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기'라는 사랑의 필요충분조건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 아담 샌들러, 에밀리 왓슨, 필립 시모어 호프먼, 루이스 구즈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02년 작품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았다. 네임드에 비해 그렇게 좋아하는 감독님은 아닌데 이 영화는 정말 재밌게 보았다. 독특하고 위태하면서도 시원시원해서 감독님 특유의 색깔이 잘 드러나 있는 개성 넘치는 로맨스물이다. 러닝타임도 길지 않아서 누구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는 꽉 찼는데 연애사업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배리 이건(아담 샌들러), 어느 날 트럭 하나가 회사 앞에 낡고 작은 오르간 하나를 떨어뜨리고 지나간다. '이게 뭐지?' 하면서 잠깐 고민하던 배리는 그 물건을 들고 자기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또 자동차가 고장 났다며 빨리 가야 하는데 정비소가 문을 열지 않았다고 호들갑을 떠는 여자 한 명이 나타난다. 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배리는 여자에게 정비소가 문을 열면 차를 맡겨줄 테니 내일 오라고 말한다. 그렇게 차를 두고 여자는 떠난다.
배리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직장인은 아니고 사업을 하는데 어떤 물건을 파는지는 알 수가 없고, 매일 정체불명의 통화를 지리하게 하는데 배리가 원하는 것은 얻어낼 수가 없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직원도 여럿 뒀고, 어떤 물건인지 창고에 그득 쌓여 있으며 그것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찾아오기는 한다. 배리가 전화를 거는 쪽에서는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반면, 받고 싶지 않은 전화가 계속 온다. 일하는 중이고, 손님과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바꾸라고 하는데, 바로 배리의 누나들이다. 오늘 누나 중 한 명의 생일 파티가 있는데 꼭 오라고 전화를 번갈아가며 걸면서 닦달을 하는 것이다.
누나들과, 여동생은 어떻게든 배리가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길 바란다. 배리의 생각과 감정은 안중에도 없이 그냥 그들은 이 하나뿐인 남자 형제를 자기들 방식으로 걱정하는 것이다.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를 질리지도 않는지 만날 때마다 꺼내고, 그녀들이 아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배리의 치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까발린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오랜만에 찾아온 집에서 배리는 남몰래 매형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다.
"전 가끔 제 자신이 싫어요...... 도와주시겠어요?"
"배리, 난 치과의사야. 내가 뭘 도와줄 수 있겠어?"
"그럼 아는 의사 없으세요? 정신과 같은? 이런 얘기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의사들은 비밀 지켜주잖아요. 내 형제들이 아는 건 싫거든요. 창피하잖아요."
"정신과 전화번호는 알아봐 줄 수 있어. 큰 문제 아냐. 그것보다 정확히 뭐가 문제야?"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전 가끔 아주 많이 울어요.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매형 앞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배리는 한 회사의 제품을 사면 항공사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이벤트를 발견한다. 값싼 물건을 사 모으는 것으로도 어마어마한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다는 허점을 발견한 배리는 혼자만 아는 비밀을 간직한 채 자기만의 프로젝트에 착수해 힘을 낸다.
집에 돌아와 약간은 신이 나서인지 배리는 신문에 난 폰섹스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건다. 개인 정보 유출 등 여러 가지를 확인했지만 순진하게도 그쪽 이야기를 믿고 자신의 정보를 공유한 배리는 다음날부터 통화를 했던 여자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배리의 여동생은 소개하겠다던 친구를 대동하고 배리 앞에 나타나는데, 그 친구가 바로 자동차 정비를 맡겼던 그녀인 것이다!
그녀가 눈앞에 있는데 협박범은 회사 전화번호까지 알아내어 전화를 걸어 협박한다. 그런데 사실 여동생의 친구 레나는 배리의 본가, 그러니까 여동생이 살고 있는 집에서 가족사진을 보고 배리에게 반해 여동생에게 배리를 소개해달라고 했던 것. 어제 가족모임에 오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해서 애가 탄 레나는 직접 배리가 일하는 곳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배리의 반응이 영 미지근하다. 자신은 분명 호감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여 기분이 상한다. 자존심이 상해 돌아가려다 레나는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배리에게로 간다.
"내일 나랑 저녁 같이 하실래요?"
두 사람은 약속대로 만나 데이트를 하고, 레나는 레나 나름대로 어필하는 것인데, 그것이 배리의 속을 뒤집는다. (배리의 여동생이 레나에게 배리의 치부를 - 가족들이 우려먹는 바로 그 일- 이야기한 것이다) 얼마 전 누나 생일 파티에서도 자기는 없는 사람 취급하며 놀려 먹는 가족들 앞에서 유리창을 깨부수고 레나와 데이트하던 도중에 레스토랑의 화장실을 박살 낸다. 그리고 조용히 쫓겨 나온다.
레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레나는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잔뜩 흥이 올랐는데 레나의 집까지 들어와 놓고는 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나간다. 레나는 경비실에 전화해 나가는 배리와 통화하며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아까 헤어질 때 나 당신한테.. 정말 키스하고 싶었어요."
레나의 집으로 돌아간 배리. 그를 기다렸던 레나는 초인종이 눌리기가 무섭게 문을 열고 두 사람은 그렇게 키스를 나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집에 돌아가는데 협박범들은 배리가 사는 곳까지 와 폭력까지 휘두르며 협박한다. 결국 배리는 돈을 인출해 주고 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배리는 하와이로 휴가를 간 레나가 너무 보고 싶어 진다. 마일리지를 아직 받지는 못했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영화의 포스터이자 명장면인 그림자 키스씬이 나오는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레나를 두려움 없이 사랑해도 될 것이라는 일말의 확신을 얻은 배리는 협박범 문제를 처리하기로 결심한다. 빼앗겼던 돈을 돌려받겠다는 전화를 걸고, 하와이에서 돌아와 레나를 데려다주는 길에 협박범은 배리의 차를 들이박고 그 사고로 레나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배리는 꼭지가 돈다. 협박범들을 시원하게 걷어차고 후드려 패고 박살 내는 것이다. 레나를 병원에 데려가고 그녀가 치료받는 중에 말없이 빠져나온 배리.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 돌아왔을 때, 이미 레나는 퇴원을 하고 없다. 배리는 레나에게 가는 대신 협박범의 본거지인 유타주까지 날아가 정면 승부를 펼치기로 한다. 반쯤 돌아버린 배리를 제아무리 경력 많은 사기꾼, 협박범들일지라도 당해낼 수가 없다. 다른 건 참겠는데 '내 여자를 건드리는 것'만큼은 죽어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레나에게 찾아온 배리. 그러나 레나의 마음은 이미 많이 상한 상태이다. 이런저런 변명을 하고 설명을 해보지만 레나의 마음은 잘 풀리지가 않는다. 완전히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그냥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것으로는 레나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그래서 배리는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나의 그녀 앞에서 발가벗은 듯 완전히 솔직해진다. 그녀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치심은 잠깐인 것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떻게든 내 마음이 상대에게 들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그가 알아챘을 때 그가 어떻게 반응할까? 매우 궁금하면서도 또 두렵다. 거절당하는 것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용기를 낼 때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 혹은 '관계'라는 것에 대해 매우 폐쇄적인 한 남자에게 반한 한 여자는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한다. 어떻게 그 사람에게 다가갈 것인가, 나를 각인시킬 것인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인가. 생각 끝에 그녀는 자기 차를 그의 회사 앞에 놓고 가기로 한다. 저녁에는 그가 오기로 한 집에 깜짝 등장할 계획을 세우고서 말이다. 일이 틀어져 그의 집에 가지 못하자, 친구를 대동하고 직접 그의 회사를 찾아온다. 완전히 자기 마음을 까발릴 각오를 하고서. 그렇게 했는데도 시큰둥한 남자에게 상처를 받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대놓고 이야기한다. 데이트하자고.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다가오니, 이 폐쇄적인 남자도 마음이 흔들린다. 이 남자에게는 만남 자체가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 큰 의미일 테니, 연애의 단계를 밟아감에 있어 오히려 조심스럽다.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뿐 아니라,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에 대한 확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조심성 때문에 퉁탕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같은 마음으로서 깊어진다. 그러자 이제는 남자에게서 마치 괴력과 같은 용기가 솟아난다. '내 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 나의 삶에 들어온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치는 것이 싫어 남자는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근원지를 향해 출동한다. '다 덤벼!!'의 기세로 문제를 해결한 남자는 그녀에게로 돌아와서는 순한 양이 되어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애쓰고 용서를 구하며, 그녀가 자신에게 처음 다가올 때 마음의 전부를 보여준 것처럼, 그 자신도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못난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결혼뿐 아니라 요즘엔 연애에도 시들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방송 프로그램이든, 유튜브든 사랑을 찾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길 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인간이란 존재가 사랑의 결과로써 존재하기에,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이 없이는 인간의 삶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너와 내가 서로에게 단독자로서 특별한 존재가 되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용기를 냄으로서 갖게 된 사랑으로 인해 나는 다른 차원의 용기를 얻는다.
사랑을 구하는 이여, 먼저 용기를 내라.
그 용기가 너로 하여금 용기 있는 자가 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