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을 안다는 것에 대하여
감독 : 샬롯 웰스
출연 :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샬롯 웰스 감독의 2023년 작품 <애프터썬>을 보았다. 이동진 평론가가 선정한 2023년 외국 영화 탑 10중 당당히 2위를 차지한 영화, (이동진 평론가가 좋다고 해서 믿고 봤다기보다, 궁금해서) 국내 OTT로도 볼 수 있어서 얼른 봤다. 결론은 2023년에 본 영화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았다는 거. 더군다나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이 퀄리티면 반칙 아닌가 싶었다는.
이 영화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짙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타인을 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마지막 토픽, '타인을 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런 관점으로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의 내용은 아주 심플하다. 성인이 된 소피(실리아 롤슨 -홀)가 어렸을 적 아빠와 여름을 보냈던 터키(지금은 튀르키예지만 그때는 터키였으므로) 여행에서 찍었던 캠코더 영상을 보면서 추억을 더듬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 조차도 과거인 캠코더 영상 사이사이 짧은 인서트 컷으로 그녀의 우울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다인데(사이키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추는) 그것만으로도 현재는 아빠를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여름휴가라는 것이 터키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놀이 시설(휴양)이 겸비된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인데 영화 속 모든 장면이 캠코더에 담긴 것은 아니고 둘이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캘럼(폴 메스칼)과 소피(프랭키 코리오)가 각각 따로 있을 때도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에 실제로 소피가 알고 보게 되는 것은 이 영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함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는 것'은 '내 기분과 배경지식'에 좌우되기 마련이므로 우리는 지극히 불완전한 것을 감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빠 캘럼은 아이의 몸에 선크림을 발라주고, 아이와 친구처럼 물놀이를 하고, 그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아이를 보호한다. 그렇다고 아이의 요구에 100% 맞추는 것은 아니다. 정말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거절'이 아이에게는 또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전에 알던 아빠라면 분명히 해주었으리라 생각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둘은 지금 따로 살고 있다. 소피는 엄마와 함께 런던에, 아빠 캘럼은 에든버러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아빠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어딘가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인데 환경적인, 물리적인 문제들 너머의 것(영향은 받았겠지만)으로 인한 것임을 영화는 여러 차례 보여준다. 깁스를 풀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피를 흘리면서도 무리하게 푸는 것(아이는 방에 있어 모른다), 숙소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 아이와 싸우고 아직 들어오지 않은 아이를 기다리다 새까만 바다를 향해(조명 하나 없는 밤바다) 걸어 들어가는 것, 아주 비싼(둘의 대화를 통해 캘럼이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음) 양탄자를 즉흥적으로 사버리는 것이 그렇다. 그런 행동뿐 아니라 혼자 있는 캘럼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절망이 드리워져 있다.
영화를 보면서는 '제발, 안돼~~'를 연발하게 된다. 제발, 아이와 함께 있는 이 시간만큼은 잘 보내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빠는 딸 소피를 웃으며 런던행 비행기에 태워 보낸다. 아이가 혼자 게이트에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캠코더에 담는다. 그렇게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캘럼은 마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사람 같은 처연한 표정을 하고 캠코더를 가방에 담아 그곳을 떠난다.
어른 소피는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끝까지 캠코더에 담았는지 헤아려 본다. 이 영상의 끝에는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자신의 모습과 '사랑한다'는 아빠의 목소리만 있어 소피의 마음은 더 아리다. '잘 가'라는 말이 너무나 슬프게 들린다.
이 캠코더는 아빠의 유품이 되어 소피에게로 왔다. 영화가 공항에서 헤어지는 두 사람을 끝으로 끝나는 것은 아마도 이 캠코더 안에 다른 영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던 아빠는 얼마 안 있어 자신을 떠났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아빠를 잃었다는 슬픔과 그렇게 갑자기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른이 될수록, 어른이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부침을 소피 역시 경험하면서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된 나의 아빠의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빠도 힘들었겠구나', '그때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나와 여름휴가를 보낸 걸까.' '아빠의 사랑한다는 말은 진짜였겠구나.' 아빠를 헤아리게 될수록 '왜 그때의 나는 아빠의 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걸까, 왜 투정만 부렸던 걸까, '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 어려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오랫동안 소피의 마음에 파도치고 있을 것이다.
타인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먼저는 '나의 삶의 경험'이 그 앎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소피가 '아이였다는 것'은 그 '앎'에 상당한 제약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타인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 그 경험이 내게 어떤 감정을, 상황을 야기했고 그것을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나누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똑같은 경험이 아닐지라도 내가 많은 것을 경험했을수록 우리는 그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경험을 헤아릴 수 있다.
또한 '그와 함께 한 시간'도 중요하다. 아이가 아빠와 함께 산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에 대한 앎의 수준(질과 양)은 멈추어있다.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더딜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미 알고 있던 '앎'도 잊히거나 각색될 확률이 높다. 아빠를 볼 수 있는 그 유동적인 시간을 기다리며 아이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소망할 것이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기분',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바람, 소망'이 '타인에 대한 앎'에 영향을 끼친다. 아빠와의 휴가에 들뜬 아이는 아빠의 낯빛을 가늠할 만큼 섬세하지 않고, 아빠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만 잔뜩 생각해 놓았기에 배고픈 사람처럼 하나하나 클리어하는 것에 정신이 빼앗겨 있다. 어른인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에 대한 어떤 기대와 소망이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앎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 어떤 기대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나의 기분과 소망에만 포커스온 되어 있으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의 필요에 둔감해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짓밟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 사람을 알고 있다는 '오만'이 진정한 앎에 대한 길을 가로막는다. 사람은 미숙할수록 쉽게 단정 짓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다. 나는 이 사람을 알면서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사람 자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앎을 넓고 깊게 한다.
나는 무엇을 사랑으로 느끼는가.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끊임없이 관찰하며 생각하고, 알려고 한다. 이 말인즉슨 나 역시 타인이 나를 궁금해하고 알려고 할 때, 안다는 것을 알 때 굉장히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것보다 '사람을 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고, 마음을 썼다.
리뷰를 쓰기 위해 몇몇 장면들을 다시 보는데도 울컥한 것이, (잘 안 우는 사람인데) 뭔가 나의 감정 버튼을 터치하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내 곁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잘 알아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