Logrono (29km)
오늘은 요상한 날씨와 함께 길을 걸었다. 비가 왔다가, 해가 났다가, 다시 비가 왔다가 하는 반복 속에서 걷다 보니 쌍무지개와 함께 길을 걷게 되었다. 쨍하고 반기는 무지개를 보니, 마음도 쨍하니 밝아지는 듯했다. 순례길에서 처음 보는 무지개였다.
신앙인으로 무지개는 '약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길을 걸으며 무사히 걸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많이 하였는데, 한걸음 한걸음 나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보여주시는 것 같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이 날은 독일인 친구들과 하루 종일 걸었다. 소피와 코비. 둘 다 독일인이었고, 나의 산티아고 베스트 프렌드였다.
산티아고에 온 20대들의 고민의 모양은 비슷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와도 같이 청춘의 고민을 안고 길을 나섰다.
길 위의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한 고민들을 결국에는 모두가 하는 고민이었다는 위안과 함께 서로를 격려하며 걷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고민을 짊어지며 함께 길을 걷는 순례길이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벽 위에 써져 있는 문구들이 우리를 응원해 줄 때가 있다. 간혹 가다 한국말이 써져 있기도 하고, 서로를 응원해 주는 문구와 평화와 사랑을 기원하는 문구들도 발견할 수 있다.
'Let it Happen'
길 위에서 유독 많이 보였던 글이었다.
똑같은 글씨체, 똑같은 색깔로 우리에게 그저 'let it happen' 하게 내버려 두라는 위안의 말을 해주고 있는 거 같았다.
'만약'이라는 상황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때가 많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결국에는 하지 못할 때가 있기도 하고, 결국 생각이 나를 덮칠 때도 있다. 그런 나를 알듯이 산티아고는 그저 일어나게 내버려 두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Let it Happen.
그저 일어나게 내버려 두라고 말이다.
'우리는 참 이상한 사람들 같아'라는 말을 나누며 순례자들과 걸었다.
굳이 나를 찾겠다고 길을 나선 친구들과,
여럿 인생 고민들과 함께 우선은 '걸으며' 생각해 보겠다는 사람들.
걸으면서 생각들을 덜어내고, 비워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하게 되어 있으니,
결국에는 또 어디론가 걷고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걷는다.
산티아고에서 걸었던 것처럼 우선은 한 발 내디뎌 본다.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비워냈고,
걸으면서 가벼워졌다.
걷고 비워내다 보니 어느덧
29km를 다 걷고 다음 목적지인 Logrono에 도착을 했다.
팜플로나 이후에 두 번째 대도시였다.
도시의 밤을 누리기도 하고, 순례자의 오후를 여유롭게 만끽하며 하루를 서서히 마무리해본다.
Buen Camino! 를 외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