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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Nov 07. 2022

마가렛 (2011)

- 좌절과 분열 속에 그래도 함께 울며 앞으로 나아갈 마가렛들

감독 : 케네스 로너건

출연 : 안나 파킨, J. 스미스 캐머런, 앨리슨 제니, 맷 데이먼, 장 르노, 매튜 브로데릭, 마크 러팔로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31위에 랭크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마가렛>을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의 필모를 보니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하나를 보았네. 그런데 왜 이 감독님의 이름이 생소한가. 물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영화는 쉽게 잊히는 영화는 아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영화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래서 감독의 이름이 내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 <마가렛>은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흠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영화이다. 10점 만점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걸작'이라고 꼽는 영화가 딱 3편이 있는데 (<7인의 사무라이>, <보이 후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이어서 4번째로 이 영화 <마가렛>이 내게는 걸작, 마스터피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야말로 대단한 영화이다.


내 기준 10점 영화들이 이외에도 여러 편 있지만, 한 가지만 특출 나게 돋보여도, 좁고 깊고 날카로운 영화도 10점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하지만 걸작 3편과 이 영화 <마가렛>은 인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마가렛>은 개개인의 삶이 복잡하게 얽혀서, 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건과 갈등,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과 내면의 추악함, 그리고 화해와 성장 가능성까지 두루 표현하되 결코 싼티나거나 가볍지가 않다. 정말 완벽한 시나리오다. 


영화의 제목이 왜 마가렛인가? 


봄과 가을 : 어린아이에게


마거릿, 너는 황금빛 숲에 잎들이

떨어지는 걸 보고 슬픔에 잠겼니?

나뭇잎들을, 인간의 일들처럼,

순진한 생각으로 걱정하다니.

아! 마음이 늙어감에 따라

그런 광경들에 점점 냉담해지고

창백한 숲의 세계가 한 잎 한 잎

떨어져도 한숨 한번 짓지 않게 되지.

그러나 너는 울며 그 이유를 알려하겠지.

그런데, 얘야, (슬픔의) 이름이야 어떻든

슬픔의 원천은 다 똑같아.

어떤 입도, 아니 어떤 정신도,

표현하지 않았었지

마음이 들었던 것, 유령이 짐작했던 것을:

인간은 시들기 위해 태어났단다,

네가 슬퍼하는 것도 마거릿, 너 자신이지.


-제러드 맨리 홉킨스 (Gerard Manley Hopkins 1844∼1889)


리사의 문학 시간에 선생님(매튜 브로데릭)이 이 시를 천천히 읊는다. 리사는 시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 시가 말하는 바를 잠깐 살펴보자. 현재 어린아이인 마거릿(마가렛)은 가을이 되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슬픔에 잠길 정도로 순수함을 간직한 상태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몸뿐 아니라 마음도 늙어가면서 우리의 마거릿들은 점차 냉담해진다. 결국에는 '나 자신'만을 슬퍼하는 존재로 쇠락하는 것이다. 



리사(안나 파킨)는 방학에 멕시코에 사는 아빠와 함께 목장에서 말을 타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후 엄마와 살고 있지만 아빠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리사. 하지만 말을 타려면 '카우보이 모자'가 필수라고 생각하고 시내로 모자를 사러 나가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때 우연히 버스기사가 쓴 카우보이 모자가 눈에 들어왔고, 기사는 승객들을 태우고 문을 닫고 출발을 했는데, 리사가 달리는 버스 옆에서 같이 달리면서 자꾸만 기사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 모자 어디서 샀어요?"


기사(마크 러팔로)는 운전을 하면서 자꾸만 리사를 쳐다보며 대꾸한다.


"뭐라는 거야? 미친 건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소녀가 기분 나쁘지 않아,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한 눈을 팔다가 신호가 바뀐 것을 모르고 직진, 초록불이 되자마자 길을 건너던 한 여인이 버스에 치이고, 한쪽 다리가 잘려 피를 뿜어댄다.

리사도 기사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리사는 그 여인을 붙잡고 말을 걸면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하고 기사는 도착한 경찰과 대화하는데, 리사를 바라보며 무언으로 말을 한다. 얼굴 가득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결국 리사는 피해자의 과실로 인한 단순 사고였다고 거짓 진술을 한다. 하지만 다리가 잘린 채, 딸에게 연락해달라며 죽어간 피해자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 리사는 마음이 너무 괴롭다. 엄마 조안(J. 스미스 캐머런)에게 이야기해 보지만 엄마는 버스기사의 삶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만약 그가 해고된다면 그의 가족들의 삶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마음의 빚 때문에 고통스러운 리사.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수학 선생님 아론(맷 데이먼)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와의 대화에 힘을 입은 리사는 버스기사의 집을 무작정 찾아간다. 그녀가 원했던 건, 그가 자책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데(자신들의 잘못으로 한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뻔뻔하게 거짓말로 일관하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그로 인해 리사는 그를 해고시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경찰서에 찾아가, 피해자(에밀리)의 가족 연락처를 묻는 리사. 리사는 그녀에게 가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먼 친척에게 전화를 걸지만, 에밀리와 친분이 없다는 냉정한 대답에 기분이 더 참담해진다. 하지만 그 통화를 통해 피해자의 절친(모니카)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찾아가고, 그녀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두 사람은 버스기사 해고를 위한 소송을 준비한다. 친분이 없다며 냉정하게 나오던 친척은 30만 달러를 받을 수도 있다는 말에 한달음에 LA에서 뉴욕으로 날아오고, 버스회사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30만 달러에 합의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그들(리사와 모니카)이 원한 버스기사의 해고는 할 수 없다고 통보를 받는다. 해고를 하면 버스회사의 과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30만 달러의 수혜자인 에밀리(피해자)의 친척은 30만 달러도 큰돈이니 그냥 합의하자고 한다.



사실, 영화의 큰 줄기 사이사이에 리사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 여러 번 부딪히며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엄마는 연극배우로 자신의 일이 있고 남자 친구가 생겨서 막 연애를 시작한 데다 새로운 쇼도 준비해 바쁘다. 멀리 있는 아빠와 통화를 하긴 해도 편하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아빠는 리사와 새 아내 사이를 조율해야 하는 나름의 고충이 있어, 리사와의 약속을 파기한다. (여기에는 분명히 리사의 과실도 있다) 대런이라는 남자 친구가 있음에도 파티에서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가까워진 폴에게 끌리는 리사는 충동적으로(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에게 자신의 순결을 줘버린다. 한 팀이라고 믿었던 모니카는 에밀리의 딸이 12살에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감상적으로 반응하는 리사에게 화를 내며 내 친구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어디에도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 막무가내로 아론 선생님을 찾아가서는 그를 유혹에 그와 섹스를 하지만 당황해하는 그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엄마의 새 연극에 초대받은 모니카는 엄마의 남친 라몽(장 르노)과의 식사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그 때문에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조안은 라몽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리사와 함께 그의 장례식을 찾는다. 


기대했던 소송마저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어 버린 후, 망연자실한 리사는 다시 충동적으로 아론을 찾아가, 아론의 동료 교사(여자) 앞에서 '지난주에 낙태했어요'라는 말을 해버리는데, 여선생님과 같이 있는 모습에 질투가 나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어 충동적으로 뱉어버린 말이지만 '자리를 피해 주냐'는 여선생의 말에 그냥 있으라며 태연하게 '부모님에게는 말씀드렸냐, 애 아빠는 아느냐'며 질문을 하는 아론을 보며 자신이 기대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헤어지긴 했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에 역시 크게 놀랐으며 깊은 슬픔에 잠긴 조안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해 리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만 형식적인 위로만 돌아올 뿐이고, 라몽과의 데이트에서 오페라의 매력을 알게 된 조안이 그와 함께 가려고 예매해둔 티켓이 있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묻자 리사는 내키지는 않지만 그러자고 대답한다.



엄마와 공연장을 가는 도중에 여전히 그 버스기사 버스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리사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음을 들은 리사는 괴롭지만 자리에 가서 앉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가 시작되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린다. 라몽과 처음 오페라를 보았을 때, 기대보다 훨씬 큰 감명을 받았던 조안은 딸이 우는 모습을 보며 역시 마음속에서 뭔가 올라오는데, 먼저는 딸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하다가 딸이 자신을 껴안자 힘껏 마주 안으며 함께 운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 아리아 '정결한 여신'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영화는 '제러드 맨리 홉킨스'의 시를 차용해 '마거릿'인 우리들을 소환한다. 아직은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은 소녀 리사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 세상이 어떠한지를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 안에 사는 우리 '마거릿'들의 보잘것없음과 위선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그렇게 마무리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거릿 '리사와 조안'이, 껍데기만 남아 있는 텅 빈 격려와 위로를 건네었던 그들이 각자 느끼는 고통 중에 동질감을 느끼며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술 애호가인 나는 조안과 리사가 '오페라'와 '시'를 통해 뭔가를 느끼는 모습에 깊이 공감이 된다. 리사가 선생님이 낭독하는 시를 들으며 자신이 이렇게 '나만을 슬퍼하는 마거릿'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모습 속에 치기 어리지만 아직 순수함을 포기하지 않은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 버스기사가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그를 해고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무마시키려고 했던 것 모두 순진하고 이기적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10대스럽다. 조안도, 아빠도, 선생님도, 모니카도, 라몽도 누군가를 아끼고 누군가의 곁에 있지만 나만의 생각이 있고,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고, 내 삶이 있기에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고, 아끼는 그들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것도 매우 사실적이다. 때론 어떤 말과 행동보다 '예술 작품'이 인간의 삶에 주는 힘을 표현한 것도 마음에 든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들과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도 연상되고, 엔딩 장면은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도 떠올리게 한다. 




영원히 '순수함'을 간직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어렵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없고, 이상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완전한 정의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온다. 그때에도 여전히 이상에만, 완전한 정의에만 매달린다면 그것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순진한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조금씩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나만을 슬퍼하는 존재'로 쇠락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울지는 몰라도 옳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 나만의 순수함을 여전히 조금씩은 간직하고 있으나, 세상이라는 시공간에서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여린 마거릿들이 있다. 마거릿은 필연적으로 실패하며 그래서 좌절을 맛보고, 실패한 마거릿들은 때로 반목하며 서로를 할퀸다. 그러나 분열한 마거릿들의 끝이 여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함 안에서 자신의 부조리함과 동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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