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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Dec 21. 2022

페르시아어 수업 (2022)

- 내가 속해있는 곳에서 내가 취하는 태도가 나의 삶을 대변한다

감독 : 바딤 피얼만

출연 :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라르스 아이딩어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개봉 영화 바딤 피얼만 감독의 <페르시아어 수업>을 보았다. 이 영화는 순전히 '라르스 아이딩어'라는 배우 때문에 보게 된 것인데, 개봉관도 없고, 상영시간도 맞지 않아 알람을 맞춰놓고 일찌감치 일어나 조조로 봤다. 배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일은 잘 없는데 그만큼 이 '라르스 아이딩어'라는 배우는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고  감독이 누군지에 상관 없이 이 사람의 연기가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함께 한 영화 두 편과 드라마 시리즈 1편, 그리고 독일 영화 한 편을 본 후 오늘 이 영화를 본 것인데, 확실하게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배우는 좋은 작품, 좋은 감독을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올리비에 감독과 다음 작품에서 또 만나면 좋겠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종반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유대계 프랑스인 질(나우엘 페레스 비스카야트)이 살아남기 위해 독일 장교 코흐(라르스 아이딩어)에게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속이고 그에게 말도 안되는 페르시아어 수업을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라르스 아이딩어는 독일인으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함께 한 작품에서는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데 내가 영알못이라 잘 못 알아 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비영어권 사람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가 나중에 독일 배우라는 걸 알고 놀랐었다. 여기서는 모국어인 독일어를 사용하는데 더 안정적이라든지 하는 걸 잘 못느낄 정도로 영어 표현이 유창했다는 생각이 든다.  



코흐는 독일군 장교이긴 하지만 장교들의 음식을 담당하는 요리사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는 일까지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동료들이 하는 일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들과 완전히 다른 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없다. (이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분명히 하고 있다) 

잡혀오는 트럭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책과 자신이 가진 샌드위치를 바꾼 질.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독일군은 기관총을 난사해 모두 죽이지만 아주 우연히 총에 맞지 않아 죽지 않은 질에게 페르시아어로 되어 있는 책 한 권이 있다는 걸 발견한 독일군이 페르시아인을 찾는 장교 코흐에게 그를  데려간다. 코흐는 그가 정말 페르시아인인지 긴가민가하면서도 너무나 간절히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페르시아인으로 믿기로 한다. 코흐는 전쟁이 끝나면 테헤란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가 식당을 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페르시아어를 배워야만 하는데 이 꿈이 막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적극적이고 더 쉽게 속는다. 병사들은 질이 페르시아인이 아니라 유태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코흐는 그가 페르시아인이길 바라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말로는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러 번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말이다)



하루에 단어 5개씩 공부하기로 하고 그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돕는 일을 하는 특혜를 받는다.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매일 만들어 내는 단어들을 암기해야 하는 그는 잠이 들기 전까지 중얼거리며 그에게 가르쳐준 단어들을 반복해서 암기한다. 하지만 코흐가 요구하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걸 감당할 수 없어 정체가 탄로날까 두려운 질. 코흐는 자신의 윗 사람이 자신에게 지시한 일(잡혀들어온 사람들의 정보/번호, 이름, 국가, 성별/ 을 노트에 적어 기록하는 것)을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맡기지만 맘에 들지 않아 질에게 시키는데 질이 깔끔하게 잘 정리하자 그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다. 자신에게 일을 맡기고 코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질은 명단을 정리하면서 유태인 이름에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어 코흐의 단어장에 적어 넣는다. 그리고 그것을 암기한다. 


간부들의 야유회가 있어 음식을 만들어 외부로 나갔다가 코흐가 툭 하고 던진 질문에 (음식의 이름을 묻는 질문이었다) 질은 그만 전에 가르쳐줬던 단어를 말해버리고, 아차 싶은 질이 동음이의어라고 변명을 해도 듣지 않고 코흐는 그를 무자비하게 때린다. 그리고 받았던 특혜를 모두 잃고 채석장으로 보내진 질이 일을 감당하지 못해 쓰러진 후 코흐에게 알려준 가짜 페르시아어로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를 반복하자 정말 페르시아인인가 싶어 그를 의심하던 병사가 코흐에게 이 일을 전하고 코흐는 눈도 못 뜨면서 페르시아어로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자신이 오해했다고, 미안하다고 다시 페르시아어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코흐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감을 잡은 질은 이제 단어만 외우지 말고 회화를 해보자고 한다. 뻔뻔하게 자신이 만든 가짜 페르시아어로 쉬운 일상 대화를 시도하는 질. 처음엔 겁을 내던 코흐도 질을 따라 한 마디 두 마디 하면서 가짜 페르시아어를 제법 구사하게 된다. 

질은 이 생활에 조금 익숙해질 법도 한데 자신은 아직 살아있지만 계속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몇 날 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점점 불안증세에 시달리고 될대로 되라는 식의 마음이 되어 버린다. 아직 질이 필요한 코흐는 그에게 음식 몇 개를 주며 달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질은 새로 들어온 두 형제에게 (오랫동안 먹지 못해 아사 직전이었다)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준다. 그런데 그들이야말로 진짜 페르시아인이었는데..


질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병사가 진짜 페르시아인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이를 코흐에게 알리고 코흐는 확인 삼아 그들을 보러 오는데 질이 준 음식 덕분에 동생이 살 수 있었기에 형은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죽는다. 거짓말로 생명을 연장하며 특혜를 받는 것에 안 그래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진짜 페르시아인이 자기 대신이 죽은 것을 알고 질은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고, 질 때문에 자신의 여자친구가 다른 곳으로 보내진 것 때문에 더 큰 앙심을 품게 된 병사가 옷을 바꿔 입혀 죽임을 당하러 가는 사람들 사이에 질을 끼워넣고 미국군이 당도했다는 소식에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증거를 모두 없애고 도망가기 바쁜 독일군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쟁 후의 삶을 준비했던 코흐는 필요한 것들을 챙겨 떠나는데 질이 사형수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만 데려와서 살 수 있도록 숨겨 주고, 코흐는 테헤란에 무사히 도착해 입국 심사를 받는데, 자신이 열심히 갈고닦은 가짜 페르시아어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은 벨기에인이라고 페르시아말 잘 한다고 말을 하지만 알아듣는 사람이 없고,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는 그는 독일군으로 의심되어 체포된다. 

한 편 모든 증거가 소각되어 어떤 사람들이 붙잡혀 왔는지 알 길이 없는 연합군. 그들은 질에게 기억나는 이름이 있냐고 묻고, 질은 2800여개의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게 해준 그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말하기 시작한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등 대학살을 저지른 악의 화신들과 마음이야 어떻든지간에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동조했던 수많은 사람들 모두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기에 이런 작품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일테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다. 


질이 2800여명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코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영화는 코흐를 도망갈 수 있도록 두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는 해도 그들이 하는 일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을 생각해 볼 때 그가 어떤 대단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버텨왔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한 목숨 건지자고 한 거짓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시작한 것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꽉 붙잡고 그 생명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대단히 나쁜 일을 하며 산 것 같지 않아도 내가 어디에 속해서 어떤 스탠스를 취했느냐가 나의 삶을 대변할 수 있다. 내가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하며 산 것이 아니어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나와 남의 삶 모두)를 견지했던 그것이 또한 나의 삶을 대변할 수 있다. 


인생은 결국 태도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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