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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Dec 23. 2022

프록시마 프로젝트 (2020)

- 사랑과 사랑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

감독 : 앨리스 위노코

출연 : 에바 그린, 젤리 블랑, 라르스 아이딩어, 맷 딜런, 알렉세이 파테예프, 산드라 휠러


앨리스 위노코 감독의 2020년 작품 <프록시마 프로젝트>를 보았다. 이 영화 역시 '라르스 아이딩어'가 나왔기 때문에 본 것인데 평점을 확인하고 본 것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잘 보았다. 잘 울지 않는 나인데 이 영화는 나의 '눈물 포인트'를 자극하는 영화여서 영화 후반부에는 훌쩍훌쩍 거리면서 보았다. 워킹맘의 딜레마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딜레마 중 하나이다. 여기에서는 엄마 사라(에바 그린)의 직업이 우주비행사이기 때문에 육아와 일 사이의 딜레마가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아름답게 잘 풀어갔다고 생각한다. 낭만적이지도, 피해의식에 빠져 있지도 않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간다. 


이런 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나의 양육 과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다소 방임적인 양육을 받은 나는 다 크고 나서 채움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을 나는 응원하지만 아이들도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나는 많이 이입이 된다. 솔직히 내 결핍 때문에 아이들 입장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엄마 아빠 모두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역시 쉽게 방임에 노출되는 것을 본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냥 두는 경우와 퇴근 후 규칙적으로 아이를 케어하는 가정의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일을 하지 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규칙적으로 아이와 교감하고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 한다.



사라는 오래전부터 우주 비행사가 되는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별거 중인 남편 토마스(라르스 아이딩어)도 천체 물리학자로 두 사람은 아마도 같은 일을 하면서 만나 사랑했고 결혼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초등학생 딸 스텔라(젤리 블랑)가 있다. 너무 바쁜 엄마 아빠를 둔 스텔라는 심리적인 문제 뿐 아니라 난독에 난수라는 병증을 앓고 있다. 안 그래도 바쁜 엄빠인데, 엄마 사라가 드디어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대원으로 선발되어 우주에 나가게 된 것이다. 사라는 남편 토마스를 찾아가 자신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리고 사라가 얼마나 간절히 바라오던 것인지 잘 아는 토마스는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갑자기 딸의 양육을 맡게 되었지만 토마스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스텔라와의 생활을 준비한다. 하지만 일곱 살 스텔라는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사라 역시 스텔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진다. 


스텔라는 아빠와 함께 쾰른에서의 새 삶을 시작하고 우주비행국에서 스텔라의 돌봄이로 웬디(산드라 휠러)를 붙여준다. 사라는 러시아 기지로 가 훈련을 시작하고 훈련 시작도 전에 동료 마이크(맷 딜런)는 여자니까 살살하라는 식으로 그녀를 무시한다. 사라는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하고 남자들도 수행하기 힘든 훈련을 통과하지만 아무도 몰래 훈련 후 후유증 때문에 고생을 한다. 스텔라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고,  수학도 너무 어렵다며 울고 아빠가 아직 직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집에 혼자 있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사라는 미칠 것만 같다. 얼마 후 토요일, 이 날은 스텔라가 와서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을 한 날인데 갑작스런 스케줄이 생겨 사라는 이 곳까지 찾아온 스텔라를 서운하게 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스텔라는 엄마에게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나와 공원에서 배회하는데..



날이 지날수록 훈련은 고되고, 종아리에 난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고통스럽다. 사라는 토마스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힘들다며, 그만 두고 싶다며 울고 토마스는 잘 해낼 수 있을거라며 사라를 위로한다. 우주로 떠나야 할 날은 점점 다가오고 나가기 전 격리 기간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과 만나는 시간이 있는데 스텔라는 그만 프랑크프루트에서 비행기를 놓쳐 오지 못한다. 안톤(알렉세이 파테예프)과 마이크가 가족들과 상봉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딸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그 시간을 견뎌낸 후 화장실에서 엉엉 운다. 하지만 우주비행국의 배려로 토마스와 스텔라가 찾아오고, 격리 중이기 때문에 허그할 수는 없지만 유리창을 마주하고 두 사람은 손을 맞대고 마음을 전한다. (삐진 스텔라가 사라를 멀리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눈물이 줄줄..)


함께 로켓을 보러가기로 한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는 스텔라의 말을 들은 사라는 결심을 한다. 몰래 빠져나와 아이와 로켓을 보러 가기로. 탈출에 성공한 사라는 자고 있는 스텔라를 깨워 택시에 탄다. 택시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서 로켓발사장에 도착하고 뜨는 해와 함께 로켓을 바라보는 두 사람. 떠나기 전 엄마가 힘들게 약속을 지킨 것을 안 스텔라는 마음이 많이 풀린다. 사라는 돌아와 소독약을 온 몸에 바르며 샤워를 하고 이제 디데이가 되어 발사장으로 향한다.



사라는 떠나기 전 가져갈 수 있는 물건들을 골라 담는다. (1.5kg을 넘기면 안된다) 모두 스텔라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물건들이다. 우주를 향해 나갈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남기라는 지시를 받고 사라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데 한 번에 쓰지 못하고 여러 번 고쳐 쓴다. 

드디어 로켓이 발사되고 가족들은 '정상입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하며 결국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사랑하는 엄마 사라는 자신의 꿈을 향해,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잠시 딸 스텔라를 땅에 두고 하늘 저쪽으로 사라진다. 



엄마를 무사히 보내고 스텔라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읽는다. 사실 편지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엄마가 얼마나 멋진 일을 하는지 스텔라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없는 사이 아빠와도 꽤 친해졌고 새 친구도 사귀었다. 수학 공부도 차차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 1년이 지나면 엄마는 스텔라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가'에 대한 확신이다. 엄마가 나의 곁을 잠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그 일에도 엄마가 꼭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내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물리적으로 오래 옆에 있어준다고 해도 아이에게 진정한 의미의 관심이 없다면 아이는 그것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사라라는 한 사람이고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 그 믿음을 줄 수 있다면 나의 사랑인 나의 아이와 내가 사랑하는 일 사이의 딜레마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남편 토마스가 보이는 행보도 참 좋았다. 물론 이혼 직전의 별거 상태인 남편이지만 아내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갑작스럽지만 딸을 맡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것이 좋았다. 사라가 우주로 나가야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자신이 스텔라의 아빠니까 사라와의 생활을 힘들지 않게 받아들인 것. 그 모습이 좋았다. 스텔라가 기지를 방문했을 때는 함께 오지 않았지만 마지막 사라가 떠나기 전에 온 것. 아이 엄마가 꿈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감격하며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눈물에 마음이 울컥했다.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일 사이에서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모습도. 사라가 울며 전화했을 때 포기하지 말라고 끝까지 위로하고 격려해준 것도 좋았다.

가족의 화해 같은 몽상은 없었지만 나는 이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함께 살지 않아도 엄마와 아빠 모두 나와 함께 살고 싶어하고, 나를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딸이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앨리스 위노코 감독은 엔딩 크레딧 전에 여성 우주 비행사들이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쭉 보여주면서 그녀들이 어떤 임무를 맡아서 수행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좀 특별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지만 직업을 가진 보통의 한 사람들로서 자기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때로 아이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삶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전해준다. 

일과 육아 사이의 딜레마를 무시하지 않고, 누군가를 탓하는 쪽으로 가지도 않고, 그럼에도 방법을 찾아낸 한 사람을 보여주어서 난 좋게 잘 봤다. 


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단하고 야무지게 키워야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상처는 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든 어머니들. 그들에게 화이팅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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