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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Nov 03. 2022

타인의 삶 (2007)

- 나의 신념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때

감독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출연 : 울리히 뮤흐,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울리히 커터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32위에 랭크된 독일의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을 보았다. 이 영화도 예전에 EBS에서 방영해 줄 때 우연히 보았었는데 그 당시 굉장히 잘 만들었구나, 좋은 영화이구나라고 느꼈었다. 이번에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다시 보았는데 처음 봤을 때 감흥보다는 좀 신파적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 그래도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1984년 독일이 아직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어 있는 시기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된 후 4년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비즐러(울리히 뮤흐)는 경찰 대학교수로 사상범을 잡아내는 데에 탁월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소위 정치질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동기들에 비해 진급이 늦을 뿐이다.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 작가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의 연극 연출가 선배 한 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거의 가택연금 상태이고, 동료들 역시 동독 현실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에도 드라이만은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착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연인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는 연극배우로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국가 안보부 장관의 눈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자 주인공 비즐러가 자신의 신념에 대해 성찰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금까지는 감찰 대상이 아니었던 드라이만이었지만 그의 동료들의 최근 행태와, 조만간 드라이만의 집에서 문화인들의 모임(파티)이 있을 것이란 정보를 수집한 국가 안보부는 드라이만의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감찰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일을 비즐러가 맡는다. 처음에는 자신과 교대 근무하는 부하 직원이 5분만 지각해도 지적을 했는데,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들의 삶을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국가 최고 권력자인 국가 안보부 장관이 여배우 한 명을 협박하면서 농락하는 모습은 비즐러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국가, 옳다고 말하는 체제가 과연 옳은 것인가 회의하게 된다. 비즐러는 조국의 정치 제체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그 체제의 핵심 인물이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을 참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결국 상사인 그루비츠에게 궤설을 늘어놓아 단독으로 사건을 진행하게 된다.



크리스타가 장관의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본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이 사실을 알게 한다. 드라이만은 크리스타가 거짓말하는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고, '네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라는 솔직히 말한다. 그리고 장관이 호텔로 오라고 정해준 날짜에 외출하려는 크리스타를 붙잡는다. '가지 말라고'

그러나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자신이 없는 크리스타는 장관의 더러운 제안을 시원하게 뿌리칠 수가 없다. '네 뒤를 봐주마'라는 유혹이 그녀를 옭아맨다. 이런 정황을 다 알고 있는 비즐러는 크리스타에게 '당신의 팬'이라면서 자연스럽게 접근해, '너는 다른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이미 훌륭한 배우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고민 끝에 크리스타는 장관에게 가지 않고 드라이만에게 돌아가고, 비즐러 역시 기뻐한다.

그렇게 평안한 날들이 몇 날 계속되었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 선배 연출가가 갑자기 자살한 것을 계기로 드라이만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처음으로 제대로 직면한다. 작가랍시고 그저 정부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조용히 처신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하면서, 동독의 현실을 외부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다. 마음이 통한 동료들끼리 계획을 짜고, 그의 필체를 숨길 수 있는 타자기까지 마련해 드라이만으로 하여금 현재 동독에서 '자살률이 치솟고 있다'라는 현실 고발의 글을 쓰게 한다. 크리스타에게 부담이 될까 봐 비밀로 했지만 나갔다가 갑자기 돌아온 크리스타에게 '숨겨둔 타자기를 꺼내는 모습'을 들키고 크리스타도 드라이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서독 유명 일간지에 드라이만의 글이 게재되고, 동독 국가안보부는 난리가 난다.

그런데 드라이만의 글이 서독 언론에 공개되는 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비즐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계획을 도청을 통해 알게 된 비즐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드라이만의 글이 서독에 전달되게 한다. 그래서 이제 더더욱 드라이만은 철저한 감시에 놓이게 되고, 크리스타를 손에 넣지 못한 장관은 개인적인 앙심을 더해 크리스타에게 덫을 놔 결국 그녀로 하여금 그 글은 드라이만이 쓴 것이라는 것을 털어놓게 만든다.

그루비츠는 크리스타를 심문할 사람으로 비즐러를 지목하고, 비즐러는 평소와 다름없이 가혹하게 크리스타를 몰아붙여 결국 자백을 받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타자기가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아낸다. 그리고 그루비츠보다 한 발 먼저 드라이만의 집에 들어가 타자기를 꺼내온다.

그러나 그루비츠는 알고 있다. 크리스타의 말이 사실이었고, 비즐러가 미리 손쓴 일임을. 드라이만의 집에 들이닥친 안보부 사람들을 보며 크리스타는 죄책감에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어 죽고, 비즐러는 골방에서 우편물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 곳으로 좌천된다. 그리고 이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독일이 된 지 2년, 드라이만은 여전히 크리스타의 죽음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그리고 장관의 입을 통해 자신이 감시를 받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 기록을 찾아보다가 자신의 감찰원의 아이디를 발견하고 그가 곧 비즐러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찾아가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를 멀리서 바라보고 발걸음을 돌린다.

다시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비즐러는 서점에 붙은 드라이만의 신간 포스터를 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통일 독일이 되었지만 비즐러는 좌천되어 하던 일,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을 계속한다.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자신의 삶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이 이런 일을 했다고 떠벌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비즐러는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간다. 그저 내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따로 바라는 게 없다. 자신이 믿었던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또 새롭게 옳다고 믿게 된 그것을 따라 산다. 마음의 갈등이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속내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신념대로 살 것인가.(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도울 것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그래서 크리스타가 장관에게 가지 않고 드라이만에게 돌아간 것만으로 비즐러는 기쁘다. 드라이만이 계획대로 서방 언론에 글을 게재한 것만으로 기쁘다.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된 것 자체가 기쁘다. 잘못된 체제가 무너진 것만으로 기쁘다.



그래서 비즐러에게는 어떤 '아쉬움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가 믿었던 것의 실상을 알았다고 해서 땅을 치며 후회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 다시 옳다고 믿는 것을 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편물을 정리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다행히도 드라이만이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위한 책을 쓴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드라이만에게 비즐러는 '아름다운 영혼' 그 자체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옳은 것을 위해 헌신하며, 옳지 않은 것으로부터 기꺼이 돌이키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며, 그 선택을 삶 자체로 책임지는 사람.



비즐러 역시 드라이만의 헌사를 기쁘게 받는다.



"나를 위한 책입니다."



이 책은 나를 위해, 나에 대해 쓴 책이고, 이 책이 나에게 위로가 되고 선물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 타인의 삶에 개입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모양으로 개입할 것인가.

그 결정은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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