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 한 권에 우리네 인생사가 다 들어있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제프리 라이트, 베니시오 델 토로, 에드리언 브로디,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오웬 윌슨
웨스 앤더슨 감독의 2021년 작품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았다. 결론 : 내가 웨스 앤더슨을 찬양할 날이 올 줄이야!! 내가 변하면 작품도 변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재미있게는 봤지만 주제적 깊이가 없어서 아주 고득점을 줄 수 없다고 까불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게 2014년 작품이고, 개봉 당시 어떤 정보도 없이 끌림에 이끌려 극장에서 봤던. 그러면서 저렇게 입을 털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나 그의 작품들(다른, 비교적 최근작들)을 보니 진짜로 대단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리뷰를 쓴 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다시 보고 리뷰를 쓸 예정이다) 영화에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다. 워낙 표현미에 있어서 자기 색깔이 강하다 보니 내용적으로 얼마나 넓고 깊은지 묻히는 것 같다. 평론가 평점을 보고 내가 더 서운하더라는.
영화는 막 작고한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주간지의 편집장 아서 하위츠 주니어(빌 머레이)의 부고문을 어떻게 실은 것인가로 편집진이 논의하면서 시작된다. 편집장이 자기가 죽으면 잡지 발행도 멈추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이 부고가 실릴 '프렌치 디스패치'는 마지막 발행호가 된다.
수미 상관 형식으로 아서 하위츠 주니어의 부고를 머릿말로,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논의하는 필진들을 맺음말로 넣고 그 사이에 4명의 편집장이 애지중지하던 필진들의 기사 내용이 차례로 소개된다.
1. Local color section (지역색 섹션) - 허브 세인트 새저렉(오웬 윌슨)
새저랙은 '앙뉘'라는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며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추하고 더럽고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단신을 쓴다. 편집장 아서는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것'도 좀 이야기하면 안되겠느냐고 하지만 새저렉은 거부한다.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2. Arts and Artist section - story #1 "콘크리트 걸작" - J.K.L 베렌슨(틸다 스윈튼)
베렌슨은 모세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라는 종신형을 받은 죄수의 작품을 소개한다. 로젠탈러는 간수였던 시몬(레아 세이두)를 뮤즈로 감옥 안에서 작품을 그리다가 우연히 줄리언 카다지오(에드리언 브로디)이라는 예술품 수집가의 눈에 띄어 큰 돈을 받고 작품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광폭했던 인생,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소망 없는 현실,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는 비참함이 결합되어 로젠탈러는 삶의 의욕을 잃고 그러다보니 작품도 그리기 싫어진다. 하지만 시몬의 회유와 설득으로 그리기는 하는데 감옥의 콘크리트 벽에다 그려서 누군가에게 팔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그 작품을 직접 본 예술 애호가가 교도소 건물을 샀고, 결국 그 작품의 소유자가 되었고, 그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기사이다. 아서는 베렌슨의 기사를 읽고 기사에 대한 코멘트는 없이, 베렌슨이 제출한 경비 내역서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3. 정치 / 시 section - story#2 "선언문 개정" - 루신다 크레멘츠 (프란시스 맥도맨드)
크레멘츠는 나이가 지긋한 독신 여성이다.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한 부부가 그녀에게 남자를 소개하려고 자기 집에 초대했고, 거기서 우연히 그 집 장남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난다. 제피렐리는 자신이 쓴 '선언문'을 읽어봐달라고 크레멘츠에게 전했고, 크레멘츠는 그 자리에서 손을 본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해달라고 투쟁하고 있었고(남학생이 자유롭게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가게 해달라) 그 투쟁이 목표하는 바를 쓴 것이 그의 선언문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줄리엣(리나 쿠드리)이란 아주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여학생이 사사건건 제피렐리를 걸고 넘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도 일종의 관심이라는 것을. 제피렐리는 크레멘츠의 지적이고 도도한 매력에 끌려 그녀와 잠자리를 갖지만 크레멘츠가 거기에 큰 의미를 둘 리는 없다. 오히려 제피렐리와 줄리엣 사이에 감정이 있다는 것을 먼저 눈치채고 밀어준다. 학생 운동은 그 나름의 성공궤도를 달리고 있었고 그들의 해적 방송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이 생겼는데 전파에 문제가 생긴 것을 해결하려다가 그만 제피렐리는 감전사하고 만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크레멘츠는 자신의 노트에 그가 급히 쓴 글 하나를 남긴 것을 발견하고 그 글이 썩 괜찮게 시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적의 혜성 하나가 궤도에서 속도를 붙여 우주 시공간에 있는 은하계 외곽을 향한다.
우리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 두 기억을 떠올려 본다.
당신, 약국에서 파는 비누향 샴푸, 꽁초 가득한 재떨이, 타버린 토스트.
그 애, 휘발유 냄새 나는 싸구려 향수, 설탕이 과한 커피 내음, 코코아 버터 피부..
.. (이하 중략)
편집장은 크레멘츠의 기사를 읽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길이가 약속보다 많이 길어졌지만 페이지를 늘려 내보낼지언정 한 글자도 지우지 않는다. 그만큼 좋은 글이었고 그 글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4. 맛과 냄새 section - story#3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 - 위대한 셰프의 단평" - 로벅 라이츠(제프리 라이트)
자신이 쓴 기사 만큼은 포토그래픽 메모리로 저장하고 있는 기자 로벅 라이츠는 자신이 출연한 토크쇼에서 그 기억력을 증명할 겸 자신이 쓴 기사를 그대로 읊는다. 로벅 라이츠는 경찰서에서 서장을 위해 요리하는 특별한 셰프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경찰서를 찾는다. 때마침 뒷골목의 유명한 회계사인 아바쿠스가 체포되어 잡혀 있었고, 그를 빼내기 위해 조폭들은 경찰서장의 아들 지지를 납치한다. 서장과 아들 지지는 아내(엄마)를 일찍 잃고 보통의 부자 사이보다 더 각별하고 애틋했는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들이 잡혀 있는 장소를 알아내고 조폭들이 유명한 셰프 네스카피에(스티브 박)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자 네스카피에는 목숨을 걸고 적지로 들어가 그들을 독살하기로 한다. 조폭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만든 음식을 먼저 먹어보는 네스카피에. 지지가 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무에 독을 넣었는데 조폭의 운전기사도 무를 먹지 않아 다시 지지가 납치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그리고 지지의 기지도 있어서) 서장은 아들을 찾게 되었다. 무를 반만 먹어 겨우 목숨을 건진 네스카피에를 찾아가 로벅 라이츠는 몇 가지를 묻는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난 용감한 게 아닙니다. 난 다만 모두를 실망시키기 싫었습니다. 전 외국인이니까요. "
"빠뜨린 뭔가를 찾아 헤매고 두고 온 뭔가를 그리워하죠. 운이 따른다면 우리가 잊은 것들을 찾아 낼 겁니다. 한때 집이라 불렀던 곳에서."
편집장은 로벅 라이츠의 글을 읽고, 네스카피에의 말이 없는 것 아니냐 묻고, 라이츠는 좀 그래서 뺐다면서 뺀 부분을 보여주는데, 그 부분이 위에 쓴 대화 내용이다. 그리고 아서는 그의 말을 그대로 실으라고 한다.
새저렉, 베렌슨, 크레멘츠, 라이츠를 포함한 필진들은 편집장의 죽음을 알리는 '쇠락과 사망 섹션'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야기한 후, 같이 써보자고 한다. 한 사람이 한 문장을 말하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이 이어받는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아서 하위츠 주니어의 생일을 축하하는 생일 케익을 들고 직원이 들어온다. 그는 아직 편집장의 사망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도 슬픔에 빠지거나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고 이 케익을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가지고 나가려고 할 때 한 사람이 말한다.
"나, 한 조각 줘."
어쩌면 죽음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할 지 모른다. 새 생명이 탄생하면 어떤 생명은 사라진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인간사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가 워낙 개성이 강하다 보니 그 면만 부각되어 폄하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평론가는 '내러티브'가 빈약하다는 것을 들며 아쉬움을 표한다. 오직 웨스 앤더슨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라면서도 6점을 주는데 그친다. 나 역시 '내러티브'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지만 하나의 덩어리로 봤을 때 심오하게 연결되는데 그것을 '빈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웨스 앤더슨 영화가 딱 봐서 따뜻하지는 않다. 하지만 난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은 결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있다. 또한 인생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하며 각 영화마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그가 표현하고 싶은 인생의 면면을 보여준다. 통찰이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주간지에 우리네 인생이 있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은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를 향해 달리며 살아있는 무엇이 된다. (공간을 시간화하여 총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의 이면에는 더럽고 추악한 비밀들이 있는 것이고, 실력있는 글쟁이는 그것을 드러내는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주는 의미와 미적 가치를 아는 것이다. 또 우리가 열광하는 예술작품과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미치광이에, 간수를 사랑하나 사랑받지 못하는 비참한 인간이다. 그가 그린 그림은 바로 그 간수인데, 자기가 그린 작품이 아무리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짓 때문에 그는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 시대를 바꿔버린 '선언문'에도 비하인드 스토리는 있다. 그것은 유명한 기자의 도움을 받아 개정된 것이며 자기와 맞서는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 후에, 아무 것도 모르면서 전봇대에 올랐다가 개죽음을 당한 미소년이 시대의 투사로 포장된 것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유명 셰프가 죽음을 불사하고 유괴된 아이를 구해낸 용기의 원동력의 실상은 타지인으로서 느끼는 서러움에 인한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가련한 마음.
잡지 한 권에,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과 그 곳의 역사가 있고,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다. 예술과 예술가, 정치와 시, 먹고 마시는 것이 있다. 이것이 우리 삶의 거의 대부분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또 우리가 아름답게 포장한 것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살인과 광기가 있고, 불법이 있고, 유괴, 납치, 소외와 더러움, 치정과 치기가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있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곳 앙뉘를 사랑하는 한 사람. 이 곳과 어떤 연고도 없으면서 이 곳을 선택해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모아 극진히 대접하며 그들이 한 없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인정하고 성장하게 하는 사람. 그래서 가장 좋은 글로써 이 곳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죽으면서 이 잡지도 사라지고, 그에게 대접을 받으며 좋은 글을 썼던 사람들의 향후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마지막이 될 이 잡지를 잘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 없이, 그들이 가장 잘 하는 것. '글'로써 편집장의 부고와 함께 잡지의 부고를 알린다. 그리고 그들이 공들여 취재하고 쓴 글을 지금까지의 '프렌치 디스패치'와 다를 바 없이, 수록하고 독자들이 기억하고 기대하고 있는 딱 그만큼의 것을 만들려고 한다.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있어도, 우리가 하는 일의 동력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그래도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사랑하면서 하는 것들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것이 더 좋은 것으로 연결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도,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람을 모으고, 그들의 진가를 알아봐줌으로써 더 크고 넓은 것을 만들 수 있다.
리뷰를 쓰기 시작할 때보다 더 이 영화가 좋아지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