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르슬라 Dec 05. 2022

유 캔 카운트 온 미(2001)

-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You can count on me.

감독 : 케네스 로너건

출연 : 로라 리니, 마크 러팔로, 매튜 브로데릭, 로리 컬킨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2001년 작품 <유 캔 카운트 온 미>를 보았다. 얼마 전 본 <마가렛>이 내게는 실로 엄청나게 다가와서 케네스 로너건의 이름으로 검색을 하고 필모를 보았다. 이 영화가 웨이브에 있고, 평점도 좋아서 기대를 하며 보았는데, 역시... 참 아름답게 잘 만든 영화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영화에서 '신부'역할로도 잠깐 등장하는데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다작하는 분이 아니어서 볼 작품이 몇 개 없지만 <마가렛>도 이 영화 <유 캔 카운트 온 미>도 참 좋은 잘 만든 영화라 좀 더 많은 작품을 찍어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만들어보고 싶은 꿈도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만든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표현하려고 무엇을 이용해서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이런 작품은 너무 훌륭한데 나는 흉내도 못 내겠다 싶은 것도 있고 내가 만든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은 작품들도 있다. 이 영화 <유 캔 카운트 온 미>을 보고 난 후에는 '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이 많은 인생이지만 자신의 삶을 완전히 놔버리지 않고 그래도 조금씩 무언갈 하려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 내게는 가장 큰 감동이 된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고통의 문제를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풀어나가는 영화가 좋다. 고통의 흔적이 나와 내 삶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고, 깊은 우울에 빠져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같이 고통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 때문에 불완전하고 누군가와 갈등을 하고 그에게 또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함께 사랑하며 노력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나는 마음이 간다. 




에이미, 새미, 테리 삼 남매는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양친을 잃는다. 장례식에서 큰 누나 에이미는 보이지 않고 연배가 비슷한 둘째, 셋째 새미와 테리가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우는 모습 후로 2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 큰 새미와 테리가 등장한다. 막내(남동생) 테리는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애인도 있고, 누나 새미와도 연락을 끊지 않고 안부를 전하며 살고 있지만 자신의 집도, 직장도, 모아둔 돈도 없다. 누나 새미는 뉴욕 외곽에 살면서 은행에 다니고 있다. 아이는 있지만 남편은 없는 미혼모로 혼자 아들을 돌보면서 직장 생활도 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에 중간에 잠깐 나가서 아이를 픽업해 보모에게 보내고 다시 직장으로 들어온다. 새미의 상황을 직장 동료들도 다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별다른 문제없이 이렇게 살아왔지만 새로운 지점장 브라이언(매튜 브로데릭)이 오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그는 지금까지 괜찮았다고 앞으로도 괜찮은 건 아니라고, 네 사정은 내 알 바 아니니 근무시간에 이탈하지 말라고 말한다. 



도움을 구할 데가 없는 새미(로라 리니)는 동생 테리(마크 러팔로)에게 연락을 한다. 테리가 어딜 가든지 편지를 보내고 자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전했었는데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안 그래도 걱정이 되던 참에 혹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지나치게 자유롭게 살다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몇 개월을 감옥 생활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새미는 잔소리를 퍼부어대고 화를 내면서도 돈을 빌려준다. 바로 돌아가려던 테리는 여자 친구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새미는 테리에게 며칠 더 이곳에서 머물라고 한다. 그렇게 테리는 조카 루디(로리 컬킨)를 돌보며 난감한 누나의 상황을 도와주게 된다.

한편 새미는 밥과 사귀고 있었는데, 작년 그가 청혼해 주길 바랐지만 받지 못한 그녀는 그와 만남을 지속하고는 있지만 마음은 많이 식은 상태다. 직장에서는 브라이언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티격태격하고 브라이언의 아내가 은행에 찾아와 그녀와 인사를 하는데, 그러면서 브라이언 역시 결혼 생활이 쉽지 않다는 걸 새미는 눈치채게 된다. 


삼촌 테리는 루디에게는 신세계이다. 엄마가 밤에 데이트가 있어 늦자 테리는 루디를 데리고 도박장에 간다. 물론 아이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는 건 아니지만 엄마 새미라면 꿈도 꾸지 않을 일들을 루디로부터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테리와 루디는 친구처럼 재밌게 지내는데, 도박장에서 루디를 본 경찰이(이 경찰은 이 남매의 부모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 소식을 전한 사람이고, 새미는 어려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집에서 쭉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새미에게 전하고, 루디에게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새미로부터 야단을 맞자 테리는 루디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아이와 한바탕 싸운다. 



서로 으르렁대던 새미와 브라이언은 눈에 불꽃이 되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되고, 새미는 동생 테리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테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새미가 브라이언을 만나러 나가는 걸 알면서도 잔소리하지 않고 루디를 돌본다. 루디와 테리가 잘 지내자 마음이 놓인 새미는 마음의 갈등이 있으면서도 브라이언과 계속 만나고, 밥은 결심을 하고 새미에게 청혼을 하지만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는다. 테리는 루디와 함께 목공도 하고 낚시도 하면서 지금껏 루디가 해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일들을 경험하게 하고 루디는 삼촌 테리를 점점 더 의지하게 된다. 루디는 테리에게 아빠의 존재가 궁금하다고 말하는데,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와 달리 아빠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바로 이 근처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루디가 원하자 테리는 루디를 데리고 루디의 아빠에게 데려가는데 그는 자기 아들의 존재도 부인하는 양아치였다. 화가 난 테리는 루디 아빠에게 주먹을 날리고 또 경찰서에 가게 되는데..


게다가 얼마 전에는 루디를 데리러 가다가 딴 길로 새서 아이가 혼자 비를 홀딱 맞고 기다렸었다. 그 일로 크게 싸웠었는데, 테리가 마음대로 루디를 루디 아빠한테까지 데려가자 새미는 루디를 계속 테리에게 맡겨도 되는지 고민하게 되고, 결국 테리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다. 그만 떠나 달라고.



테리는 누나의 말에 상처를 받지만 그렇다고 누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누나를 이해할 수 있다. 새미는 테리에게 떠나라고 말을 했지만 슬퍼하는 루디를 달래야 하고, 테리가 혼자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테리는 떠나기 전까지 집을 나가 친구의 집에 있다가 떠나겠다고 하고, 새미는 테리에게 집에 있다가 가라고 말하지만 테리는 집을 나간다. 



-어쨌든 편지 쓸게.

-정말?

-당연하지, 누나. 정말이야. 누나도 알잖아. 

-네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할 것 없어. 이건 꼭 알아둬. 이번에 일이 많았지만 정말 좋았어. 내가 어디선가 어떤 바보 같은 짓을 해도 누나가 집에서 기다린다는 걸 알았어. 이젠 다 잘될 거야. 지금까지 보단. 언젠가 또 누나 찾아올게. 

-다신 못 볼까 봐 걱정돼.

-아냐, 꼭 올 거야. 그건 걱정 마.

-갈 곳을 정하고 가면 안돼? 제발.

-난 갈 곳을 알아. 우스터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여자 친구를 찾을 거야. 가봐야 알겠지만 가서 일자리를 찾을 거야. 운 좋으면 여름 내내 돈 벌 거야. 운이 안 따르면 다른 길 찾을 거고. 동부로 갈 수도 있지, 나도 몰라. 알래스카가 참 좋았어.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거기선 기분이 좋아져. 사고 치기 전까진 정말 잘 지냈어. 빈말 아냐. 하지만 여기 있을 순 없어. 여기선 살고 싶지 않아. 계속 연락하고 꼭 돌아올게. 나도 누나랑 루디 보고 싶으니까. 크리스마스 같이 보내. 어때? 셋이서 함께 보내. 그만 울어, 누나. 나를 믿어줘. 어서, 누나. 나 좀 봐. 보라니까. 누나! 어렸을 때 기억나지? 우리가 했던 말들.

-물론 기억하지!

-그걸 잊지 마.




You can count on me : 나를 믿어줘 / 나만 믿어/ 내가 있잖아 / 내게 기대도 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대사는 누나인 새미가 할 법 하지만 마지막에 테리가 하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누나가 테리를 계속 걱정하기 때문에 새미가 테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혼자서 용감하게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새미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언니 에이미와 테리마저도 떠난 집을 혼자 못 떠나고 있다. 거지 같은 남자를 만난 탓에 결혼도 못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워 동생의 도움을 받는다. 직장 상사와 해서는 안 되는 불륜을 저지르고, 사귀는 남자가 있음에도 바람을 피우다가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자신이 집을 비울 때 누구를 만나는지 아들에게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늘 테리가 걱정되고, 테리가 루디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봐 또 걱정한다. 

테리는 직장도 거처도 없지만 자신을 끔찍이 생각하는 여자 친구도 있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쌓는다. 그래서 사고도 치고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또 여자 친구에게 손을 벌리기도 하지만 감옥에 갔다 왔다고 해서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조카를 대할 때도 누나가 하라는 대로만 하지는 않는다.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룻밤 도박장에서 재미있는 구경을 해도, 어린아이가 못을 박는 목공일을 해도, 공부 대신 낚시를 해도 인생이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누나는 아이에게 끝까지 아빠의 존재를 숨기지만 테리는 어차피 알 수밖에 없고, 또 루디가 원한다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격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걸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새미와 테리의 삶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 영향 아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맏이 에이미의 모습은 완전히 제하면서 관객들이 많은 부분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든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이 왜 에이미는 이름 한 번 등장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에이미는 친누나가 아니라 보모였나? 생각을 해보아도 그렇다면 경찰이 찾아와서 그런 식으로 말도 못 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손을 잡고 함께 울었던 새미와 테리만이 조금은 유별난 우애를 갖고 있는 것인데 아마도 에이미가 생활을 책임져야 했을 것이고 새미와 테리가 둘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보통의 남매보다는 서로에게 많은 부분 의지하고 기댔을 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새미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살면서 정기적으로 부모님 묘지를 찾아가고, 그곳에 사는 껄렁한 남자와 연애를 했다가 아이를 낳는다. 테리는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유랑자처럼 살고 있다. 새미에게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고, 테리에게는 부모님을 빼앗아간 아픈 곳이다. 고향의 의미가 각자에게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도 달라진다. 



테리는 자신이 어떤 바보 같은 짓을 해도 누나 새미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 유랑했던 소년은 붙박이처럼 집을 지키며 자신을 기다리는 한 사람으로 인해 위로와 안정을 얻는다. 분명 나서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인데 새미는 혼자다. 아이도 혼자 키우고, 직장에서 배려도 받지 못하고 애인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가 한 번 얼굴 보는 게 전부여도 자신을 집으로 생각하고 돌아오는 동생이 있어 혼자가 아님을 안다. 


여전히 동생이 걱정되는 새미는 떠나는 동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만 빈털터리에 거주지도 없는 동생은 '나를 믿어'라고 말한다. 앞으로는 지금보단 나을 거라고. 꼭 다시 누나와 루디를 보러 오겠다고. 


테리를 걱정하지만 새미는 사실 테리에게 많이 기대고 있다. 그의 존재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테리 역시 원한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알고 떠나기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를 믿어."




인생은 잔인한 구석이 있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 순간에 앗아가기도 한다. 그 고통은 마음에 진하게 남아 내 삶을 좌지우지하면서 제멋대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고통을 나와 함께 겪은 사람이 있어 그와 함께 긴 터널을 한 걸음 한걸음 걸으며 빠져나간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집이 되고 고향이 되고 돌아갈 곳이 된다. 


새미가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고, 테리 역시 선 넘는 민폐덩어리로 그려지지 않아서 좋다. 새미는 아들을 테리에게 맡기고 테리는 새미에게 돈을 빌린다. 그 안에 불륜도 있고, 여자 친구의 자살미수 사건도 있어 우당탕탕 소리가 나지만 서로에게 유일하게 돌아갈 곳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 삶에 우스꽝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너 하나만큼은 나에게 기대도 된다. 너를 완전히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은 내 삶을 지킬 수 있다. 


"You can count on me."


매거진의 이전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201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