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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Dec 20. 2021

Shame (2011)

- 내가 내 마음대로 안될 때

감독 : 스티브 맥퀸

출연 : 마이클 패스벤더, 캐리 멀리건, 제임스 뱃지데일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81위에 랭크된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 <Shame>을 보았다. 소재가 어떤 거라는 것 정도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 보고 싶은 것만 볼 수는 없고 선정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음....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닌데, 마이클 패스벤더와 캐리 멀리건의 알몸 열연에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 남의 알몸 따위 보고 싶지 않아~~) 그래도 억지로 인과관계를 끼워 맞추지 않고 그저 현상 그 자체로 보여주면서 그냥 한 번 이들의 삶을 보고 느껴보라고 쓱 던져놓은 듯한 표현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마이클 패스벤더가 정말 잘 생기기는 무지하게 잘생겼다는..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뉴욕에 자가 집을 갖고 있고,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인물도 잘 생겨서 인기가 많은 독신남이다. 그런데 그가 남들에게 밝히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성중독자라는 것이다. 매일 여자를 사서 집으로 불러들이고, 한바탕 뒹군 후에도 샤워를 하며 자위를 한다. 그의 컴퓨터 속에는 온갖 음란물이 가득하고 (그래서 회사에서 그의 컴퓨터만 고장이 나서 고치려고 가져간다) 원나잇 스탠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고,  랜선 섹스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매일 전화를 거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는 그의 친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이다. 둘에게는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다. 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것 외에 부모는 왜 부재한 것이며 둘의 인생의 궤적이 어떠한지, 둘의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영화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현재를 보여줄 뿐이다. 


겁나게 잘생긴 브랜든


섹스를 좋아하지만, 안 할 때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중독이 무서운 지점이 이것이다. 그는 그것을 안 하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여자는 그의 신호를 알아채지만 지하철에서 먼저 내린다. 가던 길도 마다하고 그녀의 뒤를 쫓는 그의 모습은 정신 나간 스토커 같은 느낌을 줄 만큼 무섭다. LA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온 씨씨는 지낼 곳이 필요하다며 오빠인 브랜든의 집에 머문다. 오랜만에 둘이 대면하는 장면, 정말 경악. (씨씨가 목욕하고 있는데 도둑이 든 줄 알고 브랜든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욕실로 들어온다. 다 큰 오빠 앞에서 완전 알몸으로 서서 대면하는데 자기 몸을 가리려고 하지도 않음) 그런데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씨씨가 맹목적으로 매달릴 뿐이다. (그 남자는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가 씨씨가 일하는 (씨씨는 레스토랑에서 노래하는 가수다) 레스토랑에 브랜든이 직장 상사 데이비드(제임스 뱃지데일)과 함께 찾아가 그녀의 노래를 듣는 장면인데, 카메라는 그녀가 한 곡을 다 부를 때까지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 그녀의 노래, 그녀를 바라보는 브랜든의 얼굴을 길게 잡는다. 씨씨가 그다지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노래에는 어떤 울림이 있다. 아마 그 노래 속에 그녀의 인생과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씨씨의 노래를 들으며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브랜든은 눈물을 흘린다. 



여느 때처럼 욕실에서 자위를 하다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씨씨에게 그 모습을 들킨 브랜든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에게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분노한 브랜든은 집에 가지고 있던 음란물들(잡지책이며 시디, DVD 등 온갖 게 나온다)을 큰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내다 버린다. 그리고 회사에서 호감을 갖고 지켜보던 마리안과 남들처럼 평범한 데이트를 해보려고 하지만 결혼과 진지한 관계에 대해 너무나 냉소적인 브랜든에게 마리안은 매달리고 싶지 않다.  고장 나서 가져가 버린 컴퓨터가 다시 돌아오지만 그 안에 있던 각종 음란물에 대해 데이비드에게 한 소리 듣게 되고, 브랜든은 그 길로 마리안을 데리고 나가 호텔로 향하지만... 되지가 않는다. 마음이 있고, 정말 잘 해보 싶은 여자와는 잠자리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가 너무 괴로워서 브랜든은 이성애자이면서도 게이 클럽에 가서 남자와도 섹스를 하고, 여자 2명과 동시에도 한다. 애인 있는 여자에게 껄떡대다가 그 애인에게 얻어터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다가, 역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불안한 직감에 씨씨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미친 듯이 달려서 집에 와 씨씨를 부르는데, 그녀가 있기는 하지만 이미 손목을 그어 욕실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인 상태이다.




씨씨는 다행히 의식을 회복하지만 브랜든은 자신의 삶이 너무 버겁다. 성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과 잘 지내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수치스럽다. 나를 어찌하지 못하는 나, 소중하고 진지한 것이라는 알맹이는 쏙 빠진 무의미한 것들로만 채워진 자신의 인생이, 텅텅 비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자신의 삶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브랜든과 씨씨, 그리고 데이비드까지(데이비드는 유부남에 아이도 둘이나 있지만 매일 다른 여자와 자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그들은 살고는 있지만 그 삶 속에서 목적 없이 표류한다. 그저 오늘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진지한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받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시간은 그들의 하루 24시간 속에 단 1분 1초도 없는 것이다. 

공허가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이 공허 그 자체가 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영화가 오늘을, 현재만을 보여주듯 그저 그들의 삶이 텅텅 비어있다는 현실만이 존재한다.  어떻게 타개해나가야 할지도 알 수 없다. 나는 나라는 괴물에게 이미 집어삼켜져 버린 상태다. 텅텅 빈 인생에게서 희망이 섞인 미래의 조짐 따위도 있을 수 없다. 


쉽고 가벼운 것은 순간적인 쾌락만 가져다 줄 뿐이다. 필연적으로 휘발될 수밖에 없는 쾌락은 삶을 어떤 의미로 채울 수 없다. 다소 어렵고 조금 무겁더라도 쾌락이 아닌 사랑만이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있다. 


공허가 나를 삼키기 전에, 그 속에서 내가 흩어지기 전에. 

누군가의 손을 진지하게 잡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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