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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Oct 21. 2022

브로크백 마운틴 (2006)

- 어떤 장소는 추억, 그리고 상징이 된다.

감독 : 이안

출연 : 히스 레저, 제이크 질렌할, 미셸 윌리엄스, 앤 해서웨이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40위에 랭크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았다. 얼마 전에 <와호장룡>을 다시 보고 정말 잘 만든 영화구나 감탄했었어서 이 영화는 어떨까 기대를 하고 보았는데 예상보다는 좀 심심했다. 동성애를 다룰 때 많은 영화들이 시간표를 1950.60년대로 돌린다. 시대적으로 금기시되었을 때 그들의 사랑이 더 애틋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애니 프루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소설을 보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이 영화 역시 1963년을 시작으로 두 명의 카우보이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보여준다. 


잭(제이크 질렌할)에니스(히스 레저)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산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배경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브로크백 마운틴'은 가상의 지명이고 실제 촬영은 캐나다 앨버타 남부의 록키 산맥 일대에서 했다고 한다. 영화의 초반부터 배경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일시정지를 눌러놓고 어디서 촬영했는지, 누가 촬영했는지부터 찾아보았다. 두 사람이 압도적인 대자연의 풍광을 배경으로 천여 마리의 양을 지키면서 보내는 여름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져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 이토록 멋진 일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에니스는 일찌감치 부모를 여의고 형과 누나 밑에서 자랐는데, 누나가 먼저 결혼하고 형 마저 결혼하자 자기 몸 하나는 자기가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잭은 부모님이 목장을 운영하며 살고 계시지만 목장에 매여서 일하는 것이 싫어 로데오 대회가 있을 때마다 참가하고, 여름이 되면 이곳 브로크백에 와서 다른 사람의 양을 치면서 생활을 환기하고 나름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말이 없으나 자기가 맡은 일에 우직하게 책임을 다하고, 불우한 환경이었으나 건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에니스에게 잭은 호감을 느낀다. 한 사람은 산 아래쪽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한 사람은 양이 있는 곳에서 자면서 양을 지키다가 아침이 되면 내려와서 식사하고 쉬다가 다시 양을 치러간다. 처음엔 잭이 양을 치고, 에니스가 식사를 준비했지만 잭이 힘들다고 투덜대자 에니스는 흔쾌히 자기가 양과 함께 자겠다고 한다. 어느 날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진탕 마셔서 에니스가 양 있는 곳으로 올라갈 컨디션이 아니어서 그날 같이 자게 되는데, 한 텐트 안에서 자는 게 좀 그래서 밖에서 자던 에니스가 너무 추워서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잭은 에니스를 덮치고 키스를 한다. 에니스는 당황했지만 그와 사랑을 나누고 아침을 맞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아무런 방해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양의 주인인 조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보게 되고, 둘은 약속했던 시간보다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브로크백 마운틴을 내려오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하고 싶은 잭과 달리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잭과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에니스였다. 에니스는 알마(미셸 윌리엄스)라는 약혼녀가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사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에니스는 알마와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잭은 로데오 경기장에서 만난 루린(앤 해서웨이)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는다. 잭은 에니스가 사는 집의 주소를 알아내, 엽서를 보내고 그렇게 다시 연락하게 된 두 사람은 몇 해만에 재회하는데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장면을 알마가 보게 되고, 그녀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당장 이혼하지는 못하고, 모른 척 살아가지만 알마는 너무나 괴롭다. 잭은 부잣집에 장가간 죄로 늘 자신을 무시하는 장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빠의 일을 물려받아 사업을 하는 루린은 사업 수완은 좋지만 남편인 잭과 소통하는 데는 서투르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자 알마는 에니스와 이혼하고 직장동료와 재혼을 한다. 그러나 에니스는 자신이 게이이며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것을 알마가 알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에니스의 이혼 소식을 듣고 이제 드디어 에니스와 함께 살 수 있겠구나 꿈에 부풀었던 잭은 아이들 곁을 떠날 수도 없고, 너와 함께 살 수도 없다는 에니스의 말에 크게 상처를 받는다. 또 추수감사절에 아이들의 아빠인 에니스까지 함께 한 알마의 집 저녁 만찬에서 알마는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다. 잭과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닌 것이라는 걸 안다고. 끝까지 숨기고 싶었던 사실을 들킨 에니스는 마음이 괴롭고, 사랑만을 원하는 잭의 단순성에 화가 나 크게 싸운다. 잭은 그 길로 멕시코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서 남자를 사 하룻밤을 보내고, 또다시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년에 한두 번 만나 여행을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사랑을 가꾸어가던 두 사람. 에니스는 잭에게 엽서를 보내는데, 수취인이 사망하여 수신이 불가하다는 도장이 찍혀 엽서가 반송된 것을 보고 에니스는 잭의 집에 전화를 건다. 루린은 잭이 타이어에 바람을 넣다가 폭발해 얼굴이 찢어진 채 의식을 잃고 방치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말하고, 그의 집을 찾은 에니스에게 그의 뼛가루 반은 그의 부모의 집에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죽으면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어달라고 했었다는 말을 전한다.


잭의 부모님의 집에 간 에니스는 잭의 방에서 두 사람이 처음 헤어졌을 때, 그러니까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일을 하고 내려와 헤어질 때 산 위에 놓고 온 줄만 알았던 자신의 셔츠가 잭의 방 옷장에 잭의 옷과 겹쳐져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잭의 아버지는 그의 유골함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에니스는 자신의 셔츠와 잭의 옷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잭의 셔츠를 안 쪽에, 자신의 셔츠를 바깥쪽에(잭은 반대로 겹쳐놨었다) 겹쳐서 자신의 옷장 안에 건다.



살아보니, 모든 사랑이 축복받는 것은 아니다. 또 축복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것만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사실 이 영화 속의 잭과 에니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잊지 않았고 계속 만남을 이어오면서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각각 한 사람을 속여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는 점에서는 비난받을 만한 요소가 있다. 금기된 사랑을 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아픔에 초점이 맞추어지긴 했지만 아이를 둘이나 낳고 몇 년을 함께 산 남편이 게이라는 것,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랑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고 알마가 받았을 충격도 무시할 수 없다. 속은 줄도 모르고 같이 사는 내내 속임을 당한 루린도 불쌍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일평생 한 사람을 품고 사랑했다는 것,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잊지 못할 사랑이 있다는 것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끝내 함께 살지 못했고, 한 사람을 갑자기 잃어야 해서 너무 슬프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진실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에 홀로 남은 에니스가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안 감독이 영화를 참 잘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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